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전환을 위한 ‘중도정치’가 필요하다
보수-진보간 중간·중립 아닌 차원전환의 중도정치
기득권 청산, 공화국, 대전환, 지속가능성, 미래로
상대 증오를 자기 기득권 유지 발판 삼는 선동정치
국가위기 수준의 만연한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을 넘고
권위주의 개발, 케인즈주의 복지, 신자유주의 경쟁의
국가모델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발전 모델 찾기
탄핵사태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비상계엄 선포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까지 대한민국은 약 넉 달간 혼돈의 시간을 관통해 왔다. 지속불가능한 사회로부터 희망의 출구를 열어줘야 할 정치가 오히려 지속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버린 모순적 상황을 우리는 온몸으로 경험했다.
충격이 컸던 만큼 탄핵 국면의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려는 움직임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다. 비상계엄과 탄핵사태를 계기로 헌법의 중요성이 재확인되면서 개헌과 제7공화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이 대표적이다. 사회 각 영역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연대해 내란 청산과 함께 ‘사회 대개혁’을 통한 새로운 공화국의 내용을 고민해 왔고, 새로운 헌법에 담을 핵심 내용들을 정리해 온 과정들도 있었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개헌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38년간 미뤄온 개헌을 현실화할 절호의 시기를 맞이했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 사이에 개헌은 물 건너간 듯하다. 조기 대선 후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그동안 경험으로 볼 때 개헌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조기 대선 특성상 개헌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분명히 있었지만, 유력한 대선 후보자의 개헌에 대한 소극적 태도에다 개헌 논의를 내란 세력의 음모와 연결시켜 불온시하는 분위기가 개헌 논의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다.
과거가 우리 발목을 잡을까 현재와 미래를 구할까
이런 가운데 조기 대선이라는 정치적 빅이벤트(big event)가 바로 시작되면서 사회적 관심은 온통 정권교체 또는 재창출을 위한 대통령 후보 선출 문제에 쏠려 있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선 결과가 대한민국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에서 보듯이 대선 결과 자체가 곧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선 결과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 내란(內亂) 사태가 윤석열 개인에 대한 단죄로 종식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선거도 중요하지만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구원할 것인지 아니면 발목을 잡을 것인지와도 관련된 문제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우리가 이룩한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호수 위 달그림자’를 좇는 지도자의 망상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충격적 현실을 목격했고, 동시에 이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이 얼마나 높은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예외적이고 특이한 사건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 이면에 내재된 복합적인 요인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헌재 판결 직후 국회 탄핵소추위원의 법률대리인이 한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 3월 경북 일대에서 일어난 최악의 산불 사태를 비유로 들어, 대통령 탄핵으로 큰불은 껐지만 잔불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재앙적 상황이 재발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다만 여기서 비유한 잔불은 옮겨붙은 것이 아니라 지표면 아래의 요인들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국가위기 수준의 만연한 가짜뉴스와 확증편향
이번 탄핵사태를 통해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상황조차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정치인, 언론인, 법률 전문가와 같은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왜곡되고 분열된 현실 인식은 충격적이었다. 전직 고위 관료와 대학교수, 종교인 등이 음모론을 앞세워 사회를 극단적 갈등으로 몰아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여실히 드러냈다. 맹목적 믿음과 추종은 합리적 대화와 토론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토대와 공화국의 질서를 흔든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폭력적 언행과 헌법적 질서를 부정하는 극단주의 세력이 우리 사회에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시민 교육의 시급함을 일깨워 준다.
정치권과 유권자들 자기 책임 성찰부터 해야
기성 정치권이 사고를 치면 국민들이 나서서 수습하는 일이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정치권은 비상계엄 사태에서 보여준 한국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칭송하기 전에 국민에게 미안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자기 반성보다는 자신들 집단 정치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용하려 드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정치적 대리인으로서 유권자에 대한 도리를 망각한 무책임한 행태의 전형이다.
유권자 시민들의 자기 책임에 관한 부분도 잘 살펴봐야 한다. 이번 탄핵사태와 관련한 많은 논의들 속에 유권자로서 책임에 대한 성찰은 부족했다. 우리는 지난 선거에서 어떤 기준으로 투표했는지,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을 꼼꼼히 살펴보았는지, 이념적 성향이나 소속 정당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혹시 이번 조기 대선도 관성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는 않는지 등 유권자 시민으로서 자기 역할을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우외환의 시대 상황과 선동 정치의 폐해
내우외환(內憂外患). 지금의 상황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후대에 지금을 평가한다면 국내 정치의 혼란과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이 중첩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시기로 부르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상식이 뒤집히고 합의된 질서가 뒤흔들리면서 개인에서 사회 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위중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조기 대선이 가진 의미는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안정적인 리더십을 발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민의힘에서는 현재 가장 유력한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의회와 행정 권력을 모두 장악해서 전권을 휘두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당면한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조기 대선 특성상 인수위 등 준비 기간 없이 새 정부를 출범시켜야 하는 시간적 한계도 있지만, 이번 탄핵 국면에서 확인되었듯이 우리 사회는 사회경제적, 공간적 양극화에 더해 이념적, 심리적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져서, 어느 한쪽은 새롭게 출범할 정권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자국 이익을 앞세운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운데, 대외 의존성이 특히 심한 대한민국 경제의 불안정성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경제 문제를 정치적 최우선 과제로 삼는 이상 경제 지표의 변동은 정치 지형의 변동으로 언제든지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선동 정치의 폐해는 매우 심각하다. 선동(煽動, agitation)은 말뜻 그대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개인 또는 집단의 감정을 부추겨 특정 집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행위다. 선동은 선악 이분법에 기반해서 상대에 대한 악마화로 자신이 처한 위기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동시에 자기편에 대한 절대 지지로 정서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면서 맹목적 충성을 유도한다. 악마화와 신격화는 선동 세력이 의지하는 동전의 양면이다.
선동은 주장의 내용과 사실 자체보다는 동기와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합리적 토론과 타협을 어렵게 한다. 문제는 선동이 선동을 불러일으켜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상대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 증폭되고 다양성은 질식되어 정상적 정치 자체가 마비된다.
선동은 극단주의의 자양분 역할을 하면서 사회적 공존 가능성을 해친다. 우리 사회에도 여성, 장애인, 소수자, 이주민 등 약자에 대한 혐오의 정서가 온라인 극우를 중심으로 확장해 왔는데, 이번 탄핵 국면을 통해 오프라인 공간으로 진출하여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대통령 탄핵으로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상대에 대한 혐오가 증폭되어 증오로 이어지면 상대는 경쟁과 공존 대상이 아니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청산, 척결, 수거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다. 극단주의가 만들어 내는 참혹한 결과는 인류 역사를 통해 수없이 경험해 왔다.
상대 증오를 자기 기득권 유지 발판 삼는 선동정치
선동 정치로는 미래가 없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선동 정치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 모두 자기성찰과 함께 다양성 속에서도 공존, 공생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름에 귀를 열어 경청하고,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입장과 다른 결론도 받아들이고, 내가 원하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인정할 때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패트리샤 로버츠-밀러의 말처럼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난국(亂局)을 맞아 국민적 지혜와 역량을 모아내서 돌파구를 만들어 내는 정치적 리더십이 정말 중요한 때다. ‘대결 정치’, ‘적대 정치’, ‘청산 정치’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상대에 대한 증오심을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 최악의 정치 행태는 이제 끝내야 한다. 진보, 보수의 낡은 프레임에 기반한 정치적 충돌로 인한 부담과 후유증을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감당할 여력이 없다. ‘통합의 정치’ 나아가 ‘전환의 정치’가 필요하다.
요동치는 민심, 중도의 전환 정치로 연결하자
선거 국면에서 대한민국의 민심은 끊임없이 요동쳐 왔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역동성과 함께 불안정성을 만들어 왔다.
돌이켜보면 촛불 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후 새로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취임 1년까지 80%를 넘었다. 임기 말 지지율도 40%가 넘어 역대 정부 중 가장 높았다. 하지만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이후 새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덕’(취임+레임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작부터 20%대의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그런데 오히려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국면 속에서 지지율이 50%에 이르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유권자 시민들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그 핵심에 중도층이 있다. 이들은 정치적 진영 논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치우치기보다 선거 상황에 따라 정치적 선택을 달리한다. 해서 우리 사회에서는 중도층을 부동층 또는 무당파로 부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 중도층이 선거 정치에서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국민들의 이념 지향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대략적으로 진보층이 30〜35%, 보수층이 35〜40%, 중도층이 25〜30%를 차지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지역주의가 강한 곳을 제외하고는 진보와 보수 각각의 고정 지지층으로는 선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정치 현실이다. 선거 결과의 성패가 중도층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보니, 정치권은 중도층의 스윙보터(swing voter), 케스팅보터(casting voter) 역할에 주목해서 중도층 마음을 사로잡을 공약을 개발하고 홍보한다.
그런데 중도층은 선거 때만 반짝 주목받고 선거가 끝나면 바로 외면 받아왔다. 최근 들어서 기성 정치권은 권리 당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정당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긴 하다. 문제는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키운 열혈지지자 강성당원과 중도층의 지지를 동시에 얻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의 지지를 잃어버리는 딜레마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선거 국면을 맞아 후보자 경선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자주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욱 중요해진 중도층의 정치적 역할
중도층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작년 통계청이 발표한 ‘2024 한국의 사회지표’에서 우리 사회의 8개 갈등 현황 중 진보와 보수 간의 정치적 갈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번 탄핵사태와 조기 대선 국면을 거치면서 이념 갈등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충돌로 치닫는 상황에서 중도층의 정치적 완충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다양성에 기반해서 합의를 만들어 가는 제도라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는데 중도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보수-진보간 중간·중립 아닌 차원전환의 중도정치
그런데 지금 시대는 더욱 확장된 의미에서 중도정치(中道政治)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 정치 지형에서 중도층의 비중과 지지기반을 확장해 가면서 대한민국의 대전환의 길을 열어가는 중도정치가 요구된다.
여기서 말하는 중도정치는 극단주의와 기득권 중심의 낡은 정치 질서를 넘어 새로운 차원 변화를 도모하는 전환의 정치다. 중도정치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중간이나 중립의 모호한 위치가 아니라 새로운 방향성, 벡터를 달리하는 정치다. 이 대목에서 이재명 후보가 강조한 이념과 진영을 넘어선 ‘창조적 실용주의’가 눈에 들어온다.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다뤄온 ‘중도’ 논의는 주로 진보와 보수를 잇는 기존의 벡터 선상에 있었다. 몇 년 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을 극우 세력과 결별하고 보수를 혁신하고자 내놓은 ‘중도 보수’ 노선이 그러하며, 이재명 대표가 표방한 민주당의 ‘중도 보수’ 노선 또한 국민의힘을 극우의 길로 몰고 중도층을 차지하려는 정략적 선택이라면, 이 역시 기존의 진보-보수 벡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중도정치는 양비론에 대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고, 중도를 표방한 정치가 오히려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자리 잡기가 어렵다.
기득권 청산, 공화국, 대전환, 지속가능성, 미래
하지만 지금까지의 진보-보수 벡터에 기반한 정치는 총체적 지속가능성 위기 상황에서 무능력과 무책임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 속에서 중도층의 스윙보터, 민주주의의 균형추, 갈등 통합 같은 역할의 차원을 넘어서 전환의 길을 여는 중도정치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은 기존의 정치 인식과 지형을 구성하는 벡터 자체를 달리할 때 나온다. 전환을 위해서는 중도층의 정치적 위상과 가치의 중심 자리가 바뀌어야 한다. 중도정치의 가치를 담은 키워드로 ‘기득권 청산’, ‘공화국’, ‘대전환’, ‘지속가능성’, ‘미래’ 등을 들 수 있다.
전환은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이 낡고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자각과 함께 이것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을 때 일어난다. 가장 효과적인 전환은 전환의 계기와 동력이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일어날 때다. 이 점에서 중도정치는 기존의 진보와 보수 정치의 내부적 혁신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중도정치는 정치 생태계를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기득권의 틀을 넘어서 선거법과 정당법 개정을 이끌어내고, 적색, 청색, 녹색, 보라 등 다채로운(color-full) 정치가 풍성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때, 극단주의의 정치세력화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대 정신과 대한민국 대전환의 길
지금 대한민국은 헌정질서 회복, 국민통합, 국민주권 실현, 경제 살리기와 양극화 해결, 재난 예방과 대응력 강화 등 중요한 해결 과제들을 앞에 두고 있다. 집단사고의 함정에서 벗어나 집단적 지혜의 발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조기 대선 국면에서 다양한 공약들이 대선 후보자의 입을 통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대선 후보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로 유력한 위치에 있는 이재명 후보는 향후 5년을 국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시기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의 레벨업(level-up)과 국가 대전환, 진짜 대한민국 만들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비전 속에 시대정신이 번뜩인다.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을 활용한 질적 성장, ‘잘사니즘’, ‘K-이니셔티브’ 등은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한 수단적이고 전략적인 말들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시대정신은 헌정질서의 회복과 국가 정상화를 위한 정권교체나 권력 이동을 넘어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전환의 차원을 여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광장과 거리에 모였던 시민들의 열망과 목소리가 대통령 선거와 정권교체로 소모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지난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을 통해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증적인 처방을 넘어서 국가와 사회의 체질 자체를 바꿔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그러할 때다. 노동, 농업, 교육, 의료, 인구, 생태 등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이해관계의 틀에 묶여서 우물쭈물할 시간적 여유가 우리에게 별로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내기까지 충격과 부담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 믿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함께 가야 할 목표와 방향, 전략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권위주의적 개발국가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신자유주의적 경쟁국가 모델이 혼재된 상태에서 합의된 국가 발전 모델이 부재한 상황이다. 추격국가를 대체할 선도국가로의 방향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함께 이뤄내야 할 목표와 방향이 명확하지 않으면 정치는 맹목적 권력 투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김상봉은 『영성 없는 진보』라는 책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공화국 만들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 제7공화국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되살려 구체화하고 현실화시켜 나가는 전환의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 사회 대전환과 제7공화국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열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말고 살려 나가야 한다. 그래서 대선 후 충실한 사회적 논의 과정을 통해 제7공화국에 대한 내용을 구체화하고 새로운 헌법에 담아내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타개하고 미래를 열어갈 정치 지도자의 책무다.
대한민국 대전환,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사회적 논의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레벨업을 위한 주권자 국민의 인식과 역량 또한 레벨업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대선 이후 이어질 지방선거, 총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인식과 판단의 질적인 변화로 이어져서, 그동안 지역주의에 안주하고 극단주의에 편승하는 기득권 정치인들의 전면적 물갈이로 나타나야 한다.
이처럼 전환을 위한 정치적 구심력이 단단하게 만들어질 때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지지 세력 결집을 위한 ‘심판론’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게 되고, 그동안 한국 정치를 주도해 온 낡은 이념적 틀에 기반한 기득권 정치, 선동 정치도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