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경상흑자 108억 달러 역대 최대…내년은 어두워

대아세안 수출도 8월 기준 역대 최고치

'케데헌' 효과, 굿즈 판매 등 큰 파급 효과

아세안 수출 두 달째 대미 수출보다 많아

IB, "한국 내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 줄 것"

2025-09-04     이태경 편집위원(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7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동월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경상수지는 27개월째 흑자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효과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세안 수출이 8월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한 점도 주목된다. 아세안 수출 증가가 미국 수출 감소를 벌충 중이다. 한편 해외 투자은행들은 관세 등의 여파로 한국의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올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7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 7월 기준 역대 최대치 찍어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7월 경상수지는 107억 8000만 달러(약 15조 원) 흑자로 집계됐다. 6월(142억 7000만 달러)보다 줄었지만, 7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일 뿐 아니라, 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긴 27개월 연속 흑자 기록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누적 경상수지 흑자(601억 5000만 달러)도 전년 동기간(492억 1000만 달러)보다 약 22% 많다.

항목별로는 7월 상품수지 흑자(102억 7000만 달러)가 월 기준 역대 3위였던 6월(131억 6000만 달러)보다 약 29억 달러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85억 2000만 달러)보다는 약 18억 달러 늘어 역대 같은 달만 비교하면 세 번째로 많다.

수출(597억 8000만 달러)은 작년 같은 달보다 2.3% 증가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 두 달 연속 증가세지만, 6월(603억 7000만 달러)보다는 1.0% 감소했다. 통관 기준으로 특히 반도체(30.6%)·승용차(6.3%) 등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이 높았다. 반대로 컴퓨터주변기기(-17.0%)·의약품(-11.4%) 등은 줄었다. 지역별로는 동남아(17.2%)·EU(8.7%)·미국(1.5%)에서 호조를 보인 반면 중국(-3.0%)·일본(-4.7%)에서는 고전했다.

수입(495억 1000만 달러)은 전년 동월보다 0.9% 줄었지만, 전월보다는 4.9% 늘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 에너지 가격이 낮아졌지만, 전월보다 에너지류 수입 물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원유(-16.7%)·석유제품(-5.8%) 등 원자재 수입은 작년 7월보다 4.7% 축소됐다. 반대로 반도체제조장비(27.7%)·정보통신기기(12.6%)·반도체(9.4%) 등 자본재 수입은 6.2% 늘었다.

서비스수지는 21억 4000만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적자 규모가 전월(-25억 3000만달러)이나 작년 같은 달(-23억 9000만 달러)보다 줄었다. 서비스수지 가운데 여행수지(-9억 달러)의 경우 여름철 성수기에 따른 외국인 국내 여행 증가로 적자 폭이 전월(-10억 1000만 달러)보다 감소했다.

본원소득수지(29억 5000만 달러)는 6월(41억 6000만 달러)의 약 70% 수준에 그쳤다. 직접·증권 투자 배당 수입이 줄어 배당소득수지가 34억 4000만 달러에서 25억 8000만 달러로 뒷걸음친 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월별 경상수지 추이 및 항목별 수지 현황

'케데헌' 효과가 굿즈 판매 등에 영향 미쳐 

박성곤 한은 국제수지팀장은 "외국인 국내 여행은 중국인을 중심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박 팀장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데헌' 영향과 관련, "케데헌 효과가 여행수지에 얼마나 영향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며 "지식재산권(IP)이 넷플릭스 본사에 있어서 관련 효과는 크지 않지만, 굿즈 판매라든지 여행 수요, 식품 수출 등으로 다양하게 파급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융계정 순자산(자산-부채)은 7월 중 110억 8000만 달러 불었다. 직접투자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34억 1000만 달러,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17억 2000만 달러 각각 늘었다. 증권투자에서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주식을 중심으로 101억 달러 증가했고, 외국인의 국내 투자 역시 채권 위주로 76억 4000만 달러 늘었다.

 

월별 경상수지. 자료 : 한국은행

아세안 8월 수출도 8월 기준 역대 최대

미국의 관세 영향으로 지난달 한국의 대미 수출이 급감한 가운데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으로의 수출이 증가하며, 대미 수출 감소분을 상당 부분 상쇄한 것으로 나타났다. 8월 아세안 수출은 역대 동월 기준 최대를 기록하며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8월 한국의 대아세안 수출액은 108억 9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11.9% 증가했다. 미국발 관세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같은 기간 대미 수출이 12.0% 급감하고, 대중 수출도 2.9% 줄어 전체 수출 감소 우려가 있었지만, 대아세안 수출이 증가하며 전체 수출을 플러스로 견인했다.

대중, 대미 수출에 이어 줄곧 3위를 지키던 대아세안 수출은 올해 7월과 8월에 두 달 연속으로 대미 수출을 추월했다. 아세안 수출이 대미 수출을 추월한 것은 2023년 10월 이후 1년 9월만이다.

아세안 수출은 지난 2월(95억 6000만 달러)에는 중국(95억 달러)을 제쳐 2002년 2월 이후 23년 만에 처음 대중 수출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어 지난 3월에도 102억 6000만 달러로 중국(100억 6000만 달러)을 제치며 두 달 연속 수출 2위 자리를 유지했다. 대미·대중 수출 감소로 한국의 전체 수출 실적이 모자랄 때마다 대아세안 수출은 그 공간을 메우며 '수출 효자' 역할을 했다.

 

삼성전기 베트남 공장. 연합뉴스

한국의 대아세안 수출 증가는 반도체가 이끌고 있다.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전자기기 시장의 성장 등으로 아세안으로의 반도체 수출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1∼25일 기준) 품목별 대아세안 수출은 반도체가 작년보다 47.0% 증가한 27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반도체 외에 선박이 359.9%, 이차전지가 23.9% 증가하는 등 실적을 이끌었다.

전문가들은 아세안이 향후에도 미국과 중국을 넘어설 차세대 주력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적 '탈중국'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 해외직접투자(FDI) 대상지로 부상하고 있고, 젊은 인구구조와 중산층 확대, 디지털 경제의 급성장 등도 아세안 시장의 매력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아세안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코트라 보고서에 따르면 2021∼2024년 대아세안 5개국(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의 대중국 수입 증가율은 6.0%로, 한국(0.1%)보다 확연히 높은 수준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최근 아세안 시장은 일본의 퇴보, 중국의 약진, 한국의 선전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며 "한국에 있어 아세안은 아직 생산기지 역할에 그치는 측면이 강하고 현지 진출 수요는 아직 더딘 편이지만, 중국에 맞서는 투자 전략과 한류로 인기를 끄는 K-푸드·화장품 등을 통한 시장 확대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투자은행들의 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 전망

해외 투자은행들, 한국 경상수지 흑자 규모 올해 보다 내년에 나빠질 것으로 전망

한편 내년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올해보다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해외 투자은행(IB)들의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관세 인상 여파로 수출 둔화가 조만간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IB 8곳은 한국의 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이 올해 평균 5.1%에서 내년 4.4%로 0.7%p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IB들은 이 비율이 지난해 5.1%에 이어 올해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내년부터 급격히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올해 전망치가 지난 7월 말 평균 4.8%에서 지난달 말 5.1%로 크게 상향 조정된 반면 내년 전망치는 평균 4.4%로 유지되며 올해와 내년의 격차가 벌어진 모습이다.

씨티는 올해 전망치를 7월 말 5.2%에서 지난달 말 5.8%로 높이고, 내년 전망치는 4.6%에서 4.4%로 낮췄다. JP모건은 내년 전망치만 4.9%에서 4.8%로 소폭 하향했다.바클리는 올해 전망치를 4.7%에서 5.7%로, 내년 전망치를 4.2%에서 4.6%로 각각 높였지만, 올해 상승 폭이 더 컸다. 노무라 역시 올해 전망치를 4.7%에서 5.1%로, 내년은 3.6%에서 3.9%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IB들 8곳이 제시한 올해와 내년의 경제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각각 1.0%와 1.8%로, 한 달 사이 변동이 없었다. JP모건은 올해 전망치를 0.7%에서 0.8%로, 내년 전망치를 2.0%에서 2.1%로 소폭 상향했다. 노무라는 올해는 1.0%로 유지하고, 내년을 1.8%에서 1.9%로 조정했다.

이처럼 성장률 전망이 거의 제자리인 상황에서 경상수지 비율 격차가 커졌다는 것은 그만큼 '수출 절벽'이 심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달 28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1100억 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했다. 석 달 전 전망치(820억 달러)보다 280억 달러를 높였다. 다만 내년 전망치는 기존 720억 달러에서 850억 달러로 130억 달러 높이는 데 그쳐, 올해와 내년의 격차는 10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이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수출 둔화를 가정한 전망치로 풀이된다.

한은은 내년 세계 교역이 2.4% 증가하겠지만, 우리나라 재화 수출은 미국발 고관세에 직격탄을 맞아 0.1%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