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학살을 막지 못한 '침묵의 공모자'가 될 것인가

내가 알던 모든 이가 죽고 모든 곳이 사라졌다면

가자 완전 점령과 서안 합병을 선언한 네타냐후

변한 적이 없는 집단 학살과 인종청소라는 목적

서방 선진국과 초국적 자본이 공모한 전쟁범죄

중동 아랍 정권들에게로 향하는 분노와 배신감

분노와 공포가 무력감과 수치심으로 변하기 전에

2025-08-19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일요일인 20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접경인 지킴 검문소를 통해 북부 가자지구로 들어오는 구호 물자 트럭에 접근하려다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숨진 이들의 시신을 가자시티의 시파 병원으로 옮긴 뒤 오열하고 있다. 2025. 07. 20 [AP=연합뉴스]

"가자의 심각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당신이 자라면서 알게 된 모든 사람을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모와 삼촌, 사촌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 … 이제 그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상상해 보라. … 당신은 매일 수 시간을 들여 음식을 찾거나 깨끗한 물을 구해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 사이 그녀는 폭격으로 두 다리를 잃었고, 병원에서 마취제가 떨어졌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할 때 당신은 그녀의 손을 잡아야 했다. … 자라면서 놀던 장소, 생일을 축하하던 친구들의 집, 첫 데이트를 했던 장소, 모든 것이 사라지고, 끝없는 회색의 폐허가 됐다. … 당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밀가루 한 봉지를 구걸하며 땀에 젖은 절박한 인파를 밀치며 지나가던 중 총소리를 듣고 땅에 쓰러진다."

미국의 진보 언론 <자코뱅>의 필자인 브란코 마르체틱(Branko Marcetic)은 지금 가자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살육, 굶주림, 질병으로 뒤덮인 집단 학살 속에서 230만 명이 살던 사회가 완전히 파괴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제노사이드는 이제 그야말로 종말적 단계를 향하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권은 가자지구의 완전 점령과 서안지구의 합병을 선언했다. 이미 가자지구의 80% 가까이를 군사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이제 나머지 3개 도시(가자 북부의 가자시티, 가자 중부의 데이르 알-발라와 누세이라트)까지 완전히 파괴하고 점령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서안지구에 정착촌 3천 채 이상을 추가 건설할 계획도 승인했다.

이스라엘 국회에서는 서안지구를 이스라엘 영토로 선언하는 결의안이 71 대 13으로 통과됐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네타냐후와 초강경 극우 시온주의자들은 ‘시나이반도에서 골란고원과 시리아 남부를 거쳐 유프라테스강까지’ 이어지는 대(大) 유대 국가 건설로 나아가려는 구상도 숨기지 않고 있다.

네타냐후 정권과 그 최대의 후원자인 트럼프 정권은 처음부터 '영구 휴전'과 '점령군의 철수'라는 하마스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인질'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휴전 협상'에 대한 모든 움직임은 그저 시간 끌기를 위한 사기극과 쇼에 불과했다. 인종청소를 완수하며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강탈하고 자원을 약탈하려는 그들의 목표는 변한 적이 없었다.  

 

물론 가자와 서안의 고립 분산된 극히 일부 지역에 아무런 독립적 권한도 없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허용해줄 가능성은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진정한 국가가 아니라 가짜 국가에 불과하고, 아랍의 독재 정부들과 유럽연합 등에 체면치레하라고 던져줄 텅 빈 포장지일 뿐이다. 이스라엘 점령군은 이러한 진실을 가리기 위한 가자의 언론인 표적 암살을 더욱 강도 높게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까지 사망한 가자의 기자와 언론인 수는 240명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 남북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유고슬라비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생한 언론인 사상자 수를 전부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주식 시장이 세계 어느 곳보다 더 높은 수익 상승률을 보이면서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최첨단 군사 기술과 주변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의 성공을 보면서 국제 자본과 투자자들은 아낌없이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시장은 중동의 명확한 승자를 지목하고 있다"라고 이것을 평가했다. 결국,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발전한 서구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초국적 자본들이 공모한 집단 학살이다.

그 핵심에는 네타냐후와 함께 트럼프가 있다. 반제국주의 사상가 질베르 아슈카르는 이렇게 지적한다. "논평가들은 트럼프가 가자지구에서 진행 중인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열망이 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총리에게 '평화'를 강요했다는 보도는, 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짓 소문일 뿐이다. … 실제로 트럼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할 계획을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세우도록 허용한 인물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을 전폭 지지하는 이유는 중동 패권에 대한 그들의 뚜렷한 이해관계의 일치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미국은 중국과 대결하기 위해 이제 중동에서 발을 빼고 싶어 한다'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 중동 석유와 에너지에 대한 의존이 결정적인 나라다. 미국은 중국과 대결을 위해서도 중동 패권을 놓칠 수가 없다.

 

'미국이 아시아로 회귀한다'는 떠들썩한 논란과 달리 미국은 중동 지역의 군사기지나 군병력을 크게 감축한 바가 없다. 이것이 얼마 전 트럼프가 네타냐후와 함께 이란을 폭격한 이유이고, 이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이스라엘 합동 폭격의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독일과 영국, 유럽연합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은 가자에서 매일 죽어가는 1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의 생명보다, 가자에 남아있다는 50여 명의 이스라엘 '인질'의 안전에 대한 노골적인 선택적 관심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과 기아 학살이 최정점에 달하면서 이들 나라의 정부마저도 최근에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겠다'라는 선언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앞서 언급했듯이 껍데기뿐인 가짜 국가를 뜻한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대한 유럽 정부들의 립서비스는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을 막아서기 위한 실질적 조치는 취하지 않으면서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새롭고 창의적인 수법'이라는 냉소적인 반응과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 팔레스타인 민중이 가장 큰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중동과 아랍 정권들의 태도다. 이들은 지난 2년 동안 말만 하면서 집단 학살을 막기 위한 어떤 실질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중동과 석유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해 온 아담 하니에(Adam Hanieh)는 그 이유를 이들 친미 독재 정권들과 미국의 동일한 이해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같은 국가들은 미국의 프로젝트와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 있지 않다. … 미국과 걸프 국가들 사이에는 극도로 긴밀한 협력 관계가 있으며, 이는 트럼프 하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현재의 미-러 협상을 주최하고 있다는 사실과 UAE가 향후 10년간 미국에 1조 4천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최근 발표에서 볼 수 있다. … 따라서 우리는 아랍 국가들이 트럼프가 제안하는 방식의 인종청소와 '정상화'에 근본적으로 반대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 

 

베트남 전쟁부터 미국의 제국주의 역사와 패권 전략을 분석해 온 생태사회주의자 조나선 닐은 미국, 유럽연합, 아랍의 정권들이 집단 학살을 막지 않는 더 중요한 이유를 지적한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두려움을 원했다. … 그들은 우리에게 그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우리가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 … 인종차별적 살인, 난민 박해, 학살이 정상화된 세상. … 우리의 분노와 공포가 두려움, 무력감, 그리고 수치심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결국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얼마 전 광복 80주년을 기념했듯이, 베트남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프랑스에 맞서서 식민지 해방을 이루었듯이, 팔레스타인도 언젠가는 반드시 해방될 날이 올 것이다. 조선일보는 며칠 전 '우리가 파병까지 해서 막으려 한 베트남 빨갱이 호찌민의 동상이 왜 서울에 있냐'고 호통치는 칼럼을 실었는데, 언젠가는 팔레스타인 민족해방 투사의 동상이 서울에 세워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먼 미래에 세워질 동상이나 기념비가 아니다. 지금 집단 학살을 지켜보고 침묵하고 나서 나중에 그것을 돌에 새기고 애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가 우리를 집단 학살을 막지 못한 침묵의 공모자로 기록하도록 놔둘 수 없다. 21세기에 최초로 벌어지는 주요 선진 국가들이 공모한 이 공공연하고 끔찍한 집단 학살을 멈추기 위해 지금 당장 더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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