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MAGA는 내용도 전략도 빈곤한 불량품

'돈 많고 힘센 나라 만들기' 정치구호로는 그럴듯

현실은 전 세계 상대로 한 정신착란적 관세폭력

공장 강제 유치하면서 국가 인프라에는 무관심

미국의 문제를 외부 탓으로 돌리는 책임 전가론

불량품 국가 비전으로 미래를 만들 수는 없어

2025-08-15     김평호 미국톺아보기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의약품 250% 관세! 반도체 100% 관세! 인도에 러시아 에너지 구매 관련 50% 관세! 브라질 50% 관세! 중립국 스위스 39% 관세! EU 투자 약속 안 지키면 35% 관세! 이건 통상적 무역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신착란에 가까운 트럼프의 행패다. 전후 맥락을 살피면 절망적 블러핑에 가깝다.

 

사진 1. 4월 2일, 백악관에서 관세부과 조치를 발표하며 마가 모자를 날리는 트럼프. 사진 블룸버그.

중국과 러시아는 차치하고라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의 말이 먹히지 않는다(예: 브라질, 캐나다, 인도). 그가 발표한 협상 내용과 다른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예: 일본, EU, 한국). 군사전쟁도 ‘MAGA(마가)’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예: 우크라이나, 이란).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T. 프리드먼이 말했듯, “미국은 더는 네가 생각하는 미국이 아니고, 우리는 더는 네가 생각하는 우리가 아니다.” 자신을 황제쯤으로 생각하는 그로서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착란에 가까운 트럼프의 관세 광풍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의 성향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국가 비전에 들어있다. 구호로서의 마가는 정치적 호소력도 강하고 그 자체로 나무랄 건 없어 보인다. 문제는 트럼프 본인조차 대략적 설명에 그치기 때문에 미래의 비전다운 깊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가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고 비판적 검증도 거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가의 꿈은 부국강병의 미국

지난 2016년 3월, <뉴욕 타임스>가 실은 트럼프 인터뷰 기사가 하나의 실마리다. 그는 당시 가장 유력한 공화당 대선후보였고, 특히 전에 없던 스타일의 정치인이었다.

 

사진 2. 2016년 7월.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사진 VOA).

기자는 ‘위대하게’라는 표현에 대해 질문한다. 트럼프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 유권자분이 제가 ‘위대하게’를 ‘부유하게(rich)’라는 뜻으로 쓴다며 동의할 수 없다고 말씀하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금 미국은 빚쟁이 국가, 가난한 나라다. 군대도 개혁해야 하고 다른 일도 많은데 돈이 없다. 그래서 우선 돈 많은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 그 돈으로 위대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기자는 이어서 미국이 위대했던 시기, 즉 본받아야 할 미국이 언제의 미국인가를 묻는다. 트럼프는 두 시기를 언급한다. 하나는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또 다른 하나는 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세기 초, 국제적으로 요동치는 그 무렵 미국은 왕성한 사업가 정신으로 강하게 밀고 나가는 국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기 중반에는 2차대전에서 승리하고 새 경제 질서를 세우면서 미국은 세계를 주도했고 모두가 존경하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19세기 후반에 전개된 2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앞선 나라로 뛰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먼로 독트린을 다시 내세우며 중남미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고, 태평양으로 진출,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다. 20세기 중반은 소위 ‘미국의 세기(American century)’가 시작되는 때다. 2차대전은 결정적이다. 그때까지 쌓은 재력과 산업역량을 바탕으로 미국은 승리를 거뒀다. 이후 1970년대까지,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소위 ‘자본주의 영광의 30년’이라 불리는 시대를 맞이한다.

이렇게 보면 트럼프의 마가는 ‘돈 많고 힘센 나라 만들기’ 정도의 뜻이다. 물질주의적 부국강병론인 셈이다. 유권자가 지적했듯, 천박하긴 하지만 납득하지 못할 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국강병의 나라를 만든다는 것일까? 트럼프에 따르면 방법은 간단하다. 1. 수입 물품 관세부과 2. 미국 제조업의 부흥.

 

사진 3. 지난 4월 2일, 그가 말한 소위 ‘해방의 날’, 백악관 뜰에서 각 교역국에 부과하겠다는 상호관세율을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돈 많고 힘센 나라 만드는 방법

미국이 빚쟁이에다 가난한 나라인 이유는 무역적자 때문이다. 그동안 다른 나라는 미국의 부와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 그들은 미국의 시장을 왜곡했고 우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그 점에선 적보다 오히려 동맹국이 미국을 망쳤다. 그것을 털어낼 가장 좋은 방법은 관세다. 관세를 올리면 가격이 오르니 수입이 줄고, 기업들은 저렴한 외국 노동이나 제품에 의존하지 않고, 해외무역보다는 국내에 공장을 짓고 우리 인력을 키워 물건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무역적자를 해소하면 미국은 돈 많고 힘센 나라가 된다.

관세보다 더 큰 마가의 꿈은 미국 제조업의 부흥—트럼프의 말로 “세계 최강의 제조업 국가(manufacturing superpower of the world)” 만들기—이다. 논리로만 따지면 이건 관세보다 더 단순하다. 그는 “모든 산업의 공급망을 미국에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미국 내에 공장을 짓고 외국과의 교역을 최소화한다. 그렇게 해서 국부의 유출도 막고, 인력도 키우고 줄어든 제조업 일자리도 늘린다. 이를 통해 재산업화에 성공하면 미국은 돈 많고 힘센 나라가 된다.

트럼프 말대로 하면 부국강병의 나라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이 쉬운 일을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구호뿐인 산업화 “냉장고를 만드는 게 미국의 미래일까?”

관세는 세금이다. 수입기업과 소비자에게서 거둔다. 그 관세만큼 원자재, 소비재 가격은 오른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소비자 부담이 늘어난다. 이윤 폭이 줄기 때문에 수입업자는 관세면제를 받겠다며 워싱턴 로비에 나선다. 생산비용은 오르고 수출품의 국제 경쟁력은 떨어진다. 상대국의 거래 회피로 교역이 감소한다. 적절하게 구사되지 않으면 수입-수출 모두 축소되고 비교우위에 입각한 국제분업의 이익은 감소한다. 트럼프 관세는 여기에 예측 불가라는 문제를 더한다. 시장과 자본에 예측 불가능성은 기피 요인 1호다.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출업자-수입업자는 사업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기업의 투자도 소비 심리도 위축된다. 무역의 불확실성이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이다.

한편 마가가 꿈꾸는 제조업 부활은 미국 땅에 중국을 재현하겠다는 듯 공장을 짓거나 옮기는 일을 특히 강조한다. 그런데 투자를 유치하고 공장을 짓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더 중요한 일은 숙련된 기능인력, 엔지니어와 과학자의 양성, 도로와 공업용수, 전기공급망 같은 국가의 인프라 투자다. 트럼프 정부는 이런 일에 무관심하다. 오히려 인재양성의 산실인 대학과 연구소를 총장 축출, 소송, 연구비 지급 중단 등으로 억압하면서 길들인다. 유학생을 불법 이민자 취급하면서 행동을 제약하거나 겁박한다. 트럼프 정부의 파쇼적 행태와 인재의 창의성에 기초한 혁신은 어울릴 수 없다.

 

사진 4. 노동자가 아니라 로봇과 컴퓨터가 일하는 공장 자동화의 모습.

한편 마가는 산업에 대한 현실진단이나 면밀한 미래의 청사진 대신, 수입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미국의 제조업이 위축되고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주장만 반복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미국의 제조업은 위축된 것이 아니라 첨단분야(high-end products)로 이전했다. 미국의 공장은 공구가 아니라 공작기계(machine tools), 장난감이 아니라 의료장비, 가전제품이 아니라 발전기 터빈, 생활용품이 아니라 비행기를 만든다.

사실 기술-자본이 집약된 첨단 제조공장의 일자리는 로봇과 컴퓨터로 대체됐고 대체되는 중이다. 소위 ‘좋은 생산직 일자리(good blue-collar job)’가 줄어든 데에는 생산성 증대를 위해 도입한 공장 자동화가 무역 이상으로 큰 원인이다. 과거의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시대는 적어도 미국에선 지나갔다. 지난 2023년 IMF 통계 기준, 미국이 독일, 일본, 한국 세 나라를 합한 것보다 큰, 세계 2위의 제조업 매출액을 기록한 배경은 그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두 배 정도로 1위다. 이런 정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한 전문가는 ”세탁기를 만드는 게 미국의 미래가 아니다“라고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백서도 기획안도 없이 관세만 노래하는 마가는 불량 이데올로기

관세와 마가의 꿈은 모순이다. 관세를 보호주의가 아니라 무역협상의 지렛대라고도 하지만, 현실의 트럼프 관세는 폭력과 협박이다. 무역적자를 줄이는 이익보다 자기 자신과 세계를 고립과 위기로 몰아가는 손해가 훨씬 크다. 한편, 마가의 산업화는 구호에 머물러 있다. 제조업 르네상스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부는 꼼꼼한 백서도 기획안도 준비하지 않은 채 관세만을 반복해 노래한다.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마가는 사상누각의 망상이다. 미래비전이 되기엔 빈약하기 그지없다.

 

마가를 불량품 사상(?)으로 만드는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은 외부책임론이다. 미국은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세계화와 자유무역 시대를 주도했다. 1995년에는 그것을 제도화하는 WTO(세계무역기구)라는 조직도 만들었다. 그러다 WTO를 무력화하고 양자-다자간 자유무역 틀을 따로 만들었다. 이 모든 일의 주역은 미국이다. 그런데 마가는 이를 미국의 제조업과 일자리를 털어먹기 위한 음모(?)라고 믿는다. 심지어 동맹이라는 나라들까지 여기에 가세해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고 주장한다. 마가 추종자들에 의하면 외부의 불순한 세력 때문에 미국은 빚쟁이가 되고, 가난한 나라로 떨어졌다. 국내적으로는 딥스테이트, 대외적으로는 적국과 동맹국들이 그 주역이다. 마가 추종자들이 ‘미국 먼저(America First)’를 외치는 까닭이다. 그들의 눈에 책임은 외부에 있고 자신은 선의의 희생자다. 미국을 사악한 음모의 피해자로 여기기 때문에 마가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반성 대신 타자에 대한 적개심을 쌓는다. 적개심은 타자에 대한 폭력, 복수와 응징을 정당화한다. 트럼프 본인은 물론 그의 정부가 아무 거리낌 없이 권위적 통치행태를 드러내는 이유 중 하나다.

마가의 미래비전은 내용과 전략이 부실할 뿐 아니라 방법론도 빈약하다. 마가의 외부책임론은 타자를 제거와 배제의 대상 정도로 여기는 오만한 미국 예외주의 이데올로기의 트럼프식 변형이다. 이런 불량한 사상으로는, 지금의 미국은 위대하기는커녕, 돈 많고 힘센 나라조차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사족: 최근 세간의 시선을 끄는 엡스틴 파일 사태와 관련, 마가 추종자들이 트럼프에 분노하는 이유는 그가 연루되어 있다는 점과 함께, 말과 달리 실상은 그도 딥스테이트의 일원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배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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