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구속, 끝이 아니다…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

16개 수사 항목 중 극히 일부만 혐의 입증해

혐의 차고 넘쳐…구속기한 내 전부 기소 불가

특검 연장해도 시간 부족…"상설특검 가야"

수년간 풀리지 않은 사건이 불과 40일 만에

"사건 은폐한 검찰들 부실수사 책임 물어야"

2025-08-13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가 1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2025.8.12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53)가 13일 0시를 조금 넘겨 전격 구속됐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가 '50 대 50'으로 운영됐다고 했던 윤석열-김건희 공동정권의 거대한 한 축이 3년 여 만에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다만 김건희 구속으로 특별검사팀은 수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지만, 김건희에 대한 각종 비리 의혹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난 수준이다. 지난 3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김건희의 국정농단 문제가 한두 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정권잡으면"…'V0' 김건희
외교부터 내치까지 국정에 개입

검사도 무장해제…무소불위 권력

지난 6일 특검에 출석한 김건희는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면서 극도로 자세를 낮추고 마치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는 듯 말했지만, 지난 정권에서 그의 행보는 대통령 이상이었다. '브이제로(V0)'라는 김건희의 별칭은 그 자체로도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김건희의 위상은 전부 다 따질 것도 없이 몇 가지 장면만 추려도 충분히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이미 대선 때부터 "내가 정권 잡으면"(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 녹취)이라고 말했던 김건희는 윤석열 정권 출범 첫 해부터 넘어서 안될 '선'을 아무 견제 없이 손쉽게 넘었다. 그는 2022년 12월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 비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2023년 4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엔 넷플릭스로부터 투자 보고를 직접 받기도 했다. 권한도 없는 민간인이 외교 문제까지 손을 댄 것이다.

 

순천만 국가정원박람회에 참석한 김건희. 2023.3.31. 대통령실 사진뉴스

김건희는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라거나 "적극적으로 남북문제에 제가 좀 나설 생각이다"(서울의 소리 최재영 목사 영상) 따위의 발언도 서슴없이 했다. 지난해 검찰이 김건희 명품가방 수수 사건에 대해 무혐의를 처분한 직후엔 경찰을 대동하고 마포대교에 올라 "현장에 와보니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한강대교의 사례처럼 구조물 설치 등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 대통령인 것처럼 행세했다.

김건희 앞에서는 검사도 무장 해제됐다. 김건희를 수사하던 검사들은 김건희가 부른 경호처 부속건물에 불려가서 경호실 직원들에게 신분증과 휴대전화까지 반납하고 조사를 했다.

'김건희 특검법'이 총 16개의 수사 대상을 설정하고 있는 점도 김건희가 '윤건희 공동정권'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했는지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특검법이 적시된 수사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우리기술 주가조작 사건 ②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③명품가방 및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금품 및 향응 수수 사건 ④대통령실 집무실 및 관저이전 국가계약 부당 개입 사건 ⑤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⑥채해병 사망 사건 및 세관마약 사건 구명 로비 사건 ⑦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⑧김건희와 명태균·건진법사 등이 2022년 대우조선 파업 사태에 불법 개입하거나, 창원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정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국가기밀을 유출하고, 김건희 측근이 법적 근거 없이 국가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등 국정농단 의혹 사건 ⑨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2년 재보궐선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부당 개입한 사건 ⑩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여론조사, 무상 여론조사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등을 공천거래하며 선거에 개입한 사건 ⑪김건희·명태균·건진법사 등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2021년 재보궐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2년 재보궐선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불법·허위 여론조사, 공천거래 등 선거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 사건 ⑫윤석열 재임 기간 김건희가 대통령 지위 및 대통령실 자원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의혹 사건 ⑬제20대 대선 허위사실 공표 및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⑭각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고의적으로 지연·은폐하거나 비호, 증거인멸 및 인멸을 교사한 의혹 사건 ⑮각 사건을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 등이 방해한 의혹 사건 ⑯각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범죄와 특검 수사를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 등.

이 가운데 수사를 지연·은폐하거나 증거인멸 및 인멸을 교사한 의혹, 특검 수사를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 등 3개 항목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사건이 명시된 13개 항목이 김건희가 과거에 저지른 불법 행위이거나, 윤석열 정권에서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국정농단에 해당한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가 1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2025.8.12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16개 항목 중 겨우 3개 혐의로 구속
다룰 사건은 많은데 시간은 태부족
"기한없는 상설특검으로 조사해야"

이번 김건희 구속은 이처럼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비교적 수사 자료가 오랫동안 축적돼 입증이 수월했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관련 공천개입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만 가지고 이뤄졌다. 구속의 단초가 됐던 3개 혐의를 포함한 나머지 범죄 혐의들은 아직 '빙산의 일각'만 밝혀진 수준이다.

다행히 김건희 구속으로 자신감을 얻은 특검팀은 다른 혐의들에 대해서도 속도를 올리는 모습이다. 특검팀은 이날도 오전 '관저 이전 특혜 의혹'과 관련해 인테리어 업체 '21그램'과 감사원, 김오진 전 국토부 1차관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어서 통일교 교인들의 무더기 국민의힘 당원 가입 의혹 등을 확인하기 위해 국민의힘 여의도 중앙당사에도 수사관을 파견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아울러 특검팀은 건진법사 전성배 씨도 오는 18일 피의자로 소환하기로 했다. 184억 원의 투자금을 부당하게 끌어모은 '집사 게이트' 의혹도 전날 김건희 일가의 '집사'로 불리는 김예성 씨가 베트남에서 귀국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됨에 따라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도 오는 14일 오전 10시 구속 후 첫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13일 김건희특검이 압수수색 중인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2025.8.13. 연합뉴스

다만 김건희 특검이 다뤄야할 사건이 너무 많은 만큼 특검이 종료될 때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건희 특검팀은 특검 1명, 특검보 4명, 파견검사 40명, 파견공무원 80명, 특별수사관 80명 등 최대 205명을 투입할 수 있으며, 최장 150일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인력을 투입해서도 3개 혐의로 김건희를 구속하는 데에만 42일이 걸렸다. 16개 수사 항목에 따른 개별 사건을 일일이 세기도 어려운 만큼, 단순한 산술로도 150일 안에 수사를 끝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김건희 측근 무속인의 로비 의혹 고발장까지 접수되는 등 새롭게 인지하는 수사들까지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특검팀이 구속 기한 20일 안에 16개 수사 대상에 있는 항목을 갖고 김건희를 기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구속 기한에 맞춰 1차로 기소하고, 여죄에 대해서는 추가 기소를 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특검 이후에도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상설특검을 가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당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끝까지 간다 특별위원회' 제8차 공개회의에서 김건희 구속에 대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면서도 "김건희 특검은 기존 의혹 15가지와 플러스 알파, 즉 새로운 혐의까지 16가지를 수사토록 했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될수록 '범죄 노다지'라도 되는 듯 플러스 알파가 기존 의혹만큼이나 커지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김 권한대행은 그러면서 "150일 수사 기간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며 "수사 시한 연장과 전담 인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건희 특검은 기한과 인력을 확대하도록 법개정을 해야 한다"며 "쏟아지는 의혹은 기한없는 상설특검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당 윤재관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악의 화수분 김건희와 그 부역자들의 죄상은 네버엔딩 스토리일 것이 자명하다"며 "조국혁신당은 특검이 이들의 죄상을 끝까지 추적하고 단죄할 수 있도록 특검의 기한 연장, 수사 범위 확대 등을 담은 특검법 개정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윤 수석대변인은 "국민의 염원인 '끝까지 단죄'를 실현하기 위해, 김건희 단죄 시리즈가 도중에 종영되는 일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조국혁신당 '끝까지 간다'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이 발언하고 있다. 2025.8.13. 연합뉴스

검찰 '부실수사 책임'도 밝혀야
"부부 동시 구속, 검찰이 만들어"
"반복 안하려면 대통령 권한 견제해야"

한편 김건희 구속을 계기로 검찰에 대한 '부실수사 책임' 요구와 '검찰청 해체' 요구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는 망가진 대한민국의 형사 사법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2010~2011년 벌어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경우, 2019년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처음 의혹이 제기된 지 6년 만에야 김건희를 구속하는데 이르렀다. 윤석열은 대선에서도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에게) 탈탈 털렸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김건희에 대한 소환 한 번 이뤄지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주가조작과 관련한 각종 증거가 드러났고 주범들도 실형을 선고 받았음에도 검찰은 지난해 김건희에 대해 특혜성 '황제 알현 수사'만 한 채 무혐의 처분했다.

묻히는 줄 알았던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지난 4월 윤석열 탄핵 뒤에야 서울고검에서 재수사를 결정했다. 김건희 구속의 '스모킹 건'이 된 증권사 직원 녹취는 고검의 재수사 과정에서 확보됐다고 전해졌다. 수년간 수사한 검찰이 내놓지 못한 증거 녹취를 고검이 단 몇 달 수사 만에 찾아냈고, 특검이 40여일 만에 구속으로 이끈 것을 두고, 윤석열 정권에 하수인 역할을 자처했던 '정치 검사'들이 어떤 설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 밖에도 특혜성 황제 수사만 한 차례하고 마무리한 김건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의 경우, 전국민이 유튜브 중계로 김건희가 명품 샤넬백을 수수한 장면을 지켜봤음에도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에 대해서도 불기소 처분하면서 김건희에 대해 소환조사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휴대전화 포렌식도 없었다.

 

내란 수괴 피의자 윤석열이 대통령 재임 중이던 지난해 9월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심우정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5.8.13. 연합뉴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김건희 씨가 이처럼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틀어쥔 검찰의 ‘검찰 가족’에 대한 특혜와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결국 헌정 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구속되는 사태에는 검찰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중기 특검은 이번 김건희 씨 구속을 계기로 수사에 박차를 가해 모든 의혹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동시에, 지금까지 부실수사로 김건희 씨 관련 의혹을 은폐해 온 검찰에 대해서도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을 내고 "이번 구속은 권력의 사적 남용과 진실 은폐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참담한 현실"이라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권력의 사적 남용과 진실 은폐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행위임을 이번 사건이 명확히 보여줬다"고 했다. 경실련은 "사건이 제대로 된 재판 절차를 거쳐 공정하게 단죄돼야 하며, 그밖의 모든 관련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진실규명도 이뤄져야 한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통령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권력기관의 독립성과 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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