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 이리 남용될 줄 알았을까?
18세기 영국의 낡은 제도에 대항한 '자유경쟁'
한창이던 산업혁명의 든든한 후견인된 국부론
'모두 시장이 알아서 한다'…부분 인용의 결과
신자유주의 정치인들 '자유방임'만 선택 강조
정작 스미스는 정부 역할 인정, 노동자 동정해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뒤집은 남자
1776년 미국이 독립을 외치던 바로 그해에 스코틀랜드의 한 대학교수가 <국부론>이라는 벽돌 같은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아담 스미스(1723~1790)다. 당시 사람들은 이 책이 훗날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낳는 교과서가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스미스는 평생 결혼도 안 하고 어머니와 살면서 책만 파던 전형적인 '집돌이' 학자였다. 그런데 이 조용한 아저씨가 쓴 글 한 줄이 훗날 월가의 탐욕스러운 투기꾼들부터 신자유주의 정치인들까지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마법의 말
스미스가 던진 가장 유명한 표현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시장에서 각자 제 이익만 챙기려 하다 보면 어느새 사회전체의 이익도 늘어난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신이 뒤에서 실을 조종하듯 말이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이 나중에 너무나 유명해져서 온갖 곳에서 남용되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다. 재벌이 탈세를 해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할 것"이고, 대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해도 "보이지 않는 손의 섭리"라며 둘러댔다.
스미스가 무덤에서 일어난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내가 언제 그런 뜻으로 썼다고!"
실제로 스미스는 상인과 제조업자들을 그리 곱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이 담합해서 가격을 올리려 한다고 경계했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은 이런 부분은 쏙 빼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골라 인용했다. 전형적인 '부분 인용의 마술'이다.
영국사회를 뒤흔든 혁명적 아이디어
18세기 영국은 아직도 길드 제도와 각종 규제로 옥죄인 사회였다. 빵을 구우려면 빵굽는 길드에 가입해야 하고, 구두를 만들려면 구두 만드는 길드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마치 지금의 각종 자격증 제도처럼 말이다.
스미스는 이런 낡은 제도들을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공격했다. "길드? 그딴 거 없애버려! 규제? 최소한으로 줄여! 그래야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고 혁신도 일어난다!"
이 아이디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기존 기득권층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질서가 무너진다!", "전통이 사라진다!"
하지만 시대의 물결은 이미 스미스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산업혁명의 이론적 든든한 뒷배
때마침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증기기관이 돌아가고, 공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기였다. 스미스의 이론은 이런 변화에 완벽한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했다.
'분업이 효율성을 높인다'는 그의 주장은 공장제도의 핵심 원리가 되었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바늘을 만드는 대신, 열 명이 각자 한 부분씩 맡아서 만들면 생산량이 몇 배로 늘어난다는 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단순 반복 작업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어쨌든 영국은 이런 식으로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정치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경제학자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스미스의 사상은 영국 정치의 핵심 교리가 되었다. 특히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존재였다.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마라!"
"규제를 풀어라!"
"자유방임이 답이다!"
이런 구호들 뒤에는 항상 아담 스미스가 있었다. 마치 모든 경제정책의 뒤에 숨어있는 '이론적 보증인' 같은 역할이었다. 정작 스미스 본인은 정부의 역할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았다. 국방, 사법, 공공사업 등은 정부가 해야 한다고 분명히 썼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쏙 빼고 "자유방임"만 강조하는 게 정치인들의 버릇이었다.
계급사회를 정당화하는 마법의 논리
스미스의 이론은 영국의 계급사회를 정당화하는 데도 요긴하게 쓰였다. 부자는 부자 나름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 나름대로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식이다.
"부자들이 사치를 부리는 것도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낙수효과' 논리의 원조도 바로 스미스였다. 귀족들이 화려한 마차를 타고 비싼 옷을 입는 것도 결국 마차 만드는 사람, 옷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는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재벌들이 명품을 사는 것도, 골프장을 만드는 것도 모두 "서민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둘러대지 않나?
제국주의의 이론적 포장지
스미스의 자유무역 이론은 영국의 제국주의 정책에도 훌륭한 포장지 역할을 했다. '자유무역이 모든 나라에게 이익이다'라는 논리로 다른 나라의 시장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특히 19세기 중반 '자유무역 제국주의'라고 불리는 시기에는 아담 스미스의 이름이 대포알만큼이나 위력적이었다. 중국에 아편을 팔아먹으면서도 '자유무역의 원리'를 들먹였고,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면서도 '상호이익'을 떠들었다.
물론 실제로는 영국만 배불렸지만, 이론적으로는 '윈-윈'이라고 포장할 수 있었다. 아담 스미스라는 이론적 방패막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천적이 되다
스미스의 이론은 영국 노동운동에게는 천적 같은 존재가 됐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시장의 원리'를 들먹였고, 노조 결성을 시도하면 "자유경쟁을 해친다"고 막아섰다. '임금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논리였다. 마치 임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미스 본인은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해 상당히 동정적이었다. <국부론>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낮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세 자본가들은 이런 부분은 읽지 않았다. 아니, 읽고도 못 본 척했을지도 모른다.
현대까지 이어지는 영향력
아담 스미스의 영향력은 30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하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제학자이고, '시장만능주의'의 이론적 뿌리이기도 하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시장이 스스로 조절할 것"이라며 아담 스미스를 들먹이던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시장은 스스로 조절하기는커녕 완전히 박살이 났다.
하지만 그래도 아담 스미스의 이름값은 여전하다. 마치 300년 전 스코틀랜드 할아버지가 현재진행형으로 영국과 세계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것 같다.
오해받는 학자의 비극
결국 아담 스미스는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되면서도 가장 많이 오해받은 학자 중 하나가 됐다. 그의 이론은 영국을 근대 자본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온갖 사회문제의 이론적 면죄부로도 악용됐다.
정작 스미스 본인은 도덕철학자였다. <국부론>보다 먼저 쓴 <도덕감정론>에서는 인간의 공감 능력과 도덕성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하지만 이런 면은 묻혀버리고 '이기적 인간'과 '시장만능주의'의 아버지로만 기억되고 있다.
만약 스미스가 지금 살아있다면 자신의 이론이 이렇게 변질된 것을 보고 기가 막혀할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뜻으로 쓴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냐!"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담 스미스라는 이름은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렸고, 그 브랜드는 앞으로도 계속 영국과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300년 전 스코틀랜드의 한 조용한 학자가 던진 돌멩이가 아직도 세상의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