'숭미 탈피' 없이는 '자립 외교' 없다
서평 『브라보 한미동맹 -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25년 8월 25일 오전(미국 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을 3시간여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뉴스가 터져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정치 상황, 구체적으로 특검의 수사를 겨냥해 '숙청' '혁명'과 같은 험악한 단어가 든 메시지를 트루스소셜에 발표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처럼 큰 수모를 당하지나 않을까, 정상회담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국내외에 급속히 퍼졌다. 다행히 회담은 그런 일 없이 잘 끝났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칭하며 '전폭 지지'의 뜻을 밝히는 대반전이 일어났다.
결과는 다행이었지만 전개 과정은 한국의 운명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줬다. 트럼프의 지나가는 한마디에도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현실 말이다. 이런 일은 미국을 하느님처럼 모시는 '숭미' 또는 '숭미주의'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브라보 한미동맹 -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진인진, 이창천 지음, 2025년 8월)는 한미 관계를 비대칭으로 구조화한 주범인 '숭미' '숭미주의'의 뿌리를 파헤치고, 어떻게 그 굴레에서 탈출할 것인가를 제안하는 외교 전략서다. <명품외교의 길 - 좌파 외교관이 본 한국 외교>라는 책에서, '한국에 외교란 없다'라는 도발적 문제 제기를 한 전직 대사 출신 작가 이창천(가명)씨가 그 후속작으로 내놨다. 전작이 한국 외교 전반의 문제를 짚었다면, 후속작은 한국에 외교를 없게 만든 근본 원인인 한미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책의 첫 부분이 윤석열과 태극기 부대를 지지하고, 이재명 대통령을 한미동맹을 깨뜨리려는 친중 좌파로 매도하는 한국계 미국인 4명의 얘기로 시작하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이 한국의 숭미세력의 미국 쪽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의 지도층에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여기도록 부추기는 전위부대 노릇을 하고 있다.
이민 1.5세로 한국말도 잘 하는 '검은 머리 미국인' 4인방은 영킴(한국 이름. 김영옥, 연방 하원의원, 캘리포니아 제40선거구), 미셸 스틸(박은주, 전 연방 하원의원), 애니 챈(김명혜,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 모스 탄(단현명, 리버티대학교 로스쿨 교수)를 칭한다. 여기에 중국계의 고든 창까지 넣으면 '반한 5적'이 된다. 그동안 활동으로 봐, 이들이 트럼프가 트루스소셜에 '숙청' '혁명'이란 단어를 포함한 메시지를 내는 데 직간접으로 작용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숭미(미국 숭상)'-'미국의 멸한(한국 멸시)'의 기초 위에서 한국을 사정 없이 몰아치며 뜯어 먹는 미국 악당 3인의 얘기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데니스 와일더 전 미 대통령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 리처드 롤리스 전 미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군축 및 비확산 특별고문을 '멸한 3인방'으로 꼽는다. 이들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말 잘 듣는 식민지 국가)을 대변해, 즉 대통령을 비롯한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의 지시를 받고 악역을 맡아 한국을 향해 마구 으르렁거린 인물들이다.
저자는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국한테는 그렇게 막 대해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굳게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은 존중할 가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상대에 불과한 것이다. 그토록 멸시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한마디 말도 할 줄 모르는 '쪼다'가 한국인 것이다. 그런 나라와 국민들한테 뭐 하러 미국이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으리오. 사실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라고 통탄한다. 이들 악당 3인방은 현재 공직에 없지만, 숭미-멸한의 토대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다른 악당들이 계속 출현할 것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주권국가의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작용하는 숭미의 '진(gene)'과 '밈(meme)'이 어떻게 생성·발전·활동하는지를 까발리기 위해, ▲주한미군 기지 협상 ▲ 전략적 유연성 ▲ 전작권 환수 ▲ 한미주둔군협정(소파) ▲ 중앙정보국(CIA) 공작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둘러싼 한미 관련 의제를 차곡차곡 짚어가며 숭미성을 해부한다.
1장 미군기지 협상에서는 숭미주의 외교관·장군들이 대통령까지 속이며 미국이 해달라는 대로 다 퍼주는 실태를 밝힌다. 2장 전략적 유연성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이란 미군이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겠다는 얘기에 다름없다고 말한다. 즉, 대만해협에서 사태가 발생하면 주한미군, 더 나아가 한국군을 거기에 투입한다는 것인데 한국 입장에서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사안이므로 절대 용인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라는 게다. 3장의 주제인 전작권 환수도 전략적 유연성과 연결된 사안이다. 저자는 한국으로서는 마땅히 회수해야 할 권리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선심을 써서 주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4장은 주한미군이 누리는 특권에 관한 얘기인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이 마치 성경에 버금가는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한두 번 눈가림 개선한 걸 두고 관리들이 엄청난 개선을 한 것처럼 과장하지만, 실상은 '눈 가리고 아옹'이라는 것이다. 미군과 그 가족뿐 아니라 심지어 군속과 그 가족들이 중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조사하고 처벌할 수 없는 본질에는 전혀 변함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5장은 한국의 CIA 지부에 관한 얘기다. 저자는 '증거 자료가 없으니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제한적"이지만 "CIA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곳이 한국이란 점은 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라고 장담한다. 이 장에서는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의 사례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외무부에 근무할 때 나는 숭미적인 선배 외교관들이 백 회장과의 인맥 형성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종종 목도하곤 했다. <중략> 어떤 선배는 귓속말로 내게 모든 길은 백 회장에게로 이어진다는 얘기도 해주었다"라고 폭로했다. 심지어 박성준 장관(반기문의 가명)조차도 유엔 사무총장 선거를 앞두고 백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자는 한마디로 CIA 한국지부는 "숭미의 진과 밈을 생성시키고 확산하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6장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퍼주면서도 우리가 얻었다면서 국민에서 사기 친 결과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단언했다. 주미 한국 대사관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위해 미국 의원들을 상대로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내용"이라면서 거금을 들여 로비를 한 것이 반증이다. 저자는 이것은 한국민에 대한 설명과 정반대인데 미국 쪽에 한 설명이 진실에 가깝다고 말했다.
7장에서는 숭미의 근원과 탄생 과정을 정리했다. 마지막 8장에서는 숭미의 진과 밈이 계속 창궐하면 남는 것은 푸에르토리코에도 못 미치는 '식민 대한미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곳은 푸에르토리코와 대한민국 둘뿐이다.
8장에서는 명품외교를 위한 3대 과제와 2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정권의 핵심 지도층이 반드시 숙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정신 측면의 과제로 일방적이고 종속적이며 병적인 한미 간의 주종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둘째, 인식 측면의 과제로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추구하는 외교만이 명품외교라는 점을 마음속에 각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개혁 측면의 과제로 지금까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서만 기능해온 외무부를 혁명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대 목표로, 종속적 관계를 점진적으로 청산해 미래지향적인 한미관계를 정립하는 것과, 중국·러시아·아시아·유럽 등 주요국들과 독립적인 주권 외교를 전개하는 것을 들었다. 미래지향의 건전한 한미동맹을 구축하려면, 미국이 원하는 식의 전략적 유연성은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제는 안 된다. 고쳐야 한다. 우리는 진짜 미국의 식민지가 될 수는 없다. 정상적인 독립주권국 한국을 새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못 사는 건강하고 오래오래 지속되는 친구 한국과 미국이 있다. 브라보 한미동맹이다."(363쪽)
저자는 이를 위한 방법으로 판단력과 용기, 설득력 세 가지에, 한국인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 하나를 더 추가했다.
책을 덮으면서, 한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한 외교관 출신의 훌륭한 작가가 탄생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브라보! 이창천 작가님, 앞으로도 계속 죽비 같은 책을 써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