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상식', 우리 내면의 역사정신을 일깨우다!
태극(太極)의 위엄과 다가올 시간의 임무
촛불문화제와 도올
도올 김용옥 선생이 2024년 12월 20일부터 2025년 1월 11일, 스무날 밤낮으로 한 달음에 써 내려간 최근 저작 <상식>(부제: 우리는 이러했다)을 나 또한 단숨에 읽었다. 그건 윤석열의 난데없는 비상계엄 이후 이를 극복해나가는 한국사회의 정신과 마음, 그 깊은 지층 속에 용암처럼 뜨겁게 솟구쳐 오르는 역사의식의 힘을 꿰뚫어 드러내는 웅혼한 육성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에는 그럴 만한 사유가 있었다. 지난 2월 7일 금요일 저녁, 안국역 인근 송현녹지공원에서 매일 열리는 촛불문화제가 마무리되는 시간에 도올 선생이 현장에 모습을 보였다. 그를 발견한 시민들이 마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 듯 순식간에 몰렸다. 그 또한 시민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이며 반갑게 얼싸안기도 하면서 사진도 찍고 기뻐했다.
도올 선생이 촛불행동의 집회에 출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아주 유심히 현장을 지켜보고 눈에 띄지 않게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 그를 알아보고 집회에서 한번 말씀 해주십사 하고 청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는 선뜻 그 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을 알았다.
“김민웅 목사님은 나보고 거리에 나와서 수십만, 수백만 군중을 향해 멋있는 강연을 하시라고, 어떻게 해서든지 20분 정도의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씀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거리스피치형 인간은 아니다. 실제로 나가보면 감동을 주는 것은 나같은 사람의 고담준론이 아니라, 순결한 청춘의 함성이다.”
그는 보통의 시민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의식에 경의를 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시간은 이들의 것이니 이들에게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여긴 셈이다.
그리고는 이어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나는 내가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았다. 나의 개념적 사유를 민중에게 직접 전달할 방도가 없을까? 있다! 쓰자! 쓰자!”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상식>이다.
2월 7일 저녁, 그날 나를 본 도올 선생이 함께 사진을 찍고 이내 손에 쥐어 준 책이 또한 <상식>이다. 사회를 보는 김지선에게도 책을 건네주었다. 그는 특히 김지선을 무척 아꼈다. “민중과 소통하는 천재적인 소통의 달인”이라는 격찬을 쏟아내었다. 영상을 통해 촛불행동의 집회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감사한 일이다.
웅혼한 기세, 우리의 본질
다시 책으로 들어가보자.
책은 어릴 때 겪었던, 온몸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왕거머리로 형상화되는 괴물들과의 꿈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 괴이한 존재들과의 격투가 바로 비상계엄 이후의 우리가 치르고 있는 싸움이다. 이어 우리가 겪은 내란의 본질에 대한 해석, 이걸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안에 담겨 있는 정신의 역사적 구조를 그는 하나하나 파헤쳐나간다.
그건 살풀이춤 속에 나타나는 “극도의 동(動)의 긴장을 포섭하는 고요함의 극치”, 말하자면 우주적 정신의 깊이로부터 단군시대의 위상과 신라, 백제의 관음상이 보이는 그 우아한 기품, 석굴암의 찬탄해 마지않을 미학의 정신성, 고인돌의 경이로움과 고려의 팔만대장경, 훈민정음 창제 속에 드러나는 세계관, 동학의 정신적 지향점 등에 대한 종횡무진의 해설이 읽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압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토함산에 올랐어라”로 시작해 “천년의 풍파 담겼어라.” “공중에 흩어진 아침, 그 빛을 기다려 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로 끝나는 송창식의 “토함산”을 마치는 글로 또박또박 새긴 그의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어이없는 자들의 내란 난동의 현실은 부처님 손바닥에서 까불거리다가 제풀에 힘을 잃은 채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된 작은 돌멩이에 불과한 것이 된다.
우리가 저 고대의 시간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정신의 알갱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곤복지간(坤復之間), 위태극(爲太極)”이라는 말에 또렷이 압축된다. 역(易)으로 풀자면 곤(坤)은 음이 지배하는 세상이며, 복(復)은 양의 기운이 치어 오르는 때이다. 바로 이 사이에 우주의 정(靜)과 동(動)이 찰라의 차이로 변화의 힘을 뿜어낸다. 즉, 태극(太極)이다. 이로써 바른 소리(正音)가 태어나 세상을 울리기 시작한다. 깨뜨리고 깨우치는 것이다. 훈민정음에 응축된 세종의 정신세계에 대한 도올의 독특한 해석이 여기에 담겨 있다.
고요하나 움직이며 움직이면서 또한 깊은 울림을 내는 숨, 그것이 도올이 지켜본 토함산(숨을 내쉬는 토(吐), 들이마시고 머금는 함(含))의 석굴암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격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이는 얼마나 웅혼한 기상인가. 이런 위력이 약동하는 때에 “윤석열의 발악이 장기화되면서(#물론 한계가 곧 드러나겠지만) 될수록 이 땅의 노덕술이 남김없이 드러나”고 이들 윤석열과 김건희가 이성의 간교에 얽혀 “그 발악을 통해 이 땅의 모든 흑마술을 걷어내고 이 지구상에서 보기 힘든 합리적이고 정직하고 상식적인 삶의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는 “석열과 건희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못 박는다.
내란수괴로 지목된 윤석열, 그리고 그 수괴의 배후로 상정된 김건희, 여기에 더해 내란잔당세력들의 처단은 이 시대의 임무가 될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상식”이다. 뿌리 뽑고 몰아내고 남김없이 박멸해야 한다. “노덕술”과 그 후예들이 농간을 부리고 지배하는 세상은 산산이 파괴해야 한다. 폭군의 목은 베어야 하며, 흑마술로 이 땅을 주술에 휘둘리게 했던 자들 또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지하 감옥에 가두어야 한다. 그로써 새로운 세상이 태어난다.
태극의 시초이자, 정음의 세상이다. 상식의 문이 열리고 천년의 풍파를 담은 숨결이 우리를 미소 짓게 할 것이다. 혁명은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