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영화처럼, 신성한 나무의 씨앗처럼

이란 여성 혁명에 관한 영화…칸 심사위원 특별상

역사의 정의 외면하면서 가정의 평화 지킬 수 있을까?

제작진 감옥 보내고 매 맞게 만든 영화 아닌 정치적 영화

2025-06-07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오동진 영화 평론가

이란, 특히 테헤란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고도로 첨단화된 도시인지는 영화를 보면 안다. 이란 사람들이 사는 공간, 타고 다니는 차,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 입고 다니는 옷, 먹고 즐기는 음식 등 모두 다 하이 레벨이다. 그러나 이란, 특히 테헤란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도시인지 역시 영화를 보면 다 나온다. 그들의 신권 정치가 얼마나 폭압적이며 신의 뜻이라는 미명 하에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력을 자행하는지. 몸에 전율이 일 정도이다. 젊은이(특히 여성)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에 대해서는 정부와 언론이 전면에 나서, 신의 국가를 음해하려는 적들에게 세뇌당한 꼴이라며 거짓 선전을 일삼는다. 모든 것이 반국가 세력화 된다. 어디서 많이 본 행태 아닌가. 얼마 전에 한국에서도 한 광신적 정치인이 반란을 저지르며 내세운 명분이 그것이었다. 반국가세력 척결. 이란은 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인다. 신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 그러나 과연 그 신의 뜻은 누가 아는 것인가. 신의 뜻이란 과연 무엇인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포스터

제작진들 감옥 보내고 매 맞게 만든 영화 아닌 정치적 영화

이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란의 히잡 혁명, 히잡 시위에 대한 얘기이다. 짐작하겠지만 이 영화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월 제77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그리고 당연히 감독인 모함마드 라술로프를 포함해 다수의 제작진들이 프랑스, 유럽으로 망명했다. 망명 전 이들은 이란 당국으로부터 8년의 징역형과 태형, 벌금형, 재산몰수형을 선고받았다. 남녀 주인공역 배우, 특히 여배우 소헤일라 고레스타니는 탈출하지 못했고 그들 앞에는 어김없이 투옥형과 태형이 기다리고 있다. 왜 이리 야만적인가. 영화 한 편에 이란 정부는 왜 이렇게 가당찮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인가.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과연 어떤 영화인가. 이란 위정자들에게 이것은 반국가적 영화이며 회교 사회를 뒤흔드는 서구 자본주의자들의 음모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일 뿐이다. 이쯤 되면 이 ‘영화’는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영화로 해석되거나 영화로 비평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보고 ‘기대를 했으나 실망스러웠다’는 식의 나이브한 촌평을 붙인다. 한가한 소리이고 한심한 반응이다. 영화가 ‘영화적’이기 위해서는 ‘영화적 환경’이 보장되고 보호돼야 한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의 주변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란 여성 혁명을 향한 정치 실천적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 비평’은 단호하게 ‘이 영화에 대한 비평’을 반대해야 한다. 영화 비평은 때론, 아니 종종, 영화의 내적 텍스트 비평을 지양해야 한다. 그보다는 영화의 정치적 선택과 결단에 동조하느냐 반대하느냐의 그 길목을 지켜내야 한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스틸컷

2022년 9월 16일 쿠르드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여기서 마흐사가 쿠르드계라는 것이 중요하다. 쿠르드족은 이란, 이라크, 터키 국경 사이에서 국가 없이 흩어져 살아가는 민족이다. 미국 트럼프는 IS 공격에 쿠르드족들을 이용하면서 자치 영토를 약속했으나 배신했다)가 종교경찰에 체포된 후 의문의 사망을 했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 추론할 때, 마구잡이 폭행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사망했으나 경찰의 공식 발표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였다.

민주화 시위 촉발한 여성들의 죽음과 언론 보도

당연히 여론이 들끓었다. 일부 언론이 이를 정확하게 보도하고 폭로하자 이 사안은 곧 이란 여성들의 시위로 이어졌다. 시위는 곧 민주주의 요구, 신정정치 철폐라는 전국 시위로 확대됐다. 이란 당국은 마흐사 아미니 사망 건을 보도한 여기자 두 명, 엘라헤 모하마디와 닐루파르 하메디에게 반(反)이슬람 체제 선전을 위해 미국과 공모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각각 6년과 7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1년이 지난 2023년에는 10대 소녀 아르미타 가라완드가 역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뇌를 다쳐 사망했다. 사인은 갑작스런 뇌졸중이었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스틸컷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매우 용감하면서도 목숨을 건 촬영으로 확보된 희생자들의 폭행 모습과 연이어 터진 시위의 모습, 그 푸티지를 영화 전반부에 꼼꼼히 배치한다. 이 영화는 여성들의 히잡 착용 반대에 국가가 지나치게 야만적으로 대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히잡은 무슬림 여성들의 의복이며 기본적으로는 머리카락을 드러내지 않게 쓰는 두건을 말한다. 이란에는 히잡 착용 법안이 있으며 위반시 최대 10년형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이 법안은 국제사회의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돼 왔으며 2022년과 2023년의 여성 체포와 의문사는 이란 사회의 핵심적 사안이 되어 왔다. 히잡은 단순히 종교적 문제를 떠나 여성인권 문제, 민주화와 언론자유의 문제로까지 이어져 왔다. 여러 논란 속에 2024년에 당선된 현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은 온건주의자로 악법인 ‘히잡 개정법안’ 발효를 늦추고 있는 상황이다. 페제시키안이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이자 실권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어떤 정치적 타결을 이루어 낼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2시간 48분의 다소 긴 영화로 총 3막으로 구성돼 있다고 보면 된다. 1막은 히잡 시위의 전개 상황을 보여 주고 2막은 주인공이자 수사 판사인 이만(미사그 자레)이 집안에서 총을 분실하면서 가정에 균열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 준 뒤 3막에서는 결국 이 집안이 붕괴하고 가부장의 체계와 질서가 해체되는 결말을 보여 준다. 주인공 이만의 직업이 수사판사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란 내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혁명수비대의 핵심 직급이기 때문이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시절,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납치 고문 등 국가폭력을 자행했던 치안본부의 치안감 정도라 보면 된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스틸컷

이만은 수없이 많은 양민과 지식인들을 고문하고 사형시킨 장본인이지만 아내 나즈미(소헤밀라 고레스타니)와 딸 레즈반(마흐사 로스타미), 사나(세타레 말레키)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빠로 나온다. 그러나 거대한 역사의 정의를 외면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지켜 낼 수 있다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결국 이란에는 또 다른 종교적, 정치적 혁명이 불가피하며 그것은 바로 중산층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함을 뼈저리게 강조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보리수의 씨앗은 다른 나무에서 발아돼 그 나무를 숙주로 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숙주가 된 나무는 어쩔 수 없이 이용되고 버려져야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그래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혁명은 영화처럼! 이란의 사회혁명은 이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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