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발자국 남긴 5척단신 빅토리아 여왕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입헌군주제 확립
산업혁명 절정기 타고 '세계의 공장' 만든 행운
18살 꽃다운 나이에 즉위, 63년간 제국 이끌어
9명 자녀 모두 각국 왕실과 결혼 '유럽의 할머니'
식민주의 비판받지만 과학 발전 등은 긍정 유산
키 152센티미터의 거대한 그림자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한 마디로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말이 딱 들어맞는다. 키 152센티미터의 아담한 체구로 무려 63년간 대영제국을 다스린 이 할머니는 그야말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소형 지배자'라고 할 수 있겠다.
1837년 18세 꽃다운 나이에 왕위에 오른 빅토리아는 처음엔 그저 '임시방편'으로 여겨졌다. 당시 영국 정치인들은 속으로 "어린 아가씨가 얼마나 버티겠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하지만 웬걸, 이 '어린 아가씨'는 무려 1901년까지 버텨내며 영국사에 가장 긴 발자국을 남겼다.
남편 바라기에서 철의 여인으로
빅토리아의 인생 전반기는 그야말로 '신혼의 단맛'이었다. 독일 출신 사촌 알버트 공(1819~1861)과의 결혼은 당시로서는 드문 '연애결혼'이었다. 두 사람의 금슬이 워낙 좋아서 무려 9명의 자녀를 낳았다. 요즘 같으면 '출산장려정책의 모범사례'로 표창 받을 만하다.
하지만 1861년 알버트 공의 갑작스런 죽음은 빅토리아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그녀는 검은 상복을 입고 1870년대까지 약 10여 년간 공식 활동을 크게 줄였다. 이 시기 영국 국민들은 "세금으로 먹고 사는 여왕이 일은 안 하고 뭐 하나?"라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정작 빅토리아는 궁전에서 열심히 '원격근무'를 하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어머니' 역할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가족중심사회'의 확립이다. 여왕 본인이 모범적인 아내이자 어머니 역할을 했던 덕분에, 영국사회 전체가 "가정이 최고야!"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 도덕'이라 불리는 엄격한 생활 규범이 생겨났는데, 이는 지금 보면 좀 과한 면이 있다. 당시에는 피아노 다리까지 천으로 가려야 했다니, 지금 같으면 "가구도 성희롱 대상인가?"라고 비웃었을 일이다.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
빅토리아가 재위한 63년은 영국 산업혁명의 절정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마치 '때맞춰 왕이 된' 행운의 여신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증기기관, 철도, 공장제 공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영국은 말 그대로 '세계의 공장'이 됐다.
당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자랑스러운 별명을 얻었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좀 씁쓸하다. 그 '해가 지지 않는' 땅들 대부분이 식민지였으니 말이다. 빅토리아는 '대영제국의 어머니'로 불렸지만, 동시에 '식민지배의 상징'이기도 했다.
과학과 문화의 후원자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가 남긴 긍정적 유산도 무시할 수 없다. 찰스 다윈(1809~1882)의 〈종의 기원〉, 루이스 캐럴(1832~1898)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수많은 작품들이 모두 이 시기에 탄생했다.
과학 분야에서도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의 전자기학 연구, 제임스 맥스웰(1831~1879)의 전자기 이론 등 현대 문명의 토대가 되는 발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빅토리아가 "우리 시대엔 천재들이 바글바글해야 해!"라고 주문을 걸어놓은 것처럼.
정치적 영향, 입헌군주제의 완성
빅토리아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현대적 입헌군주제의 틀을 완성했다. 처음엔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했지만, 점차 상징적 역할에 만족했다. 특히 말년에는 '할머니 같은 여왕'의 이미지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즉위 60주년 기념식 때는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는데, 마치 '우리 할머니 생신'을 축하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유럽 왕실의 할머니
빅토리아의 9명 자녀들은 모두 유럽 각국 왕실과 결혼했다. 덕분에 그녀는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1859~1941), 러시아 황후 알렉산드라(1872~1918, 혁명으로 살해됨) 등이 모두 그녀의 손자, 손녀였으니, 가족 모임이면 곧 유럽정상회담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가족외교'가 항상 평화로웠던 건 아니다. 1차 대전 때는 손자들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한 대 치셨을'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오늘날의 교훈
빅토리아 여왕의 삶을 돌아보면, 개인의 품격과 시대적 행운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식민주의의 어두운 면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입헌군주제의 발전, 가족중심 사회의 확립, 과학과 문화의 발전 등은 분명 긍정적 유산이다.
무엇보다 152센티미터의 작은 체구로 거대한 제국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크기가 전부가 아니다'라는 진리를 확인시킨다. 요즘 말로 하면 완전 '작은 것의 소중함'의 원조 격이랄까.
결국 빅토리아 여왕은 한 시대를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각인시킨 몇 안 되는 인물 이다. '빅토리아 시대'라는 말이 여전히 살아있는 한, 그녀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이다. 작은 고추가 정말 매웠던 역사적 사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