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트럼프, '피스메이커' 한다며 '전쟁부' 부활

"평화 사랑 미국은 얄팍한 위장술" 비난 자초

역대 정부 'PC' 추구해 전투력 약화됐단 인식

NYT "국방부 명칭, '억지' 중요했던 시대 반영"

소련 핵무기 완성,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

미 소프트 파워 경시, 하드 파워 중시로 퇴행

2025-09-07     이유 에디터

"사이버 공간, 우주 공간, 그리고 걱정스럽게도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우위를 흔들려는 파트너십을 과시하는 세계에서, 억지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트럼프는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는 게 답이라고 주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국방부' 이름을 '전쟁부'로 복원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취재진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2025. 09. 05 [UPI=연합뉴스]

트럼프 "우리는 지나치게 정치적 올바름 추구"
역대 정부 'PC' 집착해 전투력 약화됐단 인식

뉴욕타임스(NYT)의 외교안보 전문기자 데이비드 생어는 '전쟁부의 귀환은 향수를 넘어선 메시지다'란 5일 자 칼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날 현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의 이름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바꾸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두고 이렇게 비판했다.

백악관에서 진행한 서명식에서 트럼프는 "우리는 1차 세계 대전에서 이겼다. 2차 세계 대전에서도 이겼다. 우리는 그 전과 그 사이의 모든 것에서 이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제대로 승리하지 못한 점을 의식한 듯 "우리는 모든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정치적 올바름(PC)을 추구하거나 워크(woke·각성)해지는 쪽을 선택했고, 그 결과 끝없이 싸우고만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전쟁부를 하나의 신호로 본다. 특히 현 세계 상황을 고려하면 전쟁부가 훨씬 더 적합한 이름이다"라고 말했다. 2차 대전 승리 후인 1949년 8월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전쟁부'를 '국방부'로 이름을 바꾼 건 PC(정치적 올바름)를 추구한 것으로 미국의 전투력 약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적 인식이 깔려있다.

 

미국 워싱턴D.C. 상공에서 찍은 펜타곤(국방부) 전경 사진.. [중국 신화 자료사진]

"트럼프, 어느 때보다 억지력 중요한 시점에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는 게 답이라고 주장"

이에 발맞춰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인플루언서 출신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우리는 단지 방어가 아니라 공격할 것이다. 미적지근한 합법성이 아닌 최대의 치명성, 정치적 올바름이 아닌 폭력적 효과. 우리는 단지 방어자만이 아니라 전사를 길러낼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3일 폭스 뉴스에선 "우리는 국방부가 아니라 전쟁부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따라, 일단 국방부는 물론 전 미 행정부처의 공식 문서와 행사 등에 '전쟁부'란 보조 명칭을 쓰게 했다. 이는 '전쟁부'로 공식 명칭을 바꾸려면 미 의회의 입법 절차가 필요한 점을 고려한 조치다.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전쟁부로 완전히 개명하는 입법 절차에도 들어갔다.

5일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 국방부 당국자들은 이 조치에 혼란과 분노, 좌절감을 느끼고 있으며, 그대로 진행된다면 국방부는 해외 40개국과 미국 내 50개 주에 있는 70만 곳 넘는 군 시설 내 국방부 문장을 바꿔야 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행정 비용은 수조 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이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백만 가지의 작은 골칫거리와 짜증 나는 일이 있을 걸로 본다.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을 것이다"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비약적인 성과를 낼 것을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2024.9.13. 연합뉴스 

'국방부' 명칭은 억지력 중요했던 시대 반영
소련 핵무기 완성,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

칼럼에서 생어가 트럼프의 '전쟁부 복귀'를 비판하는 몇 가지 지점이 있다.

첫째는 전쟁부에서 국방부로 명칭을 바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다. 생어에 따르면, 트루먼이 국방부 창설 법안에 서명했던 1949년 8월 당시는 소련, 중국 등 초강대국들과의 전쟁 위험이 고조됐던 시기다.

국방부로 명칭을 바꾸고 불과 16일 후 소련은 핵무기를 완성했고,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생어는 "당시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두려운 시기였고, 새로운 명칭은 억지력이 중요했던 시대를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초강대국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라면서 트럼프는 "지난 80년 간의 가장 큰 성과, 즉 초강대국 간의 갈등을 피했다는 사실을 대체로 무시한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많은 역사가는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그리고 뒤따른 군비 경쟁에도 냉전이 대체로 '차가운' 상태로 유지된 걸 냉전의 최대 성과로 본다"고 덧붙였다. 억지력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 지금인데, 거꾸로 간다는 게 생어의 견해다.

이에 부시와 오바마 시절 국가안보회의에서 일했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더글러스 루트는 "이 행정부는 우리를 트루먼 시대 이전으로 다시 데려가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확립된 절차, 제도, 규범들을 해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루트는 미국의 방어 공약에 대한 동맹국들의 의심과 트럼프의 대러시아 갈지자 행보를 거론한 뒤 "이름 변경보다 더 실질적인 건 그들이 해온 일이다. 동맹 구조의 아교 역할을 하는 신뢰가 한번 훼손되면, 회복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하기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도착하고 있다. 2025. 09. 03 [AFP=연합뉴스]

'전쟁부' 용어, 북중러 선전 활용 역효과
"평화 사랑 미국 주장은 얄팍한 위장술"

두 번째는 '전쟁부'란 용어가 동맹국은 물론 적대국에 주는 메시지다. 특히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보란 듯이 '반미, 반서방 연대'를 과시했던 북한-중국-러시아 3국 정상들엔 '불감청 고소원'의 상황이다.

생어는 "평화를 사랑하고 법을 준수하는 국제 행위자라는 미국의 모든 얘기가 실은 위협으로 보는 어떤 대상이든 진짜로 공격하고 싶어 하는 나라의 얄팍한 위장술"이라고 러시아와 중국의 선전을 뒷받침해 줄 역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생어는 "그들의 관변 논평가들은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지난 6월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거나 베네수엘라 해안에서 마약 밀매 용의자들이 탄 보트를 침몰시켜 11명을 살해했던 트럼프의 일방적인 결정에 초점을 맞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 전역을 '돔'처럼 감싸는 다층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 우주 기반 요격 시스템도 포함된 트럼프의 '골든 돔'(Golden Dome) 계획을 두고도 "미국의 적들에겐 우주에 미사일 방어 무기를 배치하는 이 시스템이 방어만큼이나 공격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국 백악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환영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5. 08. 25 [로이터= 연합뉴스]

미 민주당 "노벨평화상 노리면서 전쟁부?"
소프트 파워 경시, 하드 파워 중시로 퇴행

니콜라스 번스 전 주중 대사도 "과거를 바라보는 결정"이라면서 "이는 미국과 끊임없이 글로벌 영향력을 다투는 중국의 서사에 들어맞는다. 중국은 이를 불공정하게도 미국은 국제 질서에 위협이고 중국은 평화의 수호자란 증거로 활용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한 전직 국방부 관리도 전쟁부 명칭 복원의 부작용으로 "우리의 적들이 이를 이용해 미국을 전쟁을 부추기는 국가이자 국제 안정에 있어 위협이라고 묘사할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미 민주당에선 노벨평화상을 노리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약속한 트럼프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비난했다.

생어는 전쟁부 명칭 변경이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합리화'의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생어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훨씬 전부터 푸틴은 러시아 제국의 옛 국경 일부를 되찾겠다고 결단하게 된 "근본 원인"의 하나로 1990년대에 미국이 주도한, 러시아 국경까지 나토의 확장 시도를 꼽았다. 서방의 대응은 언제나 나토의 존재는 전적으로 방어적이라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5일 미국 펜타곤 내 피트 헤그세스의 집무실 문에 '국방부 장관' 대신에 '전쟁부 장관'이란 문패가 붙어 있다. 2025. 09. 05 [로이터=연합뉴스] 

생어가 우려하는 세 번째 지점은 '트럼프 미국'에서 확산될 소프트 파워 경시 풍조다. 생어는 "그 세계에서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사라지고 하드 파워가 찬양받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미국국제개발처(USAID) 폐쇄,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 방송 중단, 그리고 국무부 예산 중 해외 원조 수십억 달러 삭감 등을 그 대표적 사례로 들고 "미국은 민주주의 증진 사업과 국가 자선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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