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중산층 감세론’ 지금은 아니다

상속세 이어 근로소득세 완화 움직임

감세 혜택은 부·소득 많은 납세자에 집중

세금 깎아주면 그 자체가 ‘부자 감세’

지금 급한 건 증세 통한 세수 기반 확충

2025-02-21     장박원 에디터

정치권에서 때아닌 감세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과 조기 대통령 선거 가능성이 커지면서 인기 영합적인 감세 방안을 놓고 연일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더불어민주당이 '중산층 감세'를 명분으로 추진하는 상속세와 근로소득세 완화를 둘러싼 공방이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언석 위원장, 박수영 여당 간사, 정태호 야당 간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5.2.18. 연합뉴스

민주당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 추진”

민주당 임광현 의원은 21일 근로소득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과세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을 거듭 피력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월급쟁이는 봉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명목임금은 올랐으나 물가가 급등하며 실질임금은 오히려 줄어 근로소득세를 내는 월급쟁이에 대해서는 사실상 증세를 해 온 것”이라는 게 요지다.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다음날인 19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 “말 그대로 월급쟁이들이 세금의 ‘봉’ 같이 꼬박꼬박 원천징수가 되고 있지 않나. 기업들에 대해서는 경제 상황에 따라 막대한 세금 공제 혜택을 주고 국가적 지원까지 하는 상황”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근로소득세 개편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세청 출신인 임 의원의 주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는 지난 2023년 1인당 평균 근로소득 증가율은 2.8%지만 같은 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로 올랐다는 사실과 근로소득 세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국세 수입 중 비중이 18.1%로, 법인세 비중 18.6%와 맞먹는 점을 개편해야 할 이유로 꼽았다. 그는 “대기업과 초부자 감세에 따른 세수 펑크를 월급쟁이 유리 지갑으로 메꾸는 형국인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의원이 제시한 개편안의 큰 틀은 2009년부터 16년째 150만 원으로 유지된 기본공제 금액을 180만 원으로 올리고 물가 변화를 근로소득세에 연동하는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전체 세수가 줄 수 있어도 월급쟁이에 대해서만 증세하는 부조리는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2개국이 물가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도 꼽았다. 민주당의 근로소득세 개편은 초부자와 대기업은 감세해 주면서 중산층 또는 서민 계층인 월급쟁이만 증세해서 되겠냐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이 23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국세청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부산지방국세청, 부산본부세관, 부산ㆍ경남지방조달청, 동남지방통계청, 한국은행 부산ㆍ경남ㆍ울산본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2024.10.23. 연합뉴스

“상속세 일괄 공제·배우자 공제도 18억으로 상향”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상속세 개편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표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상속세 공제 현실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일부 중산층에서는 집 한 채 상속세 부담을 우려한다”며 “상승한 주택가격과 변한 상황에 맞춰 상속세를 현실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고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현행 상속세 공제 제도는 1996년 이후 28년간 변화가 없었다. 상속세 부담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팔아야만 하는 불합리한 상황 등을 보완하기 위해 상속세법의 합리적 개정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상속세 일괄공제액과 배우자 상속공제 최저한도 금액을 높이는 상속세와 증여세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임광현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개정안은 상속세 일괄공제액을 현행 5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배우자 상속공제 최저 한도금액을 현행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속세 공제액을 10억 원에서 18억 원으로 상향하자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한 발 더 나아가 현행 50%인 최고세율을 낮추고 대주주가 상속받으면 20%를 할증하는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당은 ‘초부자 감세’라며 선을 그었다.

 

여야 상속세 개편안 비교. 연합뉴스

중산층 감세도 혜택은 고소득층에 집중

민주당이 띄운 ‘중산층 감세’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밀어붙였던 ‘부자 감세’와는 지향점이나 목적이 다르다. 수혜 대상이 훨씬 많고 조세 정의나 형평성 차원에서 검토해볼 만한 방안이다. 하지만 감세로 생기는 역효과는 피할 수 없다. 한국을 포함해 누진제를 원칙으로 하는 국가에서 ‘감세’는 그 자체가 ‘부자 감세’인 측면이 강하다. 세금 공제 한도를 높이거나 세율을 낮출수록 부와 소득 수준이 높은 납세자가 더 큰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근로소득세에 물가연동제를 적용하면 고소득자의 세금 감면액이 더 많다. 물가연동제는 물가가 오른 만큼 과표표준 구간을 상향하는 것인데 세율이 높은 구간일수록 감세 수혜가 커질 수밖에 없다. 누진제에 따라 세금을 많이 낼수록 감면도 많이 받게 되는 원리다. 세율이 낮은 구간에 속한 서민들은 면세 대상이 많다. 수입이 많지 않은 중산층도 기존 공제 제도만으로도 세금을 적게 내거나 면제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산층 감세’가 결국 ‘부자 감세’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 이유다.

무분별한 감세로 조세지출 10년 만에 최대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18억 원이 넘는 곳은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뿐이다. 대다수 국민의 자산은 부동산을 포함해도 18억 원이 넘지 않는다. 결국 민주당의 상속세 개정안은 집값이 많이 오른 일부 사람들에게 수혜가 한정된다. 진정한 의미의 중산층 감세라고 할 수 없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민주당의 상속세 개편 방향에 대해 “상속세 공제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중산층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란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18억 원짜리 집을 가진 사람을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로 나라 곳간이 거덜 날 판이다. 나라 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81조 원이 넘었다. 자산가들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세금을 깎아주고 법인세 인하와 대기업 세금 공제를 확대한 탓이다. 특히 정부가 세금을 면제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조세지출은 최근 10년간 최대 수준으로 증가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4년 세법 개정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올해 전체 정부지출(재정과 조세지출의 합) 예산 중 조세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3%로 집계됐다. 대기업의 연구개발과 투자세액공제 등이 늘면서 조세지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 것이다.

 

국세 수입 현황. 연합뉴스

경기 침체 극복에 쓸 재정 확충이 더 급해

국내 정치적 불안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 등 국내외 대형 악재들로 경기 침체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정부 재정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다. 경기 부양에 쓸 재원을 마련하려면 감세가 아닌 증세가 시급하다는 의미다. 증세는 세수 기반을 넓혀야 가능하다. 불합리한 면세나 공제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초부자에 대한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

부자 감세든 중산층 감세든 지금은 감세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증세를 말하기 부담스럽다면 차라리 세금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극심한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확장 재정이 절실한 비상시기라 감세 약속은 지키기 어렵다. 그런데도 감세를 밀어붙인다면 세수 감소에 따른 역풍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지난 2년 6개월의 윤석열 정부에서 그 지옥도를 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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