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비전보다 '내란 유령'이 배회하는 대선판

내란 책임 사라지고 '반이재명' 동맹 충격

2025-05-27     김종대 매의눈
김종대 전 국회의원

두 차례의 대선 방송토론이 끝났다. 논쟁은 뜨거웠으나, 그 속에서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의문이 있다. ‘12.3 내란사태’ 이후 정치가 과연 제자리를 찾았는가?

책임 사라진 내란의 유령이 배회하는 대통령 선거판

놀랍게도 선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법정에선 작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로 출동한 계엄군에게 “국회의원 끌어내라”, “여차하면 전기라도 끊어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한덕수 전 총리와 최상목, 이상민 전 장관의 경찰 진술에 위증 정황이 드러나 국가수사본부가 이들에 대한 재조사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경찰이 압수한 경호처 비화폰 서버에서는 중요 인물들의 통신기록이 삭제된 초기화 상태가 확인됐다. 특히 작년 12월 6일, 김용현 전 경호처장이 검찰에 출두하던 날, 주요 내란 가담자들의 통신 기록이 사라진 정황은 이 사안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내란의 밤과 그 이후에 대한 진실이 하나씩 베일을 벗는 동안, 정작 선거는 남의 나라 일처럼 따로 노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민주주의 파괴자’라며 비방하는 토론장의 광경은, 정작 내란의 책임이 희석되고 야당을 독재자로 낙인찍는 프레임으로 전환된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내란은 유령처럼 배회하지만, 그 책임은 사라졌다. 책임이 실종된 정치는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그것은 내란의 연장선에서 정의의 복권이 얼마나 요원한지를 다시금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아직도 부정선거 음모론과 명확히 결별하지 못한 대선판. 윤석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정치 무대는 이제 컬트 종교의 의식과 다를 바 없다. 김문수 후보는 그러려니 한다 쳐도, 이준석 후보까지 김문수와 사실상 우파동맹을 도모하며 '반이재명' 전선을 구축한 것은 충격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가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약자와 동행하는 서울 토론회'에 참석해 오세훈 서울시장의 환영사를 듣고 있다. 2025.5.19. 연합뉴스

내란의 연장선 위에서 우파동맹 도모하는 젊은 보수

이재명을 공격하는 데 있어 두 사람은 빛나는 공조를 보였다. 나는 1차 토론을 지켜보며, 이준석이 김문수와의 후보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질문 전략을 세운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이후 이준석 후보는 “단일화는 없다”며 휴대폰 수신까지 차단했다고 밝혔지만, 그 기이할 정도로 강한 부정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안 하면 그만일 일을 굳이 그토록 단호히 부정하는 모습은 일말의 연계를 감추려는 과잉방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이준석 후보가 1차 토론에서 ‘셰셰’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재명 후보가 중국에 굽신거린다고 공격하고, 2차 토론에서도 미세먼지와 재생에너지 문제를 끌어들여 친중 프레임을 씌운 것은 작년 12월 16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담화문에서 “중국인이 군사시설을 정탐한다” “중국산 태양광이 산림을 파괴한다”고 했던 내란적 상상의 연장선이다. 여기에 부정선거 음모론까지 결합하면, 이는 ‘주권 침탈 세력’이라는 극단적 언어가 이준석이라는 젊은 보수의 입을 통해 재현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경제민주화를 외쳤던 개혁보수 이준석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더욱이 그는 토론 중 가장 많은 사실 오류를 범했다. 지역별 차등임금제를 주장하며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언급했지만, 현실과 동떨어졌고, 외국인 노동자 차별 임금제에 대해 미국과 캐나다의 제도를 언급한 내용은 아예 팩트 자체가 틀렸다. 기본적 사실 확인조차 소홀히 한 채 영어 표현을 굳이 사용한 점은 지적 허영으로 비쳤다.

비논리적 서사로 가득 찬 김문수의 비극성

김문수 후보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이 든다. 한때 전설적인 노동운동가였던 그가 전광훈 목사의 추종자가 되고, 여전히 “선관위가 해명해야 한다”는 식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고집하는 모습은 그저 딱하다. 특히 권영국 후보의 내란 책임 추궁에 “재판 중이다”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태도는, 사실상 ‘내란의 잔당’들이나 할 법한 언어다. 그의 인생 궤적은 설명 불가능한 전환들로 가득하지만, 그 모든 전환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치적 욕망의 서사조차 부재하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김문수·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가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25.5.23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후보는 1차 토론에서는 방어적이었고, 2차 토론에서는 네거티브 공세에 맞대응했다. 그러나 가족 문제와 관련해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과의 진정성은 느껴졌지만, 그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다. 1위 후보로서 많은 질문과 공세를 감당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즉자적인 감정 대응을 넘어서 더욱 의연한 태도가 요구된다. 3차 토론 역시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다.

방송토론의 숨은 수혜자는 단연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다. 아직 지지율은 낮지만, 인지도와 호감도 면에서는 확실한 진전을 이뤘다. ‘거리의 변호사’라는 인생 서사가 1차 토론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신스틸러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만큼 진보 정치의 새로운 자산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란 책임을 말하는 언어이고, 토론이란 그 책임을 복원하는 절차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내란의 언어만 남고, 내란의 책임은 사라진 정치판 위에서 또 한 번의 민주주의 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 절망의 정국에서 정의는 얼마나 더 멀리 돌아가야 회복될 수 있을까.

지금은 도피가 아니라 진실과 책임, 연대가 필요한 때

새로운 나라에 대한 가슴 벅찬 비전이 실종된 가운데, 음습한 공포와 피로감만이 감도는 이번 대선은 아직도 한국 민주주의가 깊은 어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국민이 목격한 것은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과거의 잔재들이 다시 정치의 얼굴을 뒤덮는 장면들이었다. 토론장에선 국가의 비전보다도, 개인의 굴절된 욕망과 내란의 단죄로부터 도피하려는 의도가 더 뚜렷이 감지됐다. 그렇기에 대선 토론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지금의 민주주의는 충분히 크고 강한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정치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진실과 책임, 그리고 그 위에 서는 공동체의 연대가 필요하다. 정치는 스스로를 정화할 줄 알아야 하며, 권력은 무죄의 외투를 걸치고 진실로부터 도망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더 크고 강한 민주주의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할 때다. 만일 우리가 이 책임을 외면한다면, 언젠가 더 혹독한 민주주의의 비용 청구서를 받아들게 될 것이다. 그 청구서는 오늘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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