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이대로는 안 된다 ①
대통령의 거부권은 애초 허용해선 안 될 구시대 유물
국회와 다수결 지배 무력화는 민주주의 원칙 위배
하물며 선출되지 않은 권한대행에겐 더더욱 안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를 넘어 주주에게 확대하는 상법(회사법)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동안 재계가 입을 모아 반대해왔기 때문에 분명하게 재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권한대행도 그 점이 마음에 걸렸는지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에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자는 취지이지 법안내용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고 토를 달았다. 그런데 한 대행의 이런 변명은 국민을 아무것도 모르는 개돼지로 취급하는 국민농락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
상법개정안에 대한 거부권행사, 재벌을 위한 부당거래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에 규정해서 ‘상장법인’ 이사에만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권한대행의 거부사유는 재벌그룹의 ‘비상장법인’ 이사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부과하자는 뜻이다. 상장법인에 대해선 주식시장과 소수주주, 사외이사와 외부감사, 증권거래소와 금융감독원 등 지배주주와 최고경영진의 불법편법과 부당비리 행태를 나름대로 감시하는 장치가 적지 않다. 반면 비상장법인에 대해선 위와 같은 내외부의 대리인비용 감시교정 장치가 전혀 없다. 민주당이 자본시장법 대신 상법(회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이유는 바로 상장법인에 비해 대리인비용이 훨씬 심각한 비상장법인을 함께 규율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영국 등 회사법의 원조와 선두를 자임하는 국가들은 물론이고 유럽연합 국가들도 이사의 주주전체에 대한 충실의무를 특별법인 자본시장법이 아니라 일반법인 회사법에 규정한다. 그럼에도 최 권한대행은 유독 우리나라에선 자본시장법 개정이 대안이라며 회사법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앞으로도 일감몰아주기와 회사이익편취, 전환사채발행과 불공정합병, 자사주취득 후 합병 등 비상장계열사를 동원한 재벌총수 일가의 온갖 불법편법 사익추구행위를 눈감아주자는 뜻이다. 요컨대,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는 재벌총수를 위한 거부권행사일 뿐이다.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상법개정안 거부권행사의 성격에 대한 판단과 별론으로, 탄핵소추로 말미암아 대통령권한대행을 겸직하게 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직무정지기간 중에 마음대로 거부권을 행사해온 권한대행의 행태가 과연 헌법이론과 헌법정책에 비춰볼 때 온당한지를 묻고 싶다. 지난 12.14. 국회의 탄핵소추 이후 100일 남짓한 기간 중 권한대행의 국회통과법안 거부권행사는 이번이 무려 열 번째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의 고건 권한대행 시절에도 두 차례 거부권이 행사된 전례가 있는지라 타이밍을 놓친 감이 없지 않지만 과연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행사가 헌법적으로 정당한지, 아니면 위헌적인지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특히 국회를 통과한 내란특검법안과 김건희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이 행사될 때를 전후해서 격렬한 찬반논쟁이 없었던 게 무척 아쉽다.
국회의 대통령탄핵으로 말미암아 총체적 위기상황에 처한 행정부의 대통령권한대행이 어떤 대통령권한을 어디까지 대행할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정해진 게 없다. 헌법과 법률은 완전히 침묵하고 판례와 학설도 아주 미진하다. 나는 뒤에서 살펴보듯이 국회탄핵소추 시 대통령권한대행을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등 대통령의 사람들에게 맡긴 헌법규정이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당장 개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행 헌법에 따라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으로 들어서는 경우에도 그가 대행가능한 대통령의 권한은 정치권력의 뒷받침이 특별히 필요 없거나 정치권력의 판도를 특별히 흔들지 않는 통상적인 위기관리와 현상유지에 그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국회(다수파)가 양해하고 동의한다면 권한대행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통령권한을 행사해도 정치적으로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다수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허수아비 권한대행이 일방적으로 대통령권한을 내세워 폭주하는 오늘날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적절한 헌법해석을 통해서 권한대행이 대행할 수 있는 대통령권한과 속성상 대행할 수 없는 대통령권한을 뚜렷하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의 주제인 탄핵소추로 인한 대통령직무정지기간 중에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마치 본인이 대통령인 것처럼 국회통과법안에 제멋대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도 꼭 필요한 헌법해석 작업의 일부이다.
문제의식과 쟁점의 명확화
대통령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가 헌법상 허용되는가라는 근본 질문은 국회가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시킨 법안을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고 국회로 되돌려 2/3 가중다수결로 재의결을 요구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 헌법상 인정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이유를 권한대행(국무총리)도 갖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 근본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민주헌정질서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분립 및 상호견제 원칙이 과연 대통령의 국회입법 거부권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지, 아니면 대통령의 거부권이 일종의 제왕적 비상대권으로서 과거 군주정의 잔재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후술하듯이 나는 대통령의 거부권이 후자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탄핵심판기간 중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행사의 위헌 여부는 위의 일반론 외에 다음 네 개의 세부 쟁점을 더 거쳐야 제대로 답변할 수 있다. 첫째, 현행헌법은 대통령의 일시궐위상태가 대통령의 질병이나 부상으로 말미암은 게 아니고 국회의 대통령탄핵소추로 말미암은 경우에도 대통령이 발탁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게 권한대행을 맡기는바, 현행헌법의 입장이 과연 타당한지, 둘째, 권한대행이 다름 아닌 국무총리나 부총리 등 탄핵소추당한 대통령의 최고위 수족인 경우에도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셋째, 대통령권한대행기간이 사실상 5,6개월을 넘지 않는데도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까지 굳이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 넷째,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 외에는 여소야대 국회를 적절하게 견제할 다른 수단이 없는지가 그것이다.
첫 번째 세부쟁점은 대통령의 일시 궐위가 대통령의 발병, 암살피습, 단순사고로 인한 부상 등 대통령의 귀책사유가 없이 발생한 게 아니고 대통령의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를 이유로 국회가 재적 2/3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소추를 의결한 데서 발생했다면 헌법이 양자를 구별해서 대응해야 맞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식의 발로다. 두 번째 쟁점사항은 대통령의 신임에 의해 간접적으로 누려오던 민주적 정당성과 정치권력을 국회의 대통령탄핵소추로 말미암아 대통령과 동시에 상실한 내각의 제2인자, 3인자가 무슨 염치와 자격으로 대통령권한대행입네 뽐내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의 발로다.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는 당연히 권한대행기간 중에만 가능한데 탄핵소추로 인한 권한대행기간(탄핵심판기간)은 길어야 서너 달이고 탄핵이 인용될 경우 조기대선 관리를 위한 최장 2개월의 권한대행기간을 합쳐도 특단의 사정이 없는 이상 5,6개월을 넘지 않는다. 권한대행기간이 이렇듯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를 인정하지 않아도 헌정질서의 유지와 복원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게 아니냐고 묻는 것이 세 번째 쟁점사항의 문제의식이다. 끝으로 네 번째 쟁점사항은 여소야대 탄핵국회의 입법권남용/ 입법폭주 가능성을 거부권 외에는 마땅히 통제할 수단이 없는지를 묻는다. 물론 다른 국회통제수단이 많을수록 권한대행에게까지 거부권을 인정할 이유는 약해진다.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금지해야 하는 핵심논거
결론부터 선보이자면 나는 권한대행의 발생원인,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특징, 거부권행사의 가능기간, 거부권 외의 국회통제수단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독자적 정치권력과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한 권한대행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에게는 거부권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거부권행사 배후에서 작동하는 표심기반 정치권력과 견제균형의 헌법원칙이 대통령이 탄핵소추당한 비상상황에서는 권한대행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의 배후에서 작동될 수 없기 때문이다. 허수아비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는 헌법의 이름으로 거부해야 마땅하다.
만약에 지금처럼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행사를 인정하면 탄핵당한 대통령이 본인의 권한대행 내각을 통해서 변함없이 통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되면 국회탄핵소추의 효과가 반감되고 대통령탄핵정국이 교란된다. 우리 국민은 이 사실을 한덕수, 최상목 권한대행에게서 똑똑히 경험했다. 내란특검법과 김건희특검법에 대한 최상목 권한대행의 거부권행사 소식에 공분하다가 다시 한덕수 권한대행의 재벌총수를 위한 상법개정안 거부권행사 소식을 접하고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이다.
대통령거부권은 제왕적 의회무시특권을 제도화한 구시대 유물이다
대통령에게 국회통과법안 거부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의회의 상호견제 필요성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국회가 과반수의결에 의해 입법권을 행사하면 입법집행권을 가진 대통령은 법집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국회입법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때에도 국회가 다시 2/3 가중다수결에 의해 재의결권을 갖기 때문에 대통령과 의회라는 양대 대의권력 사이에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거부권 내지 재의요구권은 입법과정에서 위헌성이나 부당성을 이유로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반대의사를 표출한 법안에 대해서만 행사된다는 점에서 국회통과법안의 위헌부당성을 교정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필요하다는 주장이 동반된다.
현행헌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른 국회의 재의결과정에 재적 과반수 출석과 출석 2/3 찬성을 요구하지만 현실의 정치세계에서는 여야의 총력전으로 말미암아 재적의원 전원출석과 재적 2/3 찬성이 요구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회재의결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는 개헌안 의결정족수와 다르지 않아서 현실정치세계에서 국회재의결은 그만큼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일부 여당의원의 독자행동으로 재의결이 되면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귀결되는 일대 정치사변이 일어난 것으로 회자될 정도다. 이런 얘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란 것이 그만큼 국회입법권과 다수결지배를 무력화하는 비상대권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의 국회입법 거부특권은 국회견제를 넘어 국회무시를 제도화한 구시대의 잔재라고 해야 맞다. 미국헌법에서 선을 보여 전 세계가 받아들였지만 당시 세계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공화국이 아니라 군주국이었기 때문에 미국헌법의 대통령 거부권을 군주의 의회입법 거부권과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헌법은 제정 당시 위헌법률심사제도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대통령 거부권이 의회의 입법권남용을 통제할 유일한 수단으로 여긴 측면도 있다. 위헌법률심사로 의회를 통제하고 국민발안권이나 국민거부권을 신설해서 의회를 통제하는 오늘날의 선진민주주의 상황과는 아주 다르다.
대통령거부권도 특별히 인정할 이유가 강하지 않다
미국헌법의 영향을 받아 예외 없이 국민직선 대통령에게 법률안 거부권을 인정하는 대통령제 국가의 헌법은 물론이고 내각책임제 국가의 헌법도 간선대통령이나 명목상 입헌군주에게 의회입법 거부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간선대통령이나 세습입헌군주는 거부권행사에 사실상 요구되는 독자적인 정치권력과 직접적인 국민신임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각책임제 국가에서는 제왕적 거부권이 실질적으로 사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민주헌정질서와 기본권보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여론이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이 거부권을 가져야만 민주적 헌정질서와 대의권력의 상호견제가 제대로 작동해서 기본권보장에 만전을 기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물며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로 탄핵소추를 당한 좀비 대통령의 최고위 수족들한테까지 탄핵심판기간 중에 거부권을 허용할 이유는 없다.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의 다수결로 통과된 법률안은 누구라도 일단 존중하는 것이 1인1표 민주주의와 잠정적 다수파지배의 기본전제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이러한 대전제를 깨는 과거의 절대군주들에게 인정된 비상대권 내지 특권인데 민주헌정국가의 대통령에게도 이와 같은 제왕적 거부권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세 가지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첫째, 만약 국회통과 법률안이 위헌적 요소를 갖고 있다면 위헌심판이나 권한쟁의심판 등에 의해 조만간 헌법재판소가 걸러줄 것이다.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헌법재판소(헌법위원회)가 추상적 규범통제권, 즉, 사전위헌심사권을 갖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한마디로, 위헌입법을 걸러내기 위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둘째, 만약 국회통과 법안이 부당한 입법인 경우에도 굳이 제왕적 거부특권을 인정해서 대처할 게 아니다.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다면 부당한 입법은 조만간 국민의 개폐입법 압력과 국회의 개폐입법을 불러오게 돼 있다. 대통령에게 굳이 거부특권을 주지 않아도 정치적인 사후교정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국회입법의 개폐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국민여론이다.
셋째, 대통령에게 국회통과법안 거부권을 줘서 민주국가의 대통령을 임기 있는 제왕으로 만들 게 아니라 일정수의 시민서명을 받아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국민거부권을 인정해서 민주국가의 주권자를 주권자답게 예우해야 바람직하다. 물론 국민거부권을 도입하려면 개헌이 필수적이다. 참고로 스위스연방과 칸톤은 물론이고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여러 주는 오래 전부터 이미 의회통과 법률에 대한 국민거부권을 도입해서 아무 문제없이 운용하고 있다. 요컨대, 국민직선 대통령의 거부권도 민주헌정에 필수불가결하지 않을진대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는 거부권을 인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