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의 귀환, 정치의 괴멸

[창간기획 : 윤석열 정부를 말한다 ] 정치 분야


인사 참사, 협치 파탄, 책임 회피…비(非)정치의 일상화

'시행령 통치'와 검찰·감사원 의존, 야권 몰아치기 주력

국정 운영 마스터플랜 없고 분야별 정책 브랜드 안 보여

지지층 이탈 고착화, '대통령 리스크' 지속시 與도 동요

2022-11-15     김호경 에디터

편집자 주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 국정 운영을 맡은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창간 기획으로 [윤석열 정부를 말한다] 기사를 연재합니다. 에디터들과 외부 필진이 정치, 경제, 노동, 환경, 교육, 법조, 복지, 원전·국가안전망, 국제, 외교안보 등 10개 분야에 걸쳐 현 정부를 분석합니다. 15일 정치, 경제 분야를 시작으로 매일 두 꼭지씩 선보일 예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로 향하며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 환송 인사들과 인사하고 있다. 2022.11.11 연합뉴스

검사 옷 벗고 대선에 뛰어든 지 몇 달 만에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경험이 전무했고 정치에도 문외한에 가까웠다. 그가 국정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 뒤 지난 6개월간 정치 영역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치의 실종을 넘어 괴멸이라고 할 만하다. 역대 정권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야당은 물론 국민과 언론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비(非)정치를 일상화한 것이다. 이는 크게 인사(人事) 참사와 협치 파탄, 무책임 정치라는 구체적 실정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의 인사는 우선 무대 밖으로 오래전에 퇴장한 줄 알았던 지난 정권의 '올드보이'들을 부활시키는 데 주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의 주역이던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입안하고 한일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밀실 협상으로 사퇴했으며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담긴 과거 논문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엠비(MB) 시즌2의 일원인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태극기 집회에 누구보다 앞장서며 극우적 발언을 일삼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이명박 정부에서 고교 서열화와 일반고 황폐화를 주도했다고 비판받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 등 과거로의 퇴행을 작심한 듯한 인사가 계속됐다. 이는 전반적인 수구보수적 국정 기조와 맥을 같이 한다.

권력기관 요직에 검찰 출신 심복들을 배치하는 '검찰공화국' 만들기와, 공사 구분 없이 '친한 사람'들을 중용하는 정실 인사 사례는 일일이 꼽기가 힘들 정도로 많다.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윤 대통령에 대해 "40년을 한결같은 친구"라고 표현할 정도로 '지인 찬스'를 대표한 인물이었는데, 자녀 입시 및 병역 의혹과 복지 분야 전문성 등을 둘러싼 숱한 논란으로 결국 낙마하면서 인사 참사의 신호탄을 올린 상징으로 남게 됐다.

능력주의를 내걸었지만 이후에도 충암고 4년 후배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내각과 대통령실을 꾸리는 '수첩 인사'가 줄을 이었다. 윤 대통령 지지율 추락의 첫 번째 원인으로 인사 실패가 단골로 꼽히는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은 마이동풍의 자세를 유지했다. 여론이 아무리 들끓어도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고 거꾸로 호통치는 대목에서 '인사는 내 마음대로'라는 인식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이주호 신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하고 있다. 2022.11.7 연합뉴스

이런 사고방식은 야권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직후부터 여야 5당 원내대표와 오찬 회동을 열고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구성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이후에도 정례적인 개최를 야당에 지속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11월 여야정 협의체 첫 모임에 참석했을 때 반가움을 표시하며 "협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회의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태도는 대조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야정 협의체 가동 등 '민생경제 위기 돌파를 위한 직접 대화'를 거듭 제안했지만 사실상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피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전대미문의 외교 참사' 책임을 물어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을 때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임건의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부에 정치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한 헌법적 수단인데, 이를 대통령이 거부한 것은 헌정 사상 윤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였다.

만약 윤 대통령이 해임건의를 대승적으로 수용해 외교 참사 논란을 일단락 지었다면 정치적 돌파구를 만들고 여론도 상당 부분 우호적으로 돌아설 수 있었지만 윤 대통령은 강공 일변도를 택했다. 그는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때도 야당과 국회의 협력을 이끌어 낼 만한 성의 있는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으며 '협치'라는 표현은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국회 이 XX들" 파문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도 끝내 거부했다.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야권에 손을 내밀며 국정 쇄신을 꾀해야 할 때 윤 대통령은 대부분 반대로 갔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는 과정, 특유의 거친 화법이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통해 표출된 여러 설화들, 코바나컨텐츠 출신을 포함한 대통령실 사적 채용 문제, 불투명한 수의계약, 그리고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 등에서 그랬다. 야권으로서는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여소야대 현실을 효과적으로 헤쳐 나갈 동력도, 복안도 없는 처지에서 윤 대통령은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만 했고, 그러다 보니 입법 대신 '시행령 통치'라는 기형적 편법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호언하는 등 협치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는 속내만 노골적으로 드러내 야권을 더욱 자극했다. 대화와 타협이 정치의 본질이지만 윤 대통령은 탈(脫)정치의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의 빈자리는 정치 공학과 검찰 수사로 채워졌다.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갖가지 명목의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압수수색, 소환조사, 영장청구라는 검찰의 주무기가 총동원됐다. 검찰 주연, 감사원 조연의 야권 몰아치기가 가속화할수록 정국은 얼어붙고 국민 통합도 물 건너가는 건 필연적이다.

심지어 여당 내 각종 분란의 배후에도 윤 대통령이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당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던 윤 대통령이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텔레그램 메시지를 주고받은 장면이 시사하듯 이준석 전 당대표를 축출하는 과정에도 윤심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했다.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골목에 군중 안전을 위한 표지판 도입을 촉구하며 이제석 광고연구소 관계자들이 설치한 안전 표지판 뒤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이제석 광고연구소는 이번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인파가 몰리는 협소 지역을 대상으로 군중 안전 관련 표지판의 개발과 도입을 각 지자체, 국토교통부 등에 공문을 통해 요구할 계획이라 밝혔다. 2022.11.10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무엇보다 대한민국호(號)을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항해 지도와 나침반을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국민들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하고 있다. "자유" 타령 외에는 국정 운영의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이 없고, 소수 대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부자 감세'와 각종 은밀한 민영화 시도를 빼면 경제와 외교, 안보 등 분야별 브랜드라고 할 만한 정책도 안 보인다는 것이다.

급기야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 157명이 압사하고 197명이 부상하는 미증유의 대참사까지 벌어졌다. 일어나선 안 될 최악의 인재(人災)이자 행정 참사로 유족들은 물론 온 국민이 충격과 트라우마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이 보인 책임 회피와 적반하장은 시민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한탄마저 자아냈다.

국정 지지율 30% 안팎을 헤어 나오지 못하는 데도 정치에 초연한 듯한 윤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당장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해 윤 대통령을 선택했던 중도층이나 소위 '이대남'들이 대거 이탈한 상태에서 산토끼는 물론 집토끼들까지 심상치 않은 기류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총선을 1년 앞둔 내년 4월까지도 '대통령 리스크'가 계속되면 여당 내부도 크게 동요할 수밖에 없고 공직사회까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국정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정권의 표류는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가장 큰 피해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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