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보다 감면액 더 많은 기업 5년 새 3배…이래도 감세?
2019년 2.8만 개→2023년 8.4만 개
대기업도 886개에서 1322개로 껑충
“법인세 공제 더 늘려봐야 효과 없어”
그런데도 국민의힘·민주당은 감세 경쟁
지금도 조세부담률 낮아…감세 자제해야
조세 제도에는 ‘최저한세’라는 게 있다. 기업의 특수 사정이나 정부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세액을 공제하거나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그런데 과도하게 감면해 주다 보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조세 형평성이 깨지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최소한 납부해야 하는 세금을 정해놓는다. 최저한세다. 여기에는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최저한세율은 당연히 법인세율보다 낮다. 과세표준 100억 원 이하는 10%, 100억 원 초과 1000억 원 이하는 12%, 1000억 원 이상은 17%다. 중소기업은 7%의 세율을 적용한다.
최저한세 적용기업 2019년 이후 5년간 3배 증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28일 최저한세와 관련해 흥미로운 자료를 내놨다.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에 최저한세 적용기업이 3배가량 늘어났다는 내용이다. 같은 기간 최저한세를 적용받은 대기업도 886개에서 1322개로 크게 늘었다. 납부할 세액보다 공제와 감면액이 더 많은 기업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가 감세 정책을 계속 확대했던 만큼 최저한세 적용기업은 2024년에도 늘어났을 개연성이 높다.
차 의원에 따르면 최저한세 적용기업은 지난 2019년 2만 8163개에서 2023년 8만 3883개로 늘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전인 2021년(5만 1563개)과 2023년을 비교하면 약 1.62배 증가했다. 지난 2013년만 해도 최저한세 적용기업은 1만 1418개에 불과했다. 10년간 8배 증가한 것이다. 최저한세 적용기업이 급격히 늘어난 배경에는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세액 공제와 세금 감면이 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도 기업 세금을 깎아주는 경쟁에 뛰어들었다. 국내생산촉진 세제도 그중 하나다. 국내에서 최종 생산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기업의 법인세를 공제한다는 게 골자다. 일본 등 주요국은 자국 내 생산과 일자리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유사한 제도를 이미 시행 중이라는 게 민주당 설명이다.
하지만 최저한세 적용기업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추가 세액 공제는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차규근 의원은 “대규모 세수 부족이 반복되고 있는데 공제감면을 추가로 도입한다는 것 자체도 부적절하지만, 최저한세 적용기업이 급증하고 있어 그 효과조차 불투명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선거(조기 대선)를 앞둔 생색내기식 정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결국 기업에 대한 과도한 감세는 세수 부족을 초래할뿐만 아니라 정책 효과도 반감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시민단체·야 4당, 국민의힘·민주당 감세 경쟁 규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뿐 아니라 민주당까지 감세 경쟁에 나서자 시민단체들은 지난 27일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4개 야당과 함께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부자 감세로 막대한 세수 결손과 재정 악화를 초래했는데도 거대양당이 자산가와 재벌기업을 위한 감세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질타한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가장 강력하게 규탄한 부자 감세 정책은 상속세 완화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추려 하고 있고, 민주당은 공제액 한도를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상속세 일괄 공제액을 현행 5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배우자 공제액을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리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오른 서울 일부 지역 주민은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중산층 감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일반 국민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인식이다. 지금도 각종 공제를 적용하면 실제 상속세는 많지 않다. 실효세율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더욱이 거액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세수 감소도 고려해야 한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민주당 방안대로 공제액을 확대하면 상속세 납부 대상 아파트 비중은 6%대에서 1%대로 줄어든다. 그만큼 세수가 덜 걷히는 것이다.
한국 조세부담률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아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조세부담률이 높지 않은 편이다. 차규근 의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조세부담률은 2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5.2%)보다 낮다. 차 의원은 무분별한 감세를 막기 위해 국회에 조세개혁특위 설치를 제안했다. 저출생 고령화 등으로 재정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지속 가능한 조세 정책을 펼치자는 취지다.
진보든 보수든 진영을 떠나 정치인이 증세를 주장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 감세를 이야기하면 호응을 얻는다. 그만큼 감세의 유혹은 크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수 확보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채 감세를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다. 감세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다. 윤석열 정부 2년 7개월의 부자 감세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돌아보는 것만으로 그 참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