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 3년 '격세지감'…유엔 결의안 놓고 미·러 '한편'
'러시아 침공' 규탄 EU 주도 결의안, 미국이 제동
미국, 별도의 결의안에서 "러-우크라 분쟁" 표현
사전에 러 측에 초안 내용 알려줘…러 "좋은 행동"
미, 러 편들기 G7 성명서도 확인…"우크라 분쟁"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을 통해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 복원에 합의했던 미국이 유엔에서도 러시아 편을 들고 나섰다.
유엔총회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주년을 맞이해 24일 우크라와 유럽연합(EU) 제안해 만든,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고 우크라의 주권·영토 보존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표결할 예정이었지만, 오랜 '동맹'이었던 미국이 되려 제동을 걸었다.
'러 침공' 규탄 EU 결의안, 미국 제동
우크라이나 전쟁 3년에 '격세지감'
로이터,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금까지 50여 개국이 지지한 우크라·EU의 러시아 규탄 결의안 초안에 동참하는 대신에 별도의 미국 결의안을 제출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표현이다. 우크라-EU는 도발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자 지난 6차례의 결의안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침공"(aggression)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미국은 그냥 "러시아-우크라 분쟁"(Russia-Ukraine conflict)이라고 표현했다.
2022년 2월 24일 전쟁 발발 직후부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EU와 함께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에 앞장서고 우크라에 막대한 재정·군사 지원을 했던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선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일이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우크라의 참여 없이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전쟁을 신속히 끝내려는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 사이의 균열을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러 규탄' 유엔총회 결의안 6차례
2022년 10월 땐 143개국이 찬성
앞서 전쟁 발발 직후 첫 유엔총회 결의안은 "러시아의 침공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in the strongest terms the aggression by the Russian Federation) 비판했다. 여기엔 193개 회원국 중 141개국이 찬성했다. 2022년 10월엔 또한 우크라 4개 주에 대한 러시아의 "불법 병합 시도"를 규탄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때는 143개국으로 기록을 경신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우크라-EU 안에는 "올해에 전쟁을 종식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추가적 확전 위험을 줄이고 포괄적이고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배가하는 긴급한 필요성을 강조한다"라고 돼 있다. 또한 러시아를 상대로 국제적으로 승인된 우크라 영토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적대행위 중지를 요구했던 이전의 유엔 결의안들을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 '러 침공' 아닌 "러-우 분쟁"
사전에 러 측에 초안 내용 알려줘
하지만, 세 단락으로 된 미국 안은 △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기간에 인명 손실을 애도한다 △ "유엔의 주된 목적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고 분쟁 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 "그 분쟁의 신속한 종식을 간절히 호소하고"(implores a swift end to the conflict), 나아가 우크라와 러시아 간 지속적 평화를 촉구한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당연히 러시아 측은 반색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대사는 "좋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내친김에 러시아는 미국 측에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미국 안의 세 번째 단락 중 "그 분쟁의 신속한 종식을 호소하고" 앞에 "그 근본 원인들의 해결을 포함해"(including by addressing its root causes)란 대목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익명의 러시아 외교관은 이 요청이 수용되면, 미국 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미국 측이 자국의 초안을 사전에 러시아 측에 알려준 것으로 알려져 격세지감이었다. 이렇듯 상황이 심상치 않자 유엔 주재 EU 대사들 21일 늦게 회동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유엔총회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 없지만, 우크라 전쟁에 대한 지구촌의 시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국제정치적 무게를 지니고 있다.
미, 러 편들기 G7 성명서도 확인
'러시아 침공' 대신 '우크라 분쟁'
미국의 러시아 편들기는 20일 주요 7개국(G7)의 우크라 전쟁 3주년 성명 채택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미국은 전임 바이든 때의 "러시아 침공"(Russian aggression)이란 표현에 반대하고, 대신 "우크라이나 분쟁"(Ukraine conflict)으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18일의 미-러 리야드 외무 회담 관련 미 국무부 발표에는 '우크라이나 분쟁'이란 표현이 두 차례 들어갔다.
G7 정상은 작년 2주년 공동 성명에서 "러시아에 즉각 이 침략 전쟁을 멈추고 국제적으로 승인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조건 없이 완전하게 군을 철수하라고 촉구한다"고 주장하는 등 '러시아 침공'이나 그와 유사한 표현을 5차례 넣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G7은 전쟁 1, 2주년 모두 젤렌스키가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러시아 침공 규탄과 우크라 지지 성명을 냈지만, 아직 24일 3주년 기념 화상 회의에 젤렌스키를 초청할지에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