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난' 와중에도…공공기관 인사 1/3 '알박기'
신임 100여명 중 31명이 윤 정권 관련 인물
지난해 4·15 총선 이후 기관장 절반 교체
정권 바뀔 때마다 공공 기관 인사 갈등
법 개정해 대통령·공공기관장 임기 맞춰야
국민의힘은 지난 2022년 3월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를 비난하는 자료를 발표했다. 자체 조사를 통해 파악한 내용이라며 52개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이사, 감사 등 59명을 알박기 지목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감사원를 통해 이들 기관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도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 악습이 그대로 반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의 절반 가까이가 작년 4·15 총선 이후 선임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새로 공공기관에 부임한 인사도 34명에 달했다.
윤 정부 임명한 공공기관장 47.3% 작년 총선 이후 부임
기업분석업체인 리더스인덱스는 8일 이런 내용의 공공기관 인사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공공기관 331곳의 기관장 304명과 상임감사 96명 등 총 400명의 임기를 분석한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의 47.3%가 지난해 4·15 총선 이후 최근 1년 동안 선임됐으며 이 중 약 31.5%는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이라는 게 요지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12·3 내란 사태로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에 보은성·알박기 인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5일 ‘윤석열 정권 몰염치 알박기 인사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자료와도 일치한다.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파악한 12.3 불법 계엄 이후 임명했거나 공모 중인 알박기 인사는 20여 개 부처·기관에 걸쳐 100명이 넘는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자격도, 전문성도 검증 안 된 깜깜이 인사들이 윤석열 대통령실, 국민의힘 등의 명함 하나로 공공기관장 자리에 졸속으로 꽂히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리더스인덱스 역시 “윤석열 정부에서도 상당수 공공기관장이 공석이던 자리에 채워졌고 일부는 전임자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들어갔다”며 “공공기관 인사에서 알박기와 보은성 인사 관행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장기간 비워두다가 정권 말기에 보은성·알박기 인사
리더스인덱스는 보은성·알박기 인사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최근 3년간 공공기관장과 상임감사의 임명과 재임 현황을 △윤석열 정부 출범 전(2022년 5월 10일 이전) △출범 이후 총선 전(2022년 5월~2024년 4월 14일) △총선 이후(2024년 4월 16일~ 현재)로 구분해 분석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새롭게 임명된 공공기관 인사는 총 344명인데 이 중 149명(43.3%)이 4·15 총선 이후 부임했다. 기관장이 124명으로 대다수였고 상임감사는 25명이었다.
총선 이후 인사 시기를 월별로 보면 기관장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지난해 11월 가장 많은 20명(16.1%)이 임명됐다. 같은 해 9월(14명), 8월(12명), 7월(10명)에 주로 인사가 단행됐다. 계엄 사태 이후 사회 혼란이 컸던 올해 2월과 3월에도 각각 11명과 10명이 새로 임명됐다. 상임감사도 지난해 11월에 8명으로 가장 많았고 올해 1월 4명, 2월 1명이 선임됐다.
4·15 총선 이후 임명된 기관장 124명 중 104명(83.9%)이 모두 공백을 채우는 형태로 부임했다. 리더스인덱스는 “이는 공공기관장 자리가 선거 공신에게 보은성으로 제공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자리가 비면 적임자를 즉각 선임하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은해야 할 인사를 물색해 채운다는 것이다. 보은성 인사를 위해 기관장 자리를 비워둔 공공기관이 윤석열 파면 직전까지도 23곳에 달했다.
공공기관장·상임감사 37%가 윤 정부 인사
총선 이후 선임된 기관장의 출신 배경을 살펴보면 관료가 47명(37.9%)으로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고 학계 33명(26.6%)과 정계 15명(12.1%)이 뒤를 이었다. 반면 공기업 출신은 13명(10.5%), 해당 기관 출신은 4명(3.2%)에 불과했다. 이는 내부 승진보다 외부 낙하산 인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상임감사 인사에서는 이런 특정 분야 편중 경향이 더 짙었다. 25명 중 12명(48%)이 관료 출신이고 6명(24%)이 정계 출신이었다. 이에 비해 공기업 출신은 단 한 명에 불과했으며 해당 기관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윤석열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인사 비중은 37%에 육박했다. 공공기관장과 상임감사 149명 중 55명(36.9%)이 윤석열 정부와 관련 있는 인물인 것으로 파악됐다. 기관장은 39명(31.5%), 상임감사는 15명(64%)이 여기에 해당했다. 대통령실을 포함해 윤석열 정부 직속 부서에서 근무한 인사도 10명이 넘었다. 대통령비서실 출신인 정용석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사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전임자 임기 만료 전인 지난해 6월 14일 자로 재단에 부임했다. 작년 7월 15일 선임된 차순오 한국수출입은행 상임감사도 대통령비서실 출신이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윤석열 정부에서 국무총리비서실 정무실장과 대통령비서실 정무1비서관을 역임했다.
무역안보관리원의 서정민 원장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강경성 사장 등도 대통령실에서 낙하산으로 임명된 인사에 속한다. 그랜드코리아레저 윤두현 사장은 대통령비서실에서 홍보수석비서관을 역임했는데 그는 계엄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2일 부임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이창수 원장은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실무위원 출신으로 작년 12월 11일 공석 상태인 이 곳에 들어갔다. 한국환경공단 임상준 이사장은 대통령실 국정과제비서관과 국무조정실 기획총괄정책관을 지냈으며 전임자 임기 종료 직후인 올해 1월 말 임명됐다. 한국사학진흥재단 이하운 이사장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자녀가 동양대 표창장 위조 비리 의혹으로 수사받을 당시 동양대 총장 자리에 있었다.
민주당 “공공기관운영법 개정해 알박기 인사 차단”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임명된 알박기 인사 중에도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2월 11일 이창수 원장을 신규 선임했는데 그는 국민의힘 대변인 출신이다. 한국남부발전은 국민의힘 장제원 전 의원의 보좌진 출신 인사를 상임감사위원 후보로 올렸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알박기 인사 현황 자료를 발표하며 이런 관행이 반복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내용으로 공공기관운영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현행법에는 공공기관장 임기는 3년, 이사·감사의 임기는 2년으로 정해져 있어 5년인 대통령 임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권 말기만 되면 공공기관장 임명을 놓고 여당과 야당이 신경전을 벌인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정 철학이 다른 전 정부 기관장들이 잔여 임기를 채우다 보니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 초기인 2022년 6월에는 국민의힘이 똑같은 취지로 법 개정을 추진했다. 정권 교체기 때마다 반복되는 보은성·알박기 인사 관행을 끊어내려면 공공기관운영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