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성공하려면 보수의 뿌리 '토마스 홉스'를 배워라
17세기 영국 뒤흔든 '리바이어던' 저자
"사람은 놔두면 싸워" 강력한 정부 역설
질서·안정 최우선으로 여긴 보수주의자
왕권신수설 정면 부정, 사회계약론 주창
기존 권위에 도전한 혁신가 면목 살펴야
400년 전 영국 땅에 한 남자가 태어났다. 이름은 토머스 홉스(1588~1679). 그가 세상에 던진 한 마디는 오늘날까지도 정치학자들을 밤잠 못 이루게 만들고 있다. 바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War Against All)'이라는,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명언이다.
홉스는 1588년 태어나 무려 91세까지 장수했다. 요즘 기준으로도 꽤나 오래 산 셈인데, 그 긴 세월 동안 영국 사회를 제대로 흔들어 놨다. 홉스가 '무서운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다. 특히 찰스 1세(1600~1649)가 목이 날아가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등 나라가 뒤죽박죽이던 시절을 온몸으로 겪으며, 홉스는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펜을 들었다.
무정부 상태는 진짜 무서워요
홉스의 핵심 아이디어는 간단명료했다. 사람들을 그냥 놔두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느라 정신없다, 그래서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들고 나온 개념이 바로 '자연상태'다.
자연 상태란 정부도 법도 없는 상황인데, 홉스는 이때 인간의 삶이 "고독하고, 가난하고, 더럽고, 야만적이고, 짧다"고 했다. 요즘말로 하면 '헬조선의 끝판왕' 정도 되겠다.
리바이어던, 그 거대한 바다괴물
1651년 홉스는 자신의 대표작 〈리바이어던〉을 세상에 내놨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다괴물 이름인데, 홉스는 이를 국가에 비유했다. 국가야말로 사람들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 거대한 괴물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보호해주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책은 당시 영국 사회에 폭탄급 충격을 안겼다. 왕권신수설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홉스는 "왕도 결국 사람들이 계약으로 만든 존재"라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찰스 2세는 이 할아버지를 궁정에서 추방하고 싶었지만, 워낙 유명인사라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영국 정치사상사의 뒤바뀐 판도
홉스의 등장은 영국 정치사상사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치는 신의 뜻이나 전통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홉스는 "정치도 과학이다"라며 이성적 분석의 대상으로 끌어내렸다.
특히 그의 사회계약론은 후대 존 로크(1632~1704), 장 자크 루소(1712~1778)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로크는 "홉스 할아버지, 너무 무섭게 생각하시는 것 아니에요?"라며 좀 더 온건한 입장을 취했고, 루소는 "인간은 원래 선한데 사회가 망쳐놓은 거예요"라며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들 모두 홉스가 깔아놓은 사회계약론이라는 틀 위에서 논의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현대 영국정치에 남긴 유산
홉스의 영향은 오늘날 영국 정치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영국의 강력한 중앙정부 전통, 의회주권 원칙, 그리고 실용주의적 정치문화 모두 홉스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영국이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성문헌법 없이도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홉스가 강조한 '강력한 주권자의 필요성'이 의회라는 형태로 구현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홉스가 의회정치를 염두에 뒀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보수당의 숨은 조상?
재미있게도 홉스는 현대 영국 보수당의 이론적 뿌리로 여겨진다. 질서와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보수주의 전통이 홉스의 사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마거릿 대처(1925~2013)가 "사회 같은 건 없다, 개인과 가족만 있을 뿐"이라고 했을 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홉스의 개인주의 철학을 만날 수 있다. 물론 홉스는 강력한 국가를 원했지만, 대처는 작은 정부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묘한 아이러니가 있긴 하다.
진보진영도 홉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진보 진영은 홉스를 그냥 무시해도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홉스야말로 기존 권위에 도전한 혁신가였다. 왕권신수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정치권력의 근원을 시민의 동의에서 찾았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홉스는 인간의 욕망과 이익을 정치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는 도덕적 이상이나 추상적 정의보다 현실적 필요를 중시하는 관점으로, 오늘날 복지국가론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원한다면, 국가가 그것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홉스 할아버지의 마지막 웃음
홉스는 1679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그는 '이제 큰 도약을 해보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죽음조차도 하나의 모험으로 받아들이는 철학자다운 태도였다.
400년이 지난 지금, 홉스의 예언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강력한 정부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인간의 이기심을 무시하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다시 한 번 홉스의 통찰을 확인했다.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물론 홉스 할아버지가 21세기를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발전할 줄이야! 하지만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그래, 형태는 바뀌었지만 결국 강력한 주권자가 필요하다는 내 말이 맞지 않았나?"
토머스 홉스, 그는 영국사회에 깊은 상처와 함께 값진 교훈을 남긴 철학자였다. 무서운 할아버지였지만, 덕분에 우리는 정치란 무엇인지, 국가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