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망치고 한국경제 망치는 언론의 '삼성 과보호'
삼성전자 구조적 위기에 언론도 큰 이유
이재용 리더십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없어
독자들 눈을 가리고 삼성 자신의 눈을 가려
지난 8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실적은 우려를 넘어 위기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하다. 반도체 부문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고, 스마트폰 등 다른 사업부도 녹록지 않은 탓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은 단지 대외적인 경제 상황이나 기술 경쟁 심화에만 있지 않다. 이 위기에는 한국 언론의 무비판적인 삼성 비호와 옹호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한국 언론들에 삼성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이며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위기다. 그러나 삼성 위기의 한 징후를 드러내는 실적 보도를 전하는 언론 보도에서 그같은 위기감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대다수의 신문들은 '역대급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부실 털어낸 삼성전자-3분기부터 반등 기대"와 같은 제목으로 보도했다. 삼성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보려는 태도가 이번에도 여지 없이 나타났다.
한국 언론에서 삼성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매우 희귀한 것이 된 지 오래다. "삼성은 곧 한국 경제"라는 맹목적인 등식이 언론계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삼성의 혁신과 성공은 요란하게 보도된다. 반면 그 이면의 문제나 경고 신호들은 대개 외면되거나 축소된다. 삼성전자가 특정 기술 분야에서 뒤처지거나, 지배구조 문제, 노동 문제 등 논란에 휩싸였을 때, 언론은 비판보다는 삼성의 해명을 그대로 전달한다. 나아가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삼성 홍보지’ '삼성의 마케팅 부서' 되기를 자청한다. 다른 많은 사안들에 대해 언론이 자처하는 '건설적인 비판자'의 역할은 삼성 앞에서는 멈춰버린다.
한국 언론의 삼성 기사만을 읽고서는 삼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어렵다. 독자들도 그렇지만 삼성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독자의 눈을 가리는 것은 물론 삼성 자신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언론의 찬사와 비호 속에 삼성은 스스로 자정 능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키울 자극을 잃어버린다.
최근 ‘주 52시간 노동제 예외’ 논란이 뜨거울 때도 한국 언론은 그같은 모습을 분명히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 라인의 특수성을 내세우며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언론은 이같은 주장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썼다. "반도체 강국 유지를 위해 삼성에 예외를 줘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앞세워 삼성전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노동자나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언론의 지면과 방송에선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치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오직 노동시간에만 달려 있는 듯했다. 언론은 삼성 편에 서서 정부와 사회에 압력을 가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언론의 옹호는 삼성전자가 노동시간 증대보다는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막아버린다.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은 한두 분기 정도의 일시적인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크다. 이쯤 되면 삼성전자의 위기의 한 이유로 지목되는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해 언론의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재용 리더십’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찾아볼 수 없다.
10일 조선일보 산업부장의 칼럼 <상법의 족쇄 vs 머스크의 날개>는 3일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이제 한국의 최고경영자(CEO)와 이사들은 전략적 결정을 내릴 때 ‘주주 이익에 반하지 않나’ ‘전체에 공평했나’라는 물음 앞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쓰고 있다. 이 칼럼은 그래서 한국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같은 모험을 감수하는 기업가가 나올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총수 전횡을 차단할 법적 근거를 마련한 상법 개정에 대해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결정’을 위축시키는 입법으로 보는 이 칼럼의 시각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언론이 삼성에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삼성에는 제대로 된 ‘전략’ 자체가 있는가, 라는 것이다. 상법이 개정되기 전 지난 3년간 이재용 회장의 전략적 결정을 막은 것은 무엇인가, 라고 언론은 물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이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복역하다 2022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경영 활동에 복귀한 이후 총수로서 어떤 전략을 짰는지 언론은 물어야 한다. 이 회장이 감옥에 있는 동안 “이재용 회장의 부재가 한국 경제, 특히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논리를 폈던 언론들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없으면 삼성이 망한다"거나 "초일류 기업의 리더십 공백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라는 주장이 매일같이 언론을 뒤덮었다. 일부 언론은 이 회장이 구속되기 전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해외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는 '단독 보도'까지 쏟아냈다. 이 회장 구속으로 국가적 백신 확보 노력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식의 기사까지 내보냈던 언론들이다. 반면 특사에 대해 '재벌 총수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이며 '법치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은 상대적으로 작게 다뤄지거나 외면됐다.
초일류기업 삼성과 한국경제에 치명적이었던 이재용 회장의 부재가 해결된 지 3년, 그러나 삼성의 부진과 위기 조짐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제 언론은 삼성의 문제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지난 2월 이 회장은 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증거 능력이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는 등 검찰 수사의 허점이 지적됐었다.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멀고 자본시장 공정성을 해치는 판결"이라는 비판도 적잖았다. 이 회장 무죄 판결이 우리 시장의 신뢰도를 10년 이상 후퇴시켰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언론들은 삼성의 투자 및 경영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한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사실상 해소되고 경영정상화가 이뤄지게 됐다며 대대적으로 반겼다. 그렇다면 지금은 애초에 몇 년째 재판에 시달린 것부터가 이 회장이 경영전략을 짜는 데 굴레가 됐다는 얘기라도 하고 싶은가. 아직 경영 정상화를 이루기엔 충분한 시간이 못 됐다는 변론을 펼 것인가. 재판 이전에 수사와 기소 자체가 문제였다는 당시의 비판을 다시 꺼내 "수년간 최고 경영자를 재판에 묶어둔 것으로 인한 후유증이 이만큼 크다"라고 주장할 것인가.
기업의 성장과 발전 또한 끊임없는 비판과 지적을 통해 이뤄진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삼성전자와 같은 거대 기업에게는 외부의 날카로운 지적이 더욱 필요하다. 언론의 비판 없는 옹호라는 독(毒)이 삼성을 해치고 한국경제를 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