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계엄 막은 영웅에 '민주당만 빼고'?
'네가지 용기' 칼럼에 민주당 의원·보좌관 제외
민주당에 유난히 가혹한 한겨레의 민주당 배제?
조중동처럼 검찰 받아쓰기로 민주당 비판하고
기계적 중립으로 민주당 - 국힘당을 동급 대우
'정파성 벗어난 중립' 강박이 외려 정파성 강화
민주당 비판이 한겨레 '진보성' 과시 방편인가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4년 차인 2020년 2월 경향신문에 게재됐던 칼럼 ‘민주당만 빼고’는 논란을 일으켰다. 칼럼에서 임미리 교수는 민주당을 향해 “촛불정권을 자임하면서도 정권의 이해에만 골몰했다”고 맹비난한 뒤 “두 달 뒤 열릴 총선에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주장을 했다. 경향신문 지면을 빌린 사실상 민주당 낙선운동이었다.
민주당이 발끈해 임 교수와 경향신문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하면서 이 칼럼은 다시 언론·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번졌다. 진중권·김경율·박권일 등 민주당에 적대적인 ‘입 진보’들이 일제히 민주당을 비난하고 나섰다. 나중에 언론중재위는 이 칼럼 게재에 대해 선거법 위반 결론을 내렸다. 검찰과 헌법재판소도 같은 판단이었다. 그해 총선에서 민주당은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 보이콧’ 제안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뒀다.
이 칼럼이 논란을 일으킨 것은 임 교수의 선동적 주장뿐 아니라 그것이 조중동이 아닌 경향신문에 게재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향신문이 과거 민주당을 비판하는 기사·칼럼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민주당 비판을 넘어 선거에서 ‘민주당만’ 배제하자는 선동적 주장을 그대로 게재했다는 것 때문에 여러 가지 논란을 낳았다. 여러 논란 중에 하나는 “진보언론은 왜 민주당에게 ‘더’ 가혹한가”였다. 이 논란에서 스스로 ‘진보언론의 맏형’이라고 여기는 한겨레도 자유로울 리 없었다.
최근 한겨레 기자가 3월 21일자로 쓴 ‘계엄을 견디게 해 준 네가지 용기’ 제하의 칼럼(김채운 기자)도 같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한겨레 기자는 이 칼럼에서 지난 12.3 비상계엄 해제 이후 ‘세상을 바꾸고 있는 용기’로 네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계엄 당시 국회에 모여 쿠데타를 막아낸 시민의 용기, 둘째는 윤석열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국힘당 의원 12명의 용기, 셋째는 쿠데타 내용을 폭로한 군인의 용기, 넷째는 그동안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용기였다. 그러면서 “광장에 모인 탄핵찬성·탄핵반대 시민 모두를 끌어안을 용기를 지닌 이가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칼럼을 읽은 독자들은 의아스러웠을 것이다. 비상계엄을 막은 ‘네가지 용기’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왜 ‘민주당의 용기’는 포함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날 밤 국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군인들을 막아내고 비상계엄 해제 의결에 앞장서고 윤석열 탄핵을 주도한 것은 분명히 민주당 아니었나? 그런데 한겨레 칼럼에 민주당 얘기는 쏙 빠져있다. 오히려 탄핵에 찬성한 국힘당 의원 12명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한겨레는 왜 계엄해제와 윤석열 탄핵에 가장 앞장선 제1야당 민주당 의원들과 군인들을 막아낸 민주당 보좌관들의 용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다지 큰 용기도, 칭찬받을 만한 용기도 아니었던 것인가?
칼럼을 쓴 기자나 칼럼을 게재하기로 결정한 데스크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의도적으로 민주당을 뺀 것이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5년여 전 경향신문에 실린 ‘민주당만 빼고’ 칼럼처럼, 민주당‘만’은 반드시 빼고 가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과문한 탓에 다른 이유를 떠올리기가 어렵다.
한겨레가 ‘민주당만 빼고’처럼 민주당을 배제하거나 민주당에만 더 가혹하게 보도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난해 총선 당시 한겨레는 다른 언론과 다를 바 없이 ‘비명횡사’ 프레임 기사를 수시로 쏟아냈다. ‘비민주적인 친명 공천’으로 인해 민주당이 선거에서 참패할 것이라며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국힘당 공천이 민주당보다 더 비민주적이었고 더 혼란스러웠지만, 한겨레의 지면에는 민주당을 비난하는 기사가 훨씬 많았다. 한겨레의 비판과 경고와는 달리 총선 결과는 민주당 압승이었다.
한겨레는 민주당 후보들에게도 가혹했다. 서울 강북을에서 조수진 후보를 낙마시킨 ‘성범죄 2차 가해 변론’ 보도가 대표적 사례다. 여러 언론이 이 기사를 보도했지만 한겨레는 다른 언론에 비해 더 적극적이었다. 선거가 끝난 뒤 이 기사는 사실을 잘못 알고 쓴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의 언론이 정정보도를 게재하고 사과도 했는데 한겨레는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가장 늦게 정정보도와 사과문을 냈다. 선거 때 민주당을 가혹하게 공격하는 것은 한겨레나 조중동이 별 차이가 없다.
이번 ‘네가지 용기’ 칼럼처럼 반(反)민주당 논조를 확연히 느끼게 하는 기괴한 한겨레 보도가 또 있다. 대선을 앞둔 2022년 2월17일자 ‘유레카/신천지라는 유령’(이세영 기자)이라는 칼럼에서는 민주당을 비판하기 위해 신천지를 옹호하는 논리까지 등장한다. 사이비 종교로 알려진 신천지는 대선 때마다 국힘당 쪽 후보를 조직적으로 지원했는데,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신천지 지원설의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한겨레 기자는 “(민주당이) 윤 후보에게 우호적인 보수 개신교계의 표심을 흔들려는 목적이 다분해 보인다”며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쪽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자는 또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신천지 이슈화가 주류 개신교의 특정 종파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에 편승해 경쟁 후보의 평판에 흠집을 내려는 ‘혐오의 동원’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천지의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진실을 밝히라는 이재명 후보의 주장을 민주당의 ‘혐오 동원’으로 비난한 것이다. 이 기자는 “교세의 보존과 확장을 위한 그들의 시도 자체를 부정적 프레임에 가둬서는 곤란하다”며 신천지를 두둔하기까지 했다.
한겨레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민주당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정치인들, 민주당 정부의 정책에는 언제나 보수·수구 정권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혹독하게 비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중동보다 한겨레의 비판 기사가 더 견디기 어려웠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한겨레는 이명박 정권과 정치검찰의 노무현 대통령 표적 수사가 진행되자 검찰 수사의 정치적 의도는 외면하고 엄격한 도덕성 잣대만을 갖고 노무현을 몰아붙였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 윤미향 민주당 의원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주류 언론들처럼 한겨레도 당연히 민주당을 비판할 수 있고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다. 민주당의 정치노선이나 정책이 잘못될 수도 있고 한겨레의 진보성과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한겨레의 민주당 비판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민주당이 잘못된 길을 간다면 한겨레 같은 ‘비판언론’(권력과 유착된 조중동 같은 언론이 아닌)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더욱 한겨레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겨레가 왜곡되고,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조중동의 민주당 비판 프레임과 수법을 따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한명숙, 조국, 윤미향 등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검찰수사 받아쓰기 보도가 그 사례였다. 진보언론답지 않은, 게으른, 그리고 조중동이 악의적으로 써먹는 ‘받아쓰기 보도’를 그대로 따라해 온 것이다.
‘기계적 중립’ 또는 ‘양비론’도 한겨레가 민주당을 비판하는 잘못된 보도 방식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 기사와 칼럼, 사설을 보다 보면 ‘국힘당이나 민주당이나 똑같다’는 시각이 자주 읽혀진다. 민주당이 이젠 ‘기득권 정당’으로 변해 국힘당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녹아있다. 그러나 두 정당은 정말 똑같은 잣대로 비판받아도 될 만큼 비슷한 정당인가? 해방 이후 80여년 동안 겨우 15년(3번)을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과, 무려 60년 이상 집권하면서 누려온 국힘당 권력의 크기와 궤적은 같은 것인가?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아직도 한국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거악(巨惡)’ 국힘당을 민주당과 같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판하는 것이 과연 공정이고 중립인지 묻고 싶다. 비판할 때에는 선후와 경중을 따져가며 해야 한다. 한겨레가 민주당과 국힘당을 비판하면서 종종 적용하는 ‘기계적 중립’은 중립을 위장한 편향일 경우가 많다. 기계적 중립은 ‘기만적 중립’에 불과하다.
한겨레 보도의 더 큰 문제는 때로 ‘기계적 중립’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힘당보다 민주당에 더 엄격한 기준을 갖고 큰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민주당은 거악과 싸워온 정당이기 때문에 더 깨끗해야 하고 더 잘 해야 한다’는 게 한겨레의 기준인 듯싶다. 그래서 열 대만 맞아도 될 민주당은 백 대 맞을 잘못을 저지른 국힘당보다 더 자주, 더 큰 회초리로 얻어맞아왔다.
민주당과 국힘당을 같은 링 위에 올려놓고 때릴 수 없다는 점은 이번 윤석열 내란 사태에서도 명확하게 증명됐다. 민주당이 내란을 막아낸 정당이라면, 국힘당은 내란 동조·옹호 정당이다. 그런데도 주류 언론들은 오히려 이재명 대표를 흔들어 민주당을 공격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내란범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인가? 반면 국힘당 관련 보도는 비판보다 홍보성 기사가 훨씬 더 많다. 한겨레가 조중동처럼 내란정당 국힘당을 옹호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도 않다. ‘네가지 용기’ 칼럼은 이런 한겨레의 속마음이 여실히 드러난 글이다.
민주당을 향한 진보언론의 ‘더' 엄격한 잣대는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나 심지어 적대감으로까지 발전한 것 같다. 특히 민주당을 비판할수록 ‘더 진보적’이고, 비판하지 않으면 ‘민주당 기관지’로 전락한다는 강박이 자리잡고 있다. 한겨레는 민주당을 세게 비판할수록 ‘한겨레다운’ 진보성이 과시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보언론에게는 민주당을 옹호하면 정파성이나 진영논리에 빠져 언론의 중립성을 잃게 된다는 우려가 있다. 그래서 민주당과는 거리를 두거나 더 많이 비판해야 정파적 언론, 진영주의 언론이라는 욕을 먹지 않는다는 강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진보언론이 정파성·진영논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정파적인 언론으로 보이는 함정에 빠져들고 만다. 지금 한겨레를 ‘정파적 언론’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최경영 전 KBS 기자가 한겨레의 ‘네가지 용기’ 칼럼에 대해 SNS에 이렇게 썼다. “민주당 의원들의 용기, 민주당 보좌관들의 용기, 국회사무처 직원들의 용기는 콕 집어서 단 하나라도 집어넣으면 내가 민주당 칭찬해주는 것 같다는 안팎의 시선을 받을 테니 그런 욕은 절대 먹지 않겠다는 기성 언론계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칼럼이다.” 한겨레의 ‘일단 민주당은 빼고’ 강박을 조롱한 글이다.
한겨레 ‘네가지 용기’ 칼럼은 평소 한겨레의 ‘민주당 배제’ ‘민주당 거리두기’ 강박이 잘 드러난 사례다. 한겨레가 민주당 배제나 거리두기로 자신의 진보성을 과시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지만, 이번 칼럼은 그저 경향신문이 5년 전에 게재한 ‘민주당만 빼고’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조중동의 악의적인 민주당 비난보다도 더 졸렬하다는 조롱을 샀을 뿐이다. 과거 한겨레의 진보성은 민주주의와 민중을 억압하는 ‘거악’과 맞서는 것, ‘거악’으로부터 피해당한 약자를 보듬는 것이었다. 요즘 다시, 한겨레 독자로서 궁금하다. 한겨레의 진보성은 어디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