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이재명 동반청산? 언론의 어불성설

내란세력과 저항세력을 '낡은 기득권'으로 동일시

윤석열-이재명 둘 다 똑같다는 논리의 연장

국힘 패배 확실한 상황 인정치 않으려는 안간힘

2025-05-19     이명재 에디터

'보수' 언론의 이른바 '이재명-김문수 동반 청산론'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국민의힘의 패배가 확실해지는 상황에서 이같은 현실을 어떻게든 인정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읽힌다.

중앙일보 대기자(최훈)의 19일자 칼럼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나란히 '청산의 대상'으로 지적했다. <왜 ‘그날’은 오지 않는지 답해야 할 6·3 대선>이라는 이 글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아홉 번째인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김문수 후보 두 사람 모두를 1987년과 연이 닿아 있는 구시대 인물로 규정하고는 이 둘로는 ‘새날’을 열 수가 없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고는 민주화 이후 세대의 첫 주자이자 ‘대통령 힘빼기’가 으뜸 공약인 후보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라면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정당의 모순과 기득권을 파괴해 달라고 주문한다.

정치권 전체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가하는 이 주장은 ‘윤석열 내란 정권 심판’의 높은 열기 속에 대선 결과가 어느 한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지는 상황에서 이재명과 김문수를 똑같은 낡은 세력으로 낙인 찍고는 둘 다 청산하자고 한다. 그 맞은편에는 국민의힘과의 거리가 그리 멀다고 볼 수도 없는 이준석 후보를 마치 새로운 정치와 시대 교체의 기수인 양 내세운다. '보수' 후보의 패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보수’ 언론의 양비론이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6일 전북 익산, 경기 수원, 충남 천안에서 각각 유세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국민의힘 김문수·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 2025.5.16 연합뉴스

이같은 김문수-이재명 동반청산론 조선일보에 그 전날 실린 <美 기자 “정치적 근친교배, 중도층과 멀어져”…‘레드향’ 같은 품종개량 후보 없나>라는 ‘노석조의 외설(外說)’이라는 칼럼에서도 발견된다. 이 칼럼은 미국의 하버드·스탠퍼드 등 동부 엘리트 유학파와 이른바 ‘반트럼프 에코챔버’에 갇힌 한국 내 미국 전문가들을 지적하며 그들이 2016년과 2024년 트럼프 당선을 예측하지 못한 이유를 ‘확증편향’과 ‘정치적 근친교배’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 칼럼은 트럼프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하는 듯하지만 결국 또 하나의 양비론을 펴고 있을 뿐이다. ‘진보도 문제, 보수도 문제’라는 식의 논지로 트럼프와 힐러리를 동일시하듯 김문수와 이재명을 동일한 ‘기득권 정치’로 묶어버린다. 

이같은 김문수-이재명 동일시는 윤석열-이재명 동반 청산론의 연장이다. 특히 조선일보가 지난 5개월여간 일관되게 전개해 온 논지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신문은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7일 <강천석 칼럼, '윤석열의 끝'이 '이재명의 시작'은 아니다>에서부터 윤석열과 이재명의 동일시를 꾀해 왔다. 이 칼럼은 윤 대통령의 헌정 파괴 시도와 이재명 대표의 국정 마비 책임론을 동시에 제기하며, 양쪽 모두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했다. 주필(양상훈) 칼럼 <“尹, 李 둘 다 없어졌으면” , 1월 16일자)에선 윤석열, 이재명 두 정치인 모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했고, <김대중 칼럼> 1월 21일자에선 윤석열 탄핵과 이재명 대표의 유죄 판결 가능성을 예측하며 두 사람이 '동반 퇴장'해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민주주의 파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똑같이 취급하는 논리이며 검찰권력 남용 및 내란 시도 세력과 권력 남용의 직접적 피해자이자 저항자를 같은 ‘청산 대상’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윤석열-이재명 동반 청산론의 연장인 김문수-이재명 동반 청산론은 전형적인 양비론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도 않다. 양비론이 더욱 위험한 것은 양비론 자체보다 양비론이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는 데 있다. 중앙일보의 위의 칼럼은 미국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경고 “한 손에 입법·행정·사법이 모두 쥐어지면 그것은 폭정이다”를 인용하고 있다. “대법원 옥죄기에 핏발 선 민주당의 사법부 겁박이야말로 더욱 우려스러운 공포다.” 이재명을 ‘21세기 로베스피에르’로 비유하면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행정·입법 장악에 이어 삼권분립 와해에 대한 두려움만 자초할 뿐”이라고 불안감을 자아내려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경구는 애초에 윤석열 정권에게 향했어야 할 경구다. 윤석열 정권의 폭정과 삼권분립 와해 때는 양비론조차 없이 줄곧 침묵했던 언론이 이를 타개하려 하는 정치세력에 대해선 '폭정'이라며 몰아붙인다.

이 칼럼은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단순히, 좁게 정의하자면 “집권당이 선거에서 패할 수 있는 체제”(아담 쉐보르스키 뉴욕대 명예교수)라는 말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신문은 집권당이 선거에서 패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그 패배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든 막아 보려 한다.

중앙일보의 이 칼럼이 구 시대 청산론의 이름으로 정권 교체를 막을 수 있다는 기대를 보내는 이준석 후보는 국민의힘에 대해 “더 이상 고쳐 쓸 수도 없는 당”이라고 했다. 그 말을 빌자면 중앙일보는 민주당에 대해서는 고쳐 쓰기 이전에 아예 '써 보려는'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조선일보의 '노석조의 외설'은 <빅 소트>라는 미국 빌 비숍 기자의 책을 인용하면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서로 다른 견해를 차단하는“ '이념적 근친교배’ ‘에코챔버(Echo Chamber, 자신이 믿는 생각이나 의견만이 반복되어 울리는 공간)’를 지적한다. “며칠 전 아파트 단지에 대선 후보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어린 딸이 포스터 앞에서 아빠는 누구 뽑을거야? 라고 묻는데 답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치도 품종 개량이 활발히 이뤄졌으면 합니다.”

'정치적 품종개량'이 필요하다는 노석조 기자의 말은 전혀 그를 게 없다. 그러나 진정한 품종개량은 모든 품종을 다 똑같이 불량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품종이 더 많은 해를 끼치고 있는지를 가려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품종개량이 먼저 필요한 건 정치인 이전에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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