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사업, 전문가·주민이 주도하는 '마을기업' 바람직

'어촌 뉴딜300 사업'의 실패 교훈 삼아야

'어촌신활력'도 시행착오 반복할 가능성

행정은'팔길이의 원칙' 지켜 예산 지원만

2025-07-31     정기석 시민기자

 

18일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에서 박준영 기획조정실장이 2019년도 '어촌 뉴딜300 사업' 대상지 선정 발표를 하고 있다. 2018.12.18. 연합뉴스

지난해 4월 감사원은 해양수산부의 어촌 개선 사업인 '어촌 뉴딜300 사업'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총 13건의 위법·부당 사항이 적시된 '어촌 뉴딜300 사업 추진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한 것이다. '어촌뉴딜300 사업'은 2018년 '지역밀착형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방안'의 일환으로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어촌사업지 1곳당 최대 150억 원, 총 3조 원(국비 70%, 지방비 30%)의 예산이 투입된 대형사업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 추진체계 미비, 사업계획의 타당성 부족, 예산집행률 저조 등 진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문제점이 드러났다. 마침내 국회와 언론에서도 사업 추진 과정 전반에 대한 점검과 제도 보완 필요성을 제기해 감사원이 나서게 됐다. 2022년 11월21일부터 2023년 3월31일까지 50일간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다.

해양수산부, 사업시행자인 전라남도 등 11개 지방자치단체, 위탁 사업시행자인 한국어촌어항공단과 한국농어촌공사를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는 당혹스럽고 참담했다.

 

최현호 해양수산부 어촌어항재생사업기획단장이 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년도 어촌 뉴딜300사업 대상지 선정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12.6. 연합뉴스

국회의원의 청탁 등으로 사업지 멋대로 조정도

해수부는 사업지 선정 단계부터 이 사업 본연의 정책 목표인 지역균형을 고려하지 않았다.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과 절차 등의 평가 체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태라는 게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심지어 국회의원 등의 청탁성 요청사항 반영을 명목으로 평가점수를 수정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평가 절차 진행 전이나 진행 중에 비공식적으로 내부적인 사업지 선정계획을 미리 작성하거나, 평가 절차 종료 후에 해수부 소속 내부 평가위원의 평가점수를 수정하는 방법으로 사업지를 임의로 조정했다.

시설비 예산 중 상당액을 다른 용도에 임의로 집행한 후, 해수부에 보조금 사용 실적을 사실과 다르게 허위로 보고한 지자체까지 적발되었다. 이 사업을 위탁 시행하는 한국어촌어항공단은 설계용역 중 습지행위허가 협의를 이행하지 않아 결국 해수부의 습지행위허가 신청이 반려됐다. 설계용역 성과품은 사장되고 이미 체결한 관급자재 구매계약은 해지해야 할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이런 부정과 실패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이 '어촌 뉴딜300 사업'은 공모계획서 작성, 사업지 선정,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 수립, 사업 시행 등 4년 동안 추진된다. 1개 사업지 당 최대 150억 원(국비 70%, 지방비 30%), 300개소의 소규모 어촌·어항에, 총 3조 원의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해수부의 대표적 재정사업이다.

2025년 5월 말 현재도 준공되지 못한 곳이 전국에서 선정된 300개 사업지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1개소(47%)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알프스 티롤지방의 빙하호수처럼 느껴지는 창포만에 깃든 율티어촌마을. 율티권역 앵커조직의 전문가그룹이 상주하며 마을주민들과 협의, 협력해서 어촌마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촌뉴딜’의 실패가 ‘어촌신활력’으로 반복되는가

해수부는 '어촌 뉴딜300' 감사결과에서 드러난 시행착오와 실패사례를 참고, 2023년부터 후속으로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을 또 3조 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현장에서는 어촌뉴딜의 실패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촌뉴딜300사업 후속 버전인 어촌신활력사업도 대상지 선정, 자문, 기본계획 심의 등 여러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새로운 방식의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중간지원조직 또는 컨트롤타워 부재 또는 부실 문제가 가장 치명적이고 근본적이다. 이런 종류의 지역개발사업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수행 시스템이 결여된 그 기관의 기능, 역량, 인적구성이 과연 이 사업에서 요구하는 전문성, 책임역량에 부합되는지에 대한 현장과 전문가들의 불신과 의문이 깊다.

중앙의 컨트롤타워는 어촌을 잘 아는 어촌지역개발사업의 전문기관에게 맡기는 게 타당하다. 옳다. 무엇보다 중앙이 일방적으로 지침을 정하고 통제하는 건 비합리적이다. 어촌의 현장과 현실을 가장 잘 아는 현장조직인 사업전문가(앵커조직)와, 어촌의 현장과 현실을 가장 사랑하는 주민사업조직(어촌계 및 협동조합)의 자율추진 및 자치운영 시스템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게 상책이다.

 

사천 거북선어촌체험마을의 정영애 위원장 등 마을기업이 맡아 운영하는 카페형 마을가게. 율티마을에서도 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마을공유가게’를 계획하고 있다.

행정은 예산만 지원하고 빠지는 ‘팔길이의 원칙’을

이 사업의 관리와 감독 권한을 행사하는 행정(워킹그룹)은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공모신청서와 사업계획서 상으로만 실재하는, 시한부 임시가설조직이 아니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행정과 지역의 거버넌스를 지향하는 지역협의체도 역시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가동되기 어렵다. 역시 유명무실한 회의체로서, 시한부 임시가설조직 형태의 형식적 거버넌스인 지역협의체가 이 사업의 책임주체 권한 및 의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는가.

기본계획 등을 심의하는 심의·조정위원회, 지역심의단은 무소불위, 무오류의 전지전능한 신처럼 작용한다. 나름 각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은 개인역량과 관점에 갇힌 사견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실무 공무원은 이 사업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이 일을 전업으로 삼고 있는 현장의 전문가그룹보다 비교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공무원이 사업의 향방과 여부에 대한 판단권, 결정권을 사실상 거의 독점하고 있다. 이 사업의 사업지침 상 앵커조직으로 불리는 전문가그룹이 행정과 엄연히 공동사업 시행자의 위상과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불행히도 많은 사업지에서는 담당공무원의 수준과 역량에 맞춰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여전히 행정은 늘 지시하고 결정하는 '갑'이고, 전문가그룹은 본디 행정의 지시와 결정을 따라야 하는 '을'이라는 의식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법은 분명하다. 일단 농어촌지역개발사업에 대해 전반적인 경험과 이해를 갖춘 전담실무공무원을 양성하고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각 사업지별로 사업전문가(앵커조직) 및 주민책임조직(어촌계 및 협동조합 등 마을기업)의 자율추진 및 자치운영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된다.

마침 ‘마을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도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10여년 만에 통과했다. 지역주민이 지역자원을 활용해 수익사업을 하고, 소득 및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을 단위의 기업이 안정적·체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갖췄다.

이제 행정조직은, 간섭은 하지 않고 예산지원만 하는 ‘팔길이의 원칙’을 견지하면 된다. 정부는 예산지원만 하고, 농정공무원이 없이 농민회에게 맡겨 자조하고 자치하는 중간지원조직, 유럽의 농업회의소처럼 말이다.

그게 아니면, 사업명에 뉴딜을 갖다붙이든, 신활력으로 고쳐달든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촌사업의 실패와 오류는 무한 반복되고 말 게 뻔하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