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도 상호의존…혐중 버리고 실리를 찾아라

미중 제네바 관세협상 타결 한국 그나마 다행

미국, '반중국' 앞에서 둘로 분열된 상태지만

'중국 생산하고, 미국 소비하는 관계' 여전해

미국 다국적기업의 대중국 직접투자도 급증

윤석열, 혐중 정서 국가 무역전략 삼는 패착

2025-05-30     한광수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 이사장)
5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중 양자 회담에서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왼쪽)가 중국 부총리 허리펑(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2025.5.14. 연합뉴스

한국 민주주의와 미중 관세전쟁

​‘아직 민주주의 살아있네!...한국을 보라!’

지난달 4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윤석열을 파면하자 세계 언론이 놀랐다.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회복력을 긴급 타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배우고 싶다는 미국내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80년 분단을 겪은 이 땅에서 억세게 살아남은 ‘한국 민주주의’를 배우고 싶다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그러나 전혀 다른 미국도 있다. 계엄 20일이 지난 작년 12월 23일 미 의회조사국은 한국의 계엄 내란을 저지른 윤석열을 지지하며 탄핵 반대를 내걸었다. 그들이 우려한 것은 ‘한미일 공조’의 앞날이었다. 거기에 '한일 군사동맹'이 들어있다. 이때부터 거리에 성조기 부대가 들끓었다. 미국의 얼굴은 다양하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한미동맹과 한미갈등은 한 몸이다.

지금 우리는 친위 쿠데타를 막고, 하루하루 손꼽아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있다. 한편에서 트럼프는 ‘늙은 사춘기 소년처럼’ 1기 때 써먹은 낡은 관세 폭탄을 휘두르는데 몰두한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 이 상황이 곤욕스러운 건 물론이다. 윤석열 내란 정리하랴, 대통령 선거하랴, 거기에 트럼프의 25% 관세 폭탄까지 겹친 형국이다. ​이제 대선 바로 다음날부터 우리 새 정부는 엄중한 실리 외교전선에 나서야 한다. 허리가 휘는 일이지만, 우리 국민들 가슴 속 각오와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짱짱하다.

지난 10~11일 미중 양국이 제네바에서 만나 타협한 것은 그나마 우리에게도 다행이다. 미중은 각각 145%, 125%까지 끌어올린 관세를 똑같이 115%씩 내렸다. 이 협상을 보고 뉴욕타임스는 사실상 미국이 ‘완패’했다고 분석했다. 다른 언론들은 ‘항복’이라고 표현했다. ‘시진핑의 강경한 보복 결정이 옳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실제 이번 협상에서 중국은 대화를 계속한다는 것 이외에 어떤 양보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트럼프의 관세 엄포가 시진핑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트럼프의 신뢰 추락이 뒤따랐다. 모두가 트럼프의 입에 주목하면서도, 누구도 그의 가벼운 입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도 이 트럼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대화냐? MAGA냐?

제네바 협상이 끝난 지난달 22일 JP모건의 CEO 다이먼이 중국 협상대표였던 허리펑 부총리을 찾아갔다. JP모건은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으로, 중국에 최초로 100% 투자를 허용받았다. 시진핑의 핵심 책사인 허리펑은 다이먼에게 “협상은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 양국이 경제협력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면서 미국 기업들과의 협력을 환영했다. 허리펑이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는 트럼프를 반박한 것이다. 같은 날 미국 국무부도 중국 외교부 당국자들과의 통화에서 “상호 계속 소통하자”고 했다.

이런 움직임은 허풍이 가득한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따돌림만 받는 건 아니다. 트럼프 지지 세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여론조사 결과 ‘마가(MAGA) 지지세력’이 지난해 20%대에서 올봄 30%대로 폭증했다. 불안의 장기화를 알리는 불길한 예고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교수는 트럼프가 ‘완전히 미쳤다!’고 외치지만, 트럼프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단순히 입이 가벼운 ‘떠벌이’ 노인의 '나홀로 고집'으로 보면 곤란하다. ‘반중국’ 앞에서 미국이 둘로 분열된 것이다.

​시장을 보자. 중국제 생필품을 판매하는 대형 할인마트 월마트는 5월 말에 관세부담을 가격인상에 반영하겠다고 예고했다. 관세 파장이 소비자 부담으로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번 여름이 중요하다. 바캉스도 겹쳐있다.

​다시 정리해보자. 미국의 입장은 양 갈래다. 한편에서는 "추격하는 중국을 갈갈이 찢어 발겨야 한다"고 부르짖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친 짓을 멈추고 타협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두 갈래의 차이는 그들 스스로 말하듯, 사실상 ‘내란 상태’다.

 

지난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등과 관세 관련 협상을 벌인 허리펑(何立鋒) 중국 부총리가 13일 프랑스 북부 아르캉시에 있는 한 축산 농장을 방문했다. 그는 프랑스 측과 제10차 중국-프랑스 고위급 경제·금융 대화를 공동 주재하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했다. 2025.5.13. AFP 연합뉴스

‘상호 의존’의 공포와 천문학적 투자

‘중국은 생산하고 미국은 소비한다.’ 이것이 미중 양국의 ‘상호 의존’ 현상이다. 이를 하버드대 니얼 퍼거슨 교수는 ‘차이메리카(중미국)’라고 명명하고, ‘공포의 시간’이라고 부연했다. 이 ‘상호 의존’ 현상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전광석화처럼 발전해 왔다.

최근 미국의 ‘반중국’ 열기로 이 ‘상호 의존’ 현상이 다소 흔들리고 있으나, 여전히 양국의 거대한 협력의 틀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 트럼프는 이런 양국의 ‘상호 의존’ 구조를 관세 폭탄으로 없애겠다고 주장하지만, 지난 제네바 협상에서 보는 것처럼 또 다시 '항복' 판정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우선, 양국 ‘상호 의존’의 근거가 되는 무역-투자의 규모를 보자. 최근 양국의 무역 규모는 연간 6000억∼7000억 달러이고, 그 중 미국의 무역적자는 3000억∼3500억 달러 수준이다. 미국 로디움그룹과 중국 바이두 통계에 따르면 최근 양국의 금융투자 규모는 누계 3조 3000억 달러 수준이다. 그 중 미국의 중국 투자는 1조 2000억 달러(부동산 포함), 중국의 미국 투자는 2조 1000억 달러(미 정부채권 매입 포함)다. 백악관의 줄기찬 ‘반중국’ 공격을 감안하면, 어리둥절할 만큼 놀라운 협력 규모다.

​금융투자 외에 미국 다국적기업들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3500억∼4000억 달러 정도다. 중국 기업들도 미국에 1500억 달러 정도를 직접투자하고 있으며, 여기에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도 상당하다. 알리바바를 비롯해 260여개에 달한다. 뉴욕 증권시장을 통하여 중국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고, 미국 투자자들은 배당금 등 이익을 분배받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상호의존'은 가히 천문학적 수준이다.

앞으로 그들이 마음먹고 갈등구조를 해결한다면, 양국의 경제협력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협력 잠재력은 대단히 거대해, 그 어느 나라와의 비교도 의미가 없다. 그들이 협력하거나, 경쟁하거나 간에 세계 경제는 그들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충격적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을 '미중 전성시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3월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포럼 개막식에 참석한 애플 CEO 팀 쿡. 연합뉴스

미 다국적기업의 중국 활용

이런 ‘상호 의존’ 시스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미국이 자랑하는 다국적기업들이다. 이익을 쫓아 지구 끝까지 샅샅이 훑고 다니는 그들이 중국시장을 놓칠 리 없다. 냉전 끝에 중국과 화해한 배경에는 이런 중국시장을 ‘말 잘 듣는 하청기업’으로 길들여 활용하기 위한 ‘꿈’이 있었다.

​20년 가까이 금융황제로 군림한 앨런 그린스펀도 이들의 활약을 지적하면서 ‘미국은 해피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은 최대한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여 미국 소비자들에게 가져간다. 무역 통계로는 모두 중국의 수출, 미국의 3000억 달러 무역적자로 잡힌다. 트럼프는 이것을 중국이 미국을 속이는 거대 적자라며 ‘중국이 미국을 강간한다’고 거칠게 내뱉는다.

미국이 중국의 생산 시스템으로 어떤 이득을 보는 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중국이 생산하고, 미국이 소비한다’는 니얼 퍼거슨 교수의 불평은 사실 ‘중국의 생산 여건을 활용하여 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생산한 다음, 미국으로 가져가 소비한다’를 거두절미한 것이다.

​중국시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기업은 애플이다. 애플은 뉴욕 증시 시가 총액 3조 7000억 달러의 1위 기업이다. 이런 애플이 중국에 거액을 투자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보다 뛰어난 중국의 투자환경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2001년에 중국에 진출한 애플은 아이폰을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서 생산한다. 아이폰은 미국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생산한다. 모든 아이폰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했다(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는 라벨이 붙어 있다. 그동안 애플은 중국의 생산 시스템을 활용하여 정밀 조립, 빠른 대량 생산, 낮은 인건비를 누려왔다. 생산은 대만 기업 팩스콘에 위탁하여 생산한다. 아이폰 생산에 종사하는 중국 노동자는 협력사를 포함해 120만∼160만 명 수준이다. 애플의 CEO 팀 쿡은 미중 갈등과 상관없이 수시로 중국을 방문한다. 최근 그는 '왜 중국에서 생산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임금보다 기술력"이라고 답했다.

​테슬라의 전기차를 보자. 2019년 상하이에 지은 연산 110만대의 테슬라 자동차 공장 기가팩토리는 1년 만에 준공했다. 코로나19를 무릅쓰고 상하이 당국은 전력을 다해 지원했다. 중국은 미국을 이렇게 대한다. 연산 1만 대의 충전기 공장도 상하이에 두고 있다.

​월마트는 어떤가? 월마트는 미국 최대의 할인매장으로, 매출과 고용에서 세계 1위 기업이다. 현재 월마트의 중국산 제품 비중은 지난 2018년의 80%보다 감소했지만 여전히 60% 수준이다. 그들은 이번 5월말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예고해 놓았다. 소비자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못 궁금하다. 트럼프도 궁금할 것이다.

​최근 AI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앤비디아를 보자. 앤비디아는 최근 구글과 아마존을 제치고 미국 증시 '빅3' 기업으로 올랐다. 대만 출신인 앤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최근 미국 정부의 대중국 수출 통제가 잘못된 결정이라며, 중국 시장을 겨냥해 H20 칩의 저사양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수출 규제를 회피할 수 있도록 제품 성능을 조정하는 전략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회계연도에 중국 시장에서 약 17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는 앤비디아 총매출의 약 13%를 차지한다.

​이 밖에도 스타벅스, 퀄컴, 인텔, 코카콜라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업들도 중국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미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 앞으로 트럼프 태풍이 얼마나 거셀지는 트럼프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이 고비가 지나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덜 불안정한 미중관계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세계 최대의 선진시장과 세계 최대의 개도국 시장의 절묘한 보완구조를 떠벌이 권력으로 충격을 주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의 제네바 협상처럼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김문수·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가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25.5.23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한국의 길

우리 사회가 혐중에 휩싸여 있는 것은 다른 서방국가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런 혐중 정서를 국가 차원의 무역 전략으로 이용하는 정부는 어디에도 없다. 이 점에서 지난 윤석열 정부는 최악이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중국 수출 1, 2위를 차지하면서 중국시장을 가장 잘 활용해 온 나라다. 윤석열 내란의 출발점은 혐중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집권당이 참패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민생 파탄을 보자. 민생 파탄은 수출 위축-경기 침체에서 온 것이다. 거기에 윤석열의 ‘나는 중국이 싫다!’는 외마디 바보짓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들은 버릴 수 없는 신념이 있었다. 그것이 ‘한미일 공조’다. 그 속에 ‘혐중’은 버릴 수 없는 필수 사항이었다.

우리 새 정부의 외교가 중국과 ‘셰셰’로 웃으며 시작하면,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재명 후보는 중국-대만 '셰셰'와 일본 ‘아리가또’를 열어놓았다. 북한과도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이런 열린 자세는 DJ 이래 처음이다.

이렇게 미중 양대 시장의 동시 활용을 다시 이어 나가면, 한국은 영국-프랑스-독일도 가뿐히 넘을 수 있다. 이는 일찍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전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2년 전, 경제수준(1인당 GDP)에서 일본을 넘었다. 어느새 미국도 내심 한국 민주주의를 부러워한다.

우리는 기어이 날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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