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전쟁’ 탓 중국 ‘디플레 수출’ 동남아로 쏠려

베트남 중국산 가전 수입 54%, 기계는 44% 늘어

중국산 전기자동차 인도네시아 수출 4배 늘어

중국기업들 우회수출 위해 해외 공급망 확대

중국산 PC 스마트폰 수출시장, 동남아가 미국 대체

4월 시진핑 주석에 이어 5월 리창 총리 동남아에

중국 디플레 수출 영향으로 동남아 관련업계 위축

‘세이프 가드’ 발동 등으로 대항하는 동남아와 인도

2025-05-26     한승동 에디터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오른쪽 네 번째)와 라오스의 소넥사이 시판돈 총리(왼쪽 세 번째)가 5월 25일, 아세안(ASEAM.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를 앞두고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열린 양자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2025.5.25. AP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 영향으로 중국의 동남아시아 지역 수출이 확대되고 있다. 4월 초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중국제 컴퓨터(PC), 스마트폰의 대미 수출이 줄면서 많은 물량이 동남아 쪽으로 유입됐다. 중국산 물품의 동남아지역 수출 확대는, 4월 9일 트럼프 정부가 상호관세 90일 유예 조치를 발표한 뒤 그 기간 안에 대미 수출 물량을 앞당겨 확대하려는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제 부품을 서둘러 주문한 데에 따른 효과도 있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 항구에서 선적되고 있는 중국산 수출품들.   일본경제신문 5월 26일

중국산 대미 수출 물량 줄고, 대신 동남아 수출 늘어

<일본경제신문>은 26일 중국 세관총서의 발표를 인용해, 4월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에 대한 중국의 수출이 달러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 늘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장률은 올해 3월의 12%에 비해서도 크게 높아진 것이다. 4월에 중국에 대한 관세를 145%로 높였던 미국으로의 수출이 21% 줄어든 것과 대조적으로 ASEAN 쪽으로의 수출이 크게 늘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동남아 역내에서도 중국과의 무역이 활발한 베트남과 타이, 인도네시아에 대한 중국의 수출은 20~30% 늘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대한 중국의 수출은 지난 3월엔 약간 줄었으나, 4월에는 모두 15%씩 늘었다.

 

팜민친 베트남 총리와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5월 25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열린 제46차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를 앞두고 만났다. 2025.5.25. 로이터 연합뉴스

베트남 중국산 가전 수입 54%, 기계는 44% 늘어

이런 증가에는 트럼프 정권의 90일간 상호관세 유예 조치가 영향을 끼친 점도 있다. 베트남 등 대미 수출이 활발한 나라들에서는 추가관세가 붙지 않는 이 유예기간에 미국으로부터 받은 수입 주문 물량을 앞당겨 선적하기 위해 필요한 부품들을 중국으로부터 서둘러 수입하면서 대중 수입이 늘었다. 베트남의 4월 대미 수출은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30% 이상 늘었다.

이런 대미 수출물량 증가에 따라 연쇄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원자재 수입도 크게 늘었다. 베트남 무역통계에 따르면, 4월에 중국에서 수입한 물량은 전기제품 및 부품은 54%, 기계는 44% 늘었다.

중국기업들 우회수출 위해 해외 공급망 확대

중국 기업들은 트럼프 1기 정부 때의 미중 무역전쟁을 경험한 뒤 제3국 경유 우회수출 등을 위해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을 국외로 확대해 왔다.

일본 제일생명경제연구소의 니시하마 도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미 수출에 부과되는 관세율이 중국보다 낮은 동남아시아 등에서의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동남아 현지의) 중국기업들이 모국(중국 본토)로부터 부품 자재 조달을 늘린 면도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24일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2025.5.24.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산 PC와 스마트폰 수출시장, 동남아가 미국 대체

동남아에서의 최종 제품 조립에 들어가는 원자재 외에 가전 제품들도 중국에서의 수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중국 무역통계를 보면, 말레이시아에 대한 중국산 노트북 컴퓨터, 태국에 대한 중국산 스마트폰 수출은 전년도 동기 대비 30%나 늘었다. 모두 트럼프 관세로 중국산의 미국에 대한 수출이 줄면서, 동남아가 미국시장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산 전기자동차 인도네시아 수출 4배 늘어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국산 전기자동차(EV) 수입이 크게 늘었다. 인도네시아의 4월 EV 판매는 전년도 같은 기간의 4배인 약 7400대로 늘어, 신차 전체 판매에서 차지한 비율이 14%로 올라갔다. 이 증가분 가운데 중국산이 90%를 차지했으며, 이에 따라 중국에서의 완성차 및 부품 수입도 늘고 있다.

중국의 값싼 ‘디플레 수출’ 동남아로 쏠려

중국은 EV와 철강 등의 과잉생산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부동산 불황으로 국내 경제 정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해외 수요도 최대 수출국이었던 미국 시장이 축소될 공산이 커졌다. 이에 따라 값을 싸게 해 수출 물량을 늘리는 중국의 ‘디플레 수출’이 동남아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커졌다.

 

24일부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방문 중인 리창 중국 총리.  NHK 일본경제신문 5월 22일

4월 시진핑 주석에 이어 5월 리창 총리 동남아에

이를 위해 중국은 이 지역들과의 관계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은 지난 4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순방해 해당국 정상들과 무역, 투자, 안보에 관한 제휴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한데 이어, 이달 24~28일에는 리창 총리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방문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방문 때 리창 총리는 처음 열리는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 및 GCC(걸프지역협력회의) 합동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중국 디플레 수출 영향으로 동남아 관련업계 위축

중국산의 동남아 수출 확대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섬유와 제화업계에서 공장 폐쇄와 인원 삭감이 잇따르고 있다. 제화업계 단체의 관계자는 “트럼프 관세로 인한 혼란 때문에 인도네시아 시장이 더 많은 (중국산) 수입품들로 넘쳐나게 됐다”고 말했다.

동남아에 나가 있는 일본기업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니시하마 도루는 “값싼 중국제품이 유입되면 일본기업도 가격경쟁에 휘말려 (동남아) 현지법인의 수익에 하방 압력이 걸린다”고 했다.

한국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동남아에 나가 있는 현지 한국기업들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이프 가드’ 발동 등으로 대항하는 동남아와 인도

이 때문에 중국제품 유입에 대한 동남아 각국의 반발도 강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덤핑(부당한 염가판매) 방지법을 마련해 값싼 중국제품에 대항하고 있다. 지난 5월 7일에는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페트병 원료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말레이시아는 26~27일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ASEAN 정상회의에서 의장성명을 통해,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에 따른 세계경제 혼란과 그로 인한 동남아 역내의 부정적 영향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할 예정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산 수입이 늘고 있는 인도에서도 지난 4월 중국산 수입품에 세이프 가드(자국산 보호를 위한 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도입해, 일부 철강제품 등에 한정된 기간 동안 12%의 수입관세를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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