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몽니' 국힘에게 절대 내줘선 안 돼
국힘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민주당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당권을 서로 차지하겠다며 분란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국힘에서도 일치된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이 물러나면서 빈 자리는 반드시 자신들이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 독점한다
미국의 의회는 다수당이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의 원칙에 의하여 모든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의 상임위원장을 맡는다. 충분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란 곧 ‘다수의 지배’ 원칙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그렇게 ‘숭앙’하고 ‘존숭’하는 국힘은 왜 유독 미국 의회의 이 ‘훌륭한’ 방식은 따르지 않는가?
본래 우리 국회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줄곧 다수당이 독점해왔다(4.19 직후 수립된 민주당 정부에서 정당 간 상임위원장 배분이 이뤄졌지만,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단명으로 끝났다). 현재처럼 국회 상임위원장직의 정당 간 배분이 이뤄진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4당 체제가 만들어진 13대 여소야대 국회부터다. 이는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에서 다수당의 횡포를 방지하고 공존과 균형 그리고 타협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여야 간 나눠먹기, 적대적 공존이라는 폐단을 낳았다.
국회 권력의 핵심, 법사위원장 자리
법사위원장의 힘은 막강하다. 이는 법사위원회이 가진 법률안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에서 비롯된다. 법사위원장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모든 법안을 스톱시킬 수 있고, 각 상임위원회에서 의결한 법안 내용 자체를 수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법사위원회는 모든 상임위원회 중에서도 ‘상원 아닌 상원’ 혹은 ‘제2원(院)’이라 칭해져왔고, 법사위원장이 상원의장인가라는 문제 제기도 끊이지 않았다.
법사위원장 자리는 박정희 유신정권 이래 군사정권의 잔당이 독차지해왔다. 정당 간 상임위원장 배분이 이뤄진 13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원장은 민정당 차지였고, DJ 정부 때도 법사위원장은 민정당이 움켜쥐고 있었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점했던 17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원장은 여전히 한나라당이 차지했다. 그들은 여당일 때는 여당이라는 점을 앞세워 법사위원장을 차지했고, 야당이 될 때는 행정부 견제를 명분으로 법사위원장 자리만은 반드시 손에 넣은 것이었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처음으로 차지한 것은 18대 국회였다. 이때 여야는 위원장 배분을 둘러싸고 무려 80여 일에 걸친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야당이던 민주당이 처음으로 법사위원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때 민주당이 내세운 것은 17대 한나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갈 때 내세웠던 “행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법사위원장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이렇게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는 관행은 19대 국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대 국회에 들어서면서 이 관행이 또다시 깨졌다. 바로 현재 국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박근혜 정부 시기 2016년 5월 개원한 20대 국회에서 법사위를 여당이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당시 법사위원장은 바로 ‘권성동’이었다.
법사위원장을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는 국힘의 목표는
하지만 이후 또 바뀌었다. 국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때 이제 다시 야당이 법사위를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고집해 법사위원장을 끝내 차지했다. 당시 법사위원장 여상규는 “각 상임위원회가 야당과의 합의 없이 처리한 법안에 대해 법사위에 다시 회부하겠다”며 어이없는 몽니를 부렸고, 한 달 뒤에는 각 상임위에서 의결된 법안의 법사위 최종 처리를 보이코트함으로써 국회는 큰 파행을 겪어야 했다. 당시 민주당은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마치 자신이 국회 상원의장인 양 국회 위에 군림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뿐만 아니라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자당 의원들이 관련된 패스트트랙 사건 국정감사 중 검찰의 수사 중단을 주장하는 등 수사외압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이에 항의하는 민주당 의원에게 쌍욕을 하는 등 큰 물의를 빚었다. 이러한 여상규 법사위원장의 ‘행보’는 결국 21대 국회에서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절대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줄 수 없다는 명분을 ‘제공’하였고, 민주당은 여당으로서 21대 국회 전반기에서 법사위원장을 차지하였다.
국힘이 법사위원장 자리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뻔하다. 법사위원회를 지렛대로 하여 국회의 모든 행보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를 가로막고 나서겠다는 목표다. 우리는 이제까지 국힘이 내란수괴 윤석열에 빌붙어 내란에 적극 동조하고 가담해온 그 행보들을 기억하고 있다. ‘국민의 힘’이 아니라 명백한 ‘내란의 힘’이었다. 만약 국힘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다시 차지한다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그 몽니와 행패들에 치를 떨어야 할 것인가! 국힘에게 절대 법사위원장을 내줄 수는 없다.
한가지 첨언하고자 한다. 국회 법사위원장직을 수행했던 정청래 의원은 검찰 출신도 판사 출신도 아니고 변호사 자격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법조계 인사로 충만된 국회 법사위의 위원장으로서 위원회를 무리 없이 잘 이끌어왔으며, 특히 국회소추단장으로서 헌법재판소의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 사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정청래 의원은 비법조계 인사도 얼마든지 국회 법사위원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고, 국가의 가장 엄중한 법률 사건도 충분히 그 맡은 바 책임을 이행할 수 있음을 입증해줬다. 법조 카르텔의 성역은 무너져야 하며, 법조계 순혈주의는 타파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