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수단을 확보하라”… 패권주의 갑질 대처법
자유무역 판을 깐 미국, 이젠 판 바꾸자며 윽박
‘관세전쟁’ 배후에 도사린 미국의 패권의식
제조업(생산수단) 없이 패권 유지 어려워진 미국
트럼프 관세폭탄은 거덜난 제조업 다시 일으키기
각 개인의 생산수단 확보로 미국 갑질 극복하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관세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언제는 자유무역 해야 한다고 생난리를 치더니 자기네가 불리해지니까 이제는 관세 장벽을 세워 보호무역을 해야 한단다. 아무리 강자 마음대로라지만 전 세계 수십 억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
자유무역 판을 깐 미국이 이젠 판 바꾸자며 윽박
트럼프 진영의 해명을 들어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나 애초 판을 이렇게 깔아 놓고 실컷 재미를 보다가 이제 나라의 곳간이 비니까 다시 판을 짜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미국은 한때 세계의 식량 창고이자 공장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쟁에 가담한 모든 나라들의 경제가 거덜났어도 미국만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전쟁을 통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패권국가로 우뚝 올라섰다.
어렸을 적에 미국 잉여농산물로 만든 급식을 받아먹었던 사람들은 “미제는 똥도 좋다”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만큼 미국제 상품은 세계 어디서든 환영받았다. 웃돈을 주고라도 구하고 싶은 미제였으니 미국은 당연히 자유무역을 주장했고, 그것은 1995년에 WTO(World Trade Organization) 결성으로 매듭을 짓는다. 당시 자유무역에 불리함을 느낀 가난한 나라의 농민과 상공인들은 WTO 체제에 항거하면서 숱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동안 이 나라들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겨우 자유무역에 기초한 국제분업체제에 적응하여 수출산업을 키워왔는데, 이제 와서 다시 관세를 내라고 하니... 도대체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기네만 등 따수면 다른 나라 백성들은 다 죽어도 좋다는 건가? 그리고 트럼프발 관세전쟁은 당장 미국의 서민들에게도 재앙이 되고 있다.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물가가 올라 그나마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는데 관세로 인해 물가가 더욱 크게 오르자 모두들 거리로 뛰쳐나와 트럼프 탄핵을 외치고 있다.
‘관세전쟁’ 배후에 미국의 패권의식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미국인들의 ‘패권의식’이 있다. 국민총생산에서부터 경제력, 군사력, 문화적 영향력까지 모든 부분에서 세계 1등이니 겸손이 몹시 힘든 나라임은 틀림없다. 거기에 기축통화인 달러만 가지고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받아주니 가난한 미국 사람일지라도 자기 나라가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듯이 한 나라의 패권도 그와 같다.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기득권자들이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재앙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등장하기 전의 미국이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바이든으로 대표되는 미국 민주당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걸핏하면 전쟁과 무력 분쟁을 일으켰다. 전성기에나 가능한 끝없는 확장과 무력 간섭을 기본 정책으로 삼았다. 그러자니 세계의 인민들은 언제 어디서 전쟁이 날지, 또는 쿠데타가 일어나 정권이 바뀔지 불안 속에 살아야 했다. 지금 서유럽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는 러우전쟁도 사실은 미국이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의 고토 회복 야망과 우크라이나 침공이 ‘팩트’이기는 하지만 2014년 ‘마이단 폭동’을 일으켜 친러 정권을 무너뜨리고 극우정권을 세운 것이 사실상 전쟁의 시작이다. 젤렌스키 정권의 탄생,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밀어붙이기와 대러시아 항전 등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고, 미국은 이 모든 과정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오죽하면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트럼프가 전쟁 대리인에 불과한 우크라이나에게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돈을 물어내라고 요구하겠는가! 우크라이나 국민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덕분에 향후 100년 동안 거지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경제 거덜난 미국
작년에 압도적 표 차이로 다시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내세운 구호는 MAGA였다. ‘마가복음’의 마가가 아니라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영문 약자이다. 어쩌면 그들의 심리 저쪽에는 위대한 미국이 세계 인민들에게 복음이 될 수도 있다는 망상이 깔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미국의 전성기에 그들은 위대한 미국의 문명이 가난하고 미개한 나라의 인민들에게 ‘복음’처럼 여겨졌다고 믿었다. 지난 세기에 코카콜라와 햄버거, 아메리칸 팝송,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가 복음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마이크로 소프트(Microsoft), 애플(Apple), 구글(Google), 그리고 아마존 닷컴(Amazon.com)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미국의 자존심과 같은 이 네 회사의 첫 글자를 합치면 역시 MAGA가 된다.
트럼프는 민주당 지도자들과 달리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 기본적으로 그는 장사꾼이자 협상의 달인이다. 그는 민주당의 확장 일변도 정책으로 미국 경제가 거덜 났다고 보았다. 실제로 미국의 모든 경제 지표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빚)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동안 기축통화인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어 그럭저럭 막아왔지만 중국이라는 새로운 패자가 나타나 달러의 위상을 끊임없이 흔들어대자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이 길을 열어 준 라이벌 중국의 굴기
문제의 발단 역시 미국이 시작했다. 1970년대 초 미국이 베트남전 개입의 실패를 인정하고 전장에서 조용히 미군을 철수하고 있을 때였다. 1971년 7월 9일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극비리에 베이징을 방문한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키신저-주은래 회담’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었지만 이념적으로 세계를 양분하고 있었던 소련의 영향력을 어떻게 해서든지 차단하고 싶었다. 마침 베트남전의 패배와 함께 전 세계에 “More Vietnam!”이라는 구호가 나돌고 있었다.
중국 개방이 답이었다. 중국은 소련과도 관계가 좋지 않았고 잇단 경제계획 실패로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미국으로서는 지상 최대의 시장을 확보하고 이념의 적수인 소련을 고립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드디어 1978년에 미국과 중국은 국교를 정상화하고 2001년에는 중국도 세계자유무역 기구인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다. 이때만 해도 중국이 경제적으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중국은 WTO에 가입한 이래 매년 두 자리수 경제성장을 기록하더니 겨우 20년 만에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올라선다.
이는 중국 혼자 달성한 것이 아니다. 효율적 투자처를 찾는 초국적 자본이 중국에 몰려들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미국의 제조업 기반은 공동화되고 만다. 미국은 상품의 디자인과 설계만 하고 나머지 상품제조 과정은 중국에 맡겼다. 당시에 중국의 노동자 임금 수준은 멕시코보다도 낮았다.
제조업(생산수단) 없이 패권 유지 어려워진 미국
2010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세계 2위였던 일본을 제치게 되자 미국은 비로소 중국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대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후로도 중국의 GDP는 계속 상승하여 지금은 3위에서 6위까지를 다 합한 것보다도 더 많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미국의 라이벌이 된 것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할 당시만 해도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에게 좋으며 중국에게도 좋고 세계경제에도 좋다"고 환영했으나 25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때문에 국제 무역질서가 다 망가져, 할 수 없이 보호무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제조업이 없었어도 자유무역 하의 국제분업체제에 의해 미국이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러우전쟁을 겪으면서 제조업(생산수단)이 없으면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트럼프는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면서 돈 내기 싫으면 공장을 미국에 지으라고 윽박지르고 있으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 자본이 중국으로 간 것은 상품 제조를 위한 모든 환경이 미국에 비해 월등히 좋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런 환경을 갖추려면 몇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니까 국제자본과 동맹국들은 멘붕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트럼프인데도 무리수를 두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중국의 대미 수출길이 막히면 중국 현지의 어마어마한 시설에서 생산되는 상품이 모두 재고가 될 것이고, 미국은 미국대로 물가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아우성을 칠 것이다. 두 패권 국가가 일종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걸까?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이제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자. 러우전쟁에서 러시아의 승리와 미중 패권전쟁에서 미국의 취약점은 모두 제조업의 보유 여부이다. 러시아는 푸틴 집권 이후 서구의 방해로 국제무역이 원활치 않자 자국의 원자재에 기초한 제조업을 착실히 키워왔고 그 위력을 이번 전쟁을 통해 확실히 보여주었다. 미국은 중국에게 몰아준 제조업을 돌려받기 위해 중국고립 작전을 펼치면서 관세 공세를 취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건 미국이다. 중국은 건국과정과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극한의 어려움을 겪은 나라이다. 그것이 그리 먼 과거도 아닌데다 일당 독재 체제이기 때문에 언제든 비상 통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 국민은 그런 경험이 없다. 못 살겠다 싶으면 대통령이고 뭐고 당장에 물어뜯을 기세이다. 국가 정책에 대한 저항과는 별도로 아마도 미국 국민 사이에 생존을 위해 스스로 ‘생산수단’을 획득하자는 운동이 벌어질 것이다. 국가가 못하면 내가 한다는 정신이다. 국가가 개인을 책임지지 못하면 스스로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인류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도구를 쓸 줄 안다는 것이다. 도구를 통해 인간은 ‘문명’을 만들었고 지금은 AI(인공지능)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 자체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과연 AI가 가져올 미래가 인류 문명의 연장이 될지 아니면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다. 이 문제도 생산수단의 본질과 기능을 잘 살펴보면 해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수렵채취 시대에는 돌과 몽둥이가 생산수단이었고, 농경시대에는 농기구와 토지, 그리고 농사기술이 생산수단이었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오기까지는 생산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생산자가 토지로부터 분리되어 임금 노동자가 되자 가지고 있던 생산수단은 다 쓸모없는 고물이 된다. 대신 자본가는 신식 기계를 도입함으로써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품이 된다. 이 상황은 19세기 영국의 산업현장이나 오늘날 국제분업에 의해 운영되는 대규모 공장에서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생산수단을 잃어버린 노동자는 노예나 다름이 없다. 자본주의를 고대 노예제의 부활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이전 시기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생산성과 생산량을 과시한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물론 기술 탓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착취와 소외의 결과이다. 온라인 유통업체인 쿠팡의 택배 속도가 빨라질수록 배달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소외의 강도가 강해진다. 생산량이 많다는 것은 원자재의 투입이 많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바로 자연에 대한 착취가 심해진다는 의미이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 생산이 활발할수록 인간 소외와 자연 파괴가 심해지며, 그것이 오늘날의 생태 위기와 기후변화의 원인이다.
해법은 각 개인이 생산수단을 확보하는 것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나는 단언한다. 각자가 또는 공동체 단위에서 생산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WTO 체제 출범 이후 이미 국가 단위의 생산수단 확보는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한다. 자본은 늘 이윤이 생기는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자본가에게는 돈 버는 법을 물어야지 위기 탈출의 방법을 물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보통 사람은 현재 자본가가 굴리고 있는 대규모 생산수단을 확보할 수 없다. 그것은 그대로 놔두고 개인 또는 공동체 차원에서 가능한 생산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내 몸이 자본가가 운영하는 회사에 묶여 있는데? 하고 반문할 것이다. 의지만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생산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 20여 년 전부터 유행하는 ‘반농반X’ ‘5도2촌’ ‘주말농장’ ‘도시농업’ ‘공예촌’ ‘건축협동조합’ ‘메이커즈 운동’ ‘DIY’(Do it yourself 자신이 직접 하기) 등이 그것이다.
식량생산 절반을 차지했던 러시아 ‘다차’농업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본가들이 생산성을 극한으로 높여 일주일에 적게는 하루 반, 많게는 3일이나 쉴 수 있는 바람에 그런 일이 가능해졌다. 이제부터 쉬는 날에 인생을 탕진하지 말고 생산수단 확보와 기술 습득에 애써야 한다. 그래야 다가오는 환란에 대비할 수 있다. 참고로, 개인의 생산수단 확보가 큰 역할을 했던 역사적 사례가 있다.
구 소련 시절 국영농장의 생산성이 형편없어 자주 기근에 시달렸는데 어려울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농장인 다차(Dacha) 때문이었다. 한때 다차는 소련 식량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도 한다.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메그레가 쓴 <아나스타시아>라는 책에 의하면 인류의 어두운 미래는 다차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생산수단 확보가 중요한 결정적 이유를 말하겠다. 도구의 발명으로 문명을 일군 인류는 유사 이래 인간 척도(Human Scale)에 근거한 생산수단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해결하고 동시에 자연을 인간화하였다. 다시 말해 적절한 규모의 생산수단은 인간의 사회화와 자연의 인간화를 동시에 이루는 매개체였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모든 비극과 자연 파괴는 생산자가 생산수단을 오로지 이윤만 쫓는 자본가에게 내주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인간 척도의 생산수단을 확보함으로써 인간 소외를 극복하는 동시에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회복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일단 로컬 차원에서 제조업과 로컬 시장이 살아나고, 로컬과 로컬이 만나면서 전국적인 제조업 확보가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트럼프가 벌이는 억지스런 관세 정책과 강압적인 제조업 유치는 패권주의자의 갑질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