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는 더 이상 원전에 볼모 잡혀선 안 된다
원전 가동 중지 시켜도 경제에 문제 없다
위험 예방 위해 태양광 전환 가속화해야
새 정부는 '안전'뿐 아니라 '안심' 확보해야
‘텅…’ ‘텅…’
이 소리는 겨울철이 되어 보일러를 뜨겁게 달구면 들려오는 금속성의 커다란 소리다. 차갑게 식은 금속이 오랫동안 응축되어 있다가 뜨거운 열기가 들어오니 갑자기 팽창하면서 터지는 것이다. 응축되어 있던 힘, 그걸 '응력'이라고 한다.
지금 일본이 두려워하는 난카이 트루프도 비슷한 원리가 작용한다. 에너지가 점진적으로 축적되다가 임계점에 달하면 갑작스럽게 방출되는 패턴이다. 도쿄 앞바다에서 규슈까지 이르는 난카이 해구는 백년 주기로 찾아오는 초대형 지진이 언제라도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조용한 시기가 길수록 크게 요동친다.
우리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큰 지진의 여파로 한반도 가까이에서도 연쇄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남해안 바닷가에 즐비한 고리, 신고리, 월성, 한울 모든 원전이 예상치 못한 위험에 놓일 수 있다. 어디에건 작은 사고라도 나서 방사능이 누출된다면 우리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주요 산업체와 경제 활동이 몰려있는 동남해안인 것이다.
3년 전 중국 광동성의 타이산원전에 방사능 누출이 발생하자마자 비상이 걸렸던 일을 생각해보라. 그 지역의 인구와 산업에 치명적인 재해가 될 뻔했다. 게다가 공공연히 ‘안전을 무시하라’고 외친 윤석열 정권이다. 그 마음 졸였던 3년이 지나고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선다. 먼저 할 일이 있다.
원전 위험, 물 샐 틈 없이 점검하고 정비해야
무엇보다 원전 위험을 물 샐 틈 없이 예방하는 세밀한 체크와 정비다. 지금 팔이 안으로 굽는 식으로 위험을 예방하는 것은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안전을 확보하려면 교차감시가 필수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이 하듯이 독립적 기술자 그룹이나 다른 주권기관의 감시 절차가 요긴하다. ‘중이 제머리 못 깎는 법’이다. 그러려면 웬만한 원전은 가동 중단하고 정밀 점검해야 한다.
이때가 문제다. 점검해야 할 원전들을 상당수 가동 중단해도 전력 공급에 문제가 없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일본이 내놓은 바 있다. 2011년 후쿠시마사고 직후 당시 52개 원전을 모두 3년간 올스톱시키고 안전 점검을 했지만 실제로는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었다. 값이 비싸기는 했지만 가스발전으로 보완했기 때문이다. 경제에 타격도 주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원전의 가동 중단으로 인한 일본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까 10년 전에도 상당수 가동을 중단했어도 실제로는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태양광을 보완하는 배터리 기술이 그 사이 일취월장했고 가스발전소가 남아돈다.
원전은 이미 값이 훨씬 비싸졌다. 균등화발전원가(LCOE, 발전 설비의 수명 주기 동안 모든 비용을 고려하여 1kWh 전기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평균 비용))는 태양광의 3배쯤 된다. 태양광이 기저전력이 되면서 원전은 전력계통 운영에 불리해졌다. 원전은 늘려봤자 가동도 못하는 미운 오리가 된 것이다. 원전업계가 기대를 걸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는 미국에서조차 외면받는다. 아직 연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핵폐기물도 양산한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는 여전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내버려두면 최근 알박기 작태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윤석열 정권이 막을 내렸는데도 좀비 같은 법안이 상정된 것이다. ‘원자력산업 지원특별법안’ 및 ‘원전수출 지원활성화법안’과 같은 ‘원전 알박기 법안’이다. 검증도 끝나지 않은 SMR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규제 완화까지 내세웠다. 하지만 원전 수출은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재정리스크의 뇌관이었다. 알박기 법안들은 그 실패를 입법으로 봉인하려는 작태였다.
혹자는 최근 세계시장에서 연구용원자로 건설에 한국이 강점이 있으니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이라는 산업의 영역이 아니라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드는 과학의 영역에 가깝다. 핵폐기물도 1/1000 수준이다. 원전은 전기생산을 빙자하여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공장이나 다름없는 것으로서 본질이 다르다.
기후 대책은 태양광으로
한편, 아스팔트의 촛불 열기가 뜨겁던 작년 여름, 헌법재판소는 또 하나의 중대한 판결을 내렸었다. ‘기후소송’에 대한 판결이다. ‘탄소중립계획법에 2031-2050년의 계획이 없는 것'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2026년 2월말까지 개정하라"고 명시한 것이다. 기후위기 대처는 에너지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청사진을 요구한 것이다.
기후대책은 RE100수출경제를 감안해서라도 태양광을 중심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AI전력수요를 핑계로 원전을 언급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미국을 보자.
미 에너지부(DOE)는 2030년까지 AI 등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원전 대신 태양광을 주력에너지로 선택했다. 그 이유는 새 원전 건설에는 10~15년에 비용도 350억 달러(약 50조 원, 조지아주 보글 원전)나 소요되는데다 주민 반발과 핵폐기물 문제 때문에 추진이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태양광은 신속한 설치가 가능하고 1MWh 당 생산비용 30~40달러로 원자력(약 160달러) 대비 1/4수준인데다, 지붕 태양광으로 전역에 확대할 수 있고 텍사스·캘리포니아 등 일조량 풍부 지역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제주도도 눈부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4월 14일 도내 전력사용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일시적 RE100을 전국 최초로 달성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4시간을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원으로만 생산·공급한 것이다. 또 도내 소비량을 초과한 잉여전력은 해저연계선을 통해 육지로 송전했다. 제주와 육지부를 잇는 해저연계선(HVDC)은 시간당 최대 180MW의 역송이 가능한 양방향 송전 기능을 갖춰 재생에너지 공급과잉문제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놀라운 이야기다. 제주도가 된다면 남한 모두 안 될 이유가 없다. 배터리장치만 충분하면 되는 것이고 V2G기술로 전기자동차를 배터리로 삼으면 된다. 시간 문제다. 새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
또 다른 희소식도 들린다. “2023년 신안군 사옥도에 사는 주민들은 태양광발전으로 1가구당 1692만원을 배당금으로 받았다.”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가만히 앉아서 소득이 생기다니. 이 한 문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1) 최근의 추세를 말하는 것이고 2) 어촌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3) 태양광이라는 깨끗한 에너지로 4) 적지 않은 금액의 돈이라는 것. 이렇듯 기본소득에까지 연계되는 충분히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나아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2031년 이후도 만들어 가는 것. 위험하고 모자라는 원전에 언제까지나 볼모 잡혀 끌려갈 이유가 없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마침 기득권의 에너지패권을 옹호하던 내란정권이 막을 내린 이 시점, 그리고 새 대통령 집무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가 곧바로 이행할 수 있는 정책과 지침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야 한다.
새 정부는 안전뿐 아니라 안심까지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핵지뢰들을 머리에 이고 사는 주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