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이태원 분향소 '도둑 조문'…유족들 "사과해야"
예고 없이 분향소 찾아 5분 만에 떠나
유족 측 "언론 염두에 둔 전시 조문"
"뭐가 무서워 도둑처럼 몰래 오는가"
보좌관은 멋대로 유가족 텐트 들추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설 연휴 첫날인 21일 오전 10시 41분 서울 녹사평역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다. 예고 없는 방문이었다. 연휴 첫날이라 그런지 현장에는 유족 2명을 비롯, 이미현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과 몇몇 시민 자원봉사자들만 있었다.
조문을 끝낸 이 장관은 유족을 찾는 듯 텐트 쪽으로 향했다. 이때 보좌관이 나서 허락도 없이 유족 텐트를 들추려 했다. 이를 본 이 상황실장은 "그냥 막 열어보지 말라"고 제지했다.
이 장관은 보좌관에게 "(유족들은) 없느냐?"고 물었고, 보좌관은 "없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시 이 상황실장이 "(유족 2명이 영정들 옆을 지키고 있는데) 유가족들이 왜 없다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이 말을 들었는지, 이 장관은 이 상황실장이 아닌 보좌관을 향해 다시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유족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장관이 한 유족에게 말을 걸었다. 몇 마디 말이 오갔다.
이 장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족 "글쎄요, 뭘 할 수 있는데요?"
이 장관 "제가 여러 번 말씀 드렸는데,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족 (허탈한 웃음)
옆에 있던 이 상황실장이 "(참사 이후 여지껏) 할 일을 안 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건가. (유족들은)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이 사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이 장관에게 또다시 따졌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였을까, 이 장관이 떠나려 하자 한 기자가 다가가 유족들의 사퇴 요구에 대해 질문했다. 이 장관은 "나중에 또 얘기하자"는 말만 남기고 차에 올랐다. 뒤에 남은 자원봉사자와 시민들은 이 장관을 향해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외쳤다.
유가족협의회 등은 이 장관의 일방적 조문을 비판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한덕수 국무총리도 통보 없이 도둑같이 분향소를 찾더니 이 장관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며 이 장관의 깜짝 조문을 문제 삼았다. (한 총리는 지난해 12월 19일 예고 없이 분향소를 찾았고, 유족들이 정부의 공식 사과가 없으면 조문도 받지 않겠다고 항의하자 30초 만에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 대표는 "유족 의견을 듣기 위해서 왔다면 적어도 유가족협의회 측엔 통보를 하고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뭐가 무서워 통보도 없이 몰래 왔다는 건가"라는 비판도 했다.
이 대표는 또 "(유족들의 요구사항에 대한) 답이라도 들고 와야 우리도 대화를 할 수 있지 않겠나. 갑자기 조문을 오고 유족 텐트까지 들추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조문이든 사과든 받는 사람도 준비가 돼야 할 것 아닌가. 조문하고 사과하려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나는 무조건 사과한다'고 찾아오는 건 아니지 않나. 유족 의견도 제대로 묻지 않은 채 그렇게 언론에 조문했다고 이야기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 도둑 조문, 그리고 유족 텐트를 맘대로 들추려한 행위에 대해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며 분개했다.
이미현 상황실장도 "(이태원 참사에) 책임이 있는 분이 개인 자격인 양 예고도 없이 분향소를 찾는 건 너무도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조문을 했다는) 명분 세우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장관이 떠난 시간은 오전 10시 46분, 분향소 방문 5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