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에 대한 통제: 괴물을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
이 대통령의 권력기관 통제 구상에 대한 진일보한 제언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권력, 민주주의의 위기
지난 17일 제헌절 기념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합의 가능한 5대 개헌 방향의 하나로 권력기관 개혁을 거론했다. 이미 민간인 출신 현역 국회의원을 국방부장관으로 임명하는 전례 없는 파격을 선보이며 군 개혁의 뜻을 확실하게 밝혔다. 그뿐 아니다.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개헌 시점에 비상계엄 요건을 강화할 방침과 대통령 소속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이관할 방침을 밝혔는데 둘 다 권력기관 개혁의 구체적 내용에 해당한다. 검찰개혁 차원에서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폐지해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을 개헌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이 대통령의 이와 같은 권력기관 통제구상들을 환영해 마지않지만, 여기서 좀 더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살아 숨 쉬는지를 알려면 국가가 군, 검찰, 경찰, 그리고 비밀정보기관이라는 1진 권력기관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면 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들 기관들은 국가안보와 질서유지를 위해 국민에게 물리력과 강제력을 휘두를 권한을 가진 무서운 기관들이다. 여기에 보태서 감사원, 공정위, 국세청, 금융감독원도 칼자루를 휘두르는 2진 권력기관으로 인식된다. 감사원은 공무원 조직의 기강을 잡는 반면 뒤의 3자는 이른바 경제검찰로서 사기업의 법 준수를 감독하는 저승사자들이다. 여기서는 협의의 권력기관, 즉, 1진 국가기관에 논의를 한정한다.
국가안보와 국민인권, 공공복리를 지킬 목적으로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과 정보력을 독점하는 이 권력기관들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 국가 안의 또 다른 국가이자 시민을 향한 괴물로 변질될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군부독재를 경험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금까지 비밀정보기관의 무분별 민간인 사찰과 검찰권의 정치적 남용을 몸서리치게 경험했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3일 심야에는 당시 대통령이 느닷없이 군을 정치적으로 동원해서 친위쿠데타를 감행했다. 계엄군이 국회와 중앙선관위, 총리공관 등 헌법기관에 난입한 절체절명의 헌정위기가 들이닥쳤다. 시민의 용감한 저항과 계엄군의 미온적 작전수행, 국회의 신속한 해제결의로 서너 시간 만에 친위쿠데타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때까지 군경과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들이 보여준 모습은 우리나라의 권력기관 통제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어째서 더 근본적인 처방이 시급한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첫 번째 처방: 권력기관장 임명에 국회 동의를 요구하라
모든 통제의 첫 단추는 권력기관의 수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가장 강력한 대안은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이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관문통과 요건을 강화하는 가중다수결 동의제도 도입이다. 이 제도를 신설하면 과반수 여당의 단독 동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충성심 기준으로 권력기관 장을 인사하지 못한다. 야당과 협의하며 야당도 동의할 만큼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야당에 일종의 권력기관장 거부권을 주자는 방안과 다르지 않아서 정치문화에 따라서는 임명지연 등 부작용이 초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대통령의 일방적 지명과 국회의 형식적 인사청문회로 이뤄지는 권력기관장 임명 방식은 문제가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아무리 심각한 결격사유가 드러나고 야당이 반대해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그만이다. 시작부터 정권에 충성하는 인사가 수장으로 앉으니 그 기관이 국민이 아닌 임명권자와 정권에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높은 수준의 정치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에는 원칙적으로 국회의 다수결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최소한의 정치중립성 확보방안이라면 가중다수결에 의한 동의를 요구하는 것은 최대한 보장방안이다.
물론 이는 원론적으로 바람직한 방안이지만 지금 한국의 야당의 비정상적 몰상식적 행태를 보면 국회에 대한 통제 이전에 ‘야당에 대한 통제’가 우선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에서 설명할 세 번째 '국회 통제 강화'를 위한 처방에서도 역시 부닥치는 딜레마다.
국민의힘이라는 '괴물' 같은 정당이 제1 야당으로 군림하는 상황에서 원칙과 현실 간의 균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가 과제이며 대전제라는 점을 먼저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두 번째 처방: 외부의 독립감시기구를 만들어라
권력기관 내부 구성원들은 강한 위계질서 속에서 국가와 국민, 헌법에 대한 충성보다 조직과 보스에 대한 충성이 더 강조되는 조직문화 속에서 일한다. 이런 조직문화 아래서는 내부감찰이 ‘제 식구 감싸기’의 한계를 넘기 어렵다. 따라서 현대적 통제시스템의 핵심은 권력기관의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이른바 감시견(watchdog) 기구를 두는 데 있다. 독일 연방의회의 성공적인 군 옴부즈맨 제도, 영국의 통합적인 조사권한감독위원회(IPCO), 미국의 CIA, FBI, 군을 감독하는 독립감찰관(Inspector General) 제도, 그리고 독립적인 국가인권기구를 떠올리면 된다. 필자가 교수 시절 안식년을 보냈던 캐나다의 경우 군, 경찰, 정보기관에 대해 각각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업무감시 및 진정처리 기구를 두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감시견 기구들은 관할 대상 권력기관의 시설, 직원, 정보와 자료 접근에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다.
선진국의 독립감시기구들에 비춰보면, 우리의 외부 통제시스템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군과 검경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가 독립적 조사권을 갖고 있어서 약간의 외부통제가 가능하지만 비밀정보기관에 대해선 그나마도 안 된다.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원 구성에서 대통령 프리미엄이 아주 강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립성이 흔들리는 결정적인 취약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권고적 효력밖에 없기 때문에 정권에 따라서는 대놓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득세하기도 한다. 실은 감사원마저 대통령 소속이라 정치중립성을 의심받는다. 요컨대, 권력기관에 대한 외부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관에 의한 실효적 통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7 선진국은 이 점에서 다르다. 아직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선진국을 자랑하기엔 이르다.
세 번째 처방: 국회 통제를 강화하라
궁극적으로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책임은 국민의 대표기관, 의회에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의회 다수파를 차지하는 경우 의회의 감시기능은 사실상 마비되기 쉽다. 이를 극복할 가장 대담한 장치는 정보위원회나 행정안전위원회처럼 핵심 권력기관을 관할하는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직을 야당에 배정하는 것이다. 영국의 공공회계위원장이나 독일의 정보위원장을 야당이 맡는 관례처럼 국회통제의 주도권을 야당에 주게 되면 진정한 의미의 날카로운 감시가 가능해진다.
검찰이 국회에 특별활동비 영수증 제출을 거부하거나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실자료를 제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권력기관들은 다른 국가기관들과 달리 국회를 겁내지 않는다. 비밀정보기관은 더하다. 국정원은 아예 국정원법상 국회정보위원회의 정보자료 제출 요구를 국가안보 비밀에 해당한다고 적당히 소명하고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 국가안보와 밀행성의 요청을 빌미로 국회정보위조차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의 예산과 조직, 시설과 직원, 작전과 정보파일에 아주 제한적인 접근만 허용된다. 아직도 국회통제권보다 국가안보 방어권이 훨씬 강한 비대칭 구조다. 의회 통제에서도 선진국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네 번째 처방: 사법 통제를 강화하라
권력기관의 직권남용과 인권침해, 부패비리에 대한 최후통제는 어디서나 사법부 소관이다. 법원은 검찰의 무분별한 압수수색영장이나 인신구속영장 신청은 물론이고 정보기관의 감청허가신청을 깐깐하게 심리함으로써 이들 권력기관이 권력남용을 못하도록 통제할 수 있다. 무죄판결이나 재심판결은 물론이고 일반 형사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통해서도 실효적으로 권리침해를 구제하고 권력기관의 불의를 제어할 수 있다. 권력기관에 대한 사법통제는 영장발부/기각결정 외에는 대체로 구체적 사건의 사후통제라는 한계를 갖지만 실효성에서는 따라올 데가 없다.
우리 법원은 독재기간 내내 권력기관에 대한 사법통제를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했고 민주화 이후에도 웬만큼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대한 만큼 적극적이거나 재빠르진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법관들 스스로가 보수동맹의 일원으로서 권력기관들의 어려움을 최대한 존중하고 이해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만 지난 2020년 대법원이 국정원의 정보수집 활동에 대해 사법통제 방침을 정하고 ‘내놔라 내 파일’ 시민운동의 손을 들어주며 국가안보와 무관한 과거의 공직자와 민간인 정치사찰 파일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점은 특별히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아무튼 권력기관에 대한 사법통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이 분야에서 전문재판부 운영 등 법원의 가일층 분발이 요구된다.
이처럼 강력한 중층 통제장치들이 자칫 권력기관의 업무 비효율을 낳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실은 임명 과정에서 가중다수결 동의요건을 채택하지 않는 이상 지독한 엄살과 과장일 뿐이다. 권력기관들이 정권의 사유물로 전락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성에 비하면 중층 통제장치 운영에 상당한 추가비용이 들더라도 이를 법치주의와 인권보장에 필수적인 공적투자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오히려 위와 같은 중층적인 통제장치가 완비될수록 가중다수결 동의요건과 같은 고난도 정치중립성 보장방안마저 수용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권력기관들을 둘러싸고 적대적인 대결문화가 아닌 역지사지의 타협문화가 만들어져 국가 차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법적 안정성을 제대로 확보하는 것만큼 실질적인 민주선진국으로 다가가는 길이 또 있을까 싶다.
최종 처방: 주권자가 직접 나서는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
위에서 제시한 다층적이고 중첩적인 실효적 통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권의 문제의식과 개혁의지가 확고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여야 정치권 전체가 권력기관 장악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 채 암묵적인 카르텔처럼 움직이며 근본개혁을 회피한다면 주권자가 직접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주권자 국민은 몇 년에 한 번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 외에는 권력기관의 전횡을 통제할 직접적인 수단을 전혀 갖지 못해서 파워엘리트들의 담합과 특권 행사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개헌을 할 때 국민발안권, 국민거부권, 국민소환권 등 직접민주주의 3대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권력기관 통제에 필요한 법률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고 정부여당의 힘으로 국회를 통과한 권력기관 관련 악법에 대해서도 국민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권력기관의 중대한 비위 의혹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시민의회’에 조사와 결정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권력기관의 비위를 동료 엘리트들의 눈높이로 심판하기보다 주권자 시민의 눈높이로 심판할 수 있게 된다. 이래야 권력기관들이 제멋대로 국민의 품을 떠나지 않는다.
결론: 권력에 대한 건강한 불신을 제도화하라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어느 하나의 제도로 완성되지 않는다. 투명한 임명절차로 정권 충성파에게는 문턱을 높이고 강력한 외부 독립감시기구를 통해서 상시 감시하여야 한다. 국회에서는 야당 주도로 권력기관의 설명 책임을 매섭게 추궁하며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를 자임하는 법원도 권력기관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사법통제 강화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통제까지 다층적인 통제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렇게 권력기관에 대한 건강한 불신을 촘촘하게 제도화할 때 비로소 권력기관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배기관이 아닌 국민을 위한 진정한 봉사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