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시대에 되돌아 보는 DJ의 문화민주주의
김 대통령의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미래주의’
윤석열의 파면이 목전으로 다가온 것 같지만 내란 관계자들이 여전히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윤석열 파면 이후에도 갈 길은 멀다. 정권교체를 통해 희망과 화합의 사회를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험난한 여정에 문화 분야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문화가 어떤 방향을 향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필자는 근래에 『김대중의 문화정치: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미래주의의 접속』(이하 『김대중의 문화정치』)을 읽고 김대중 대통령이 실천했던 문화민주주의를 곱씹어 보았다. 이 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정치를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미래주의’라는 축을 중심으로 심도 있게 다뤘다. 이에 따라 『김대중의 문화정치』는 검열폐지의 정치와 문화정책의 관계, 한국 영화의 세계화 및 산업전략, 한일 문화교류, 문화산업정책의 형성, 지식기반경제와 문화의 금융화, 새천년의 문화정치와 민주주의를 논의점으로 삼는다.
『김대중의 문화정치』를 이해하는 이정표로서의 두 개의 관계항
이 책은 “김대중이라는 시대적 변곡점을 더 선명히 드러내고, ‘새천년’에 투사된 미래사회의 전망이 어떻게 문화의 이미지와 그 사회적 좌표를 새롭게 재구성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미래주의’라는 두 개의 관계항을 이정표로 삼았다.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는 고급문화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에 주목한 ‘문화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의 생산, 보급, 소비 전체에 민주주의 원리를 강화하면서 국가권력의 문화 통제를 거부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럼에도 이 책이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문화민주주의’를 ‘문화-민주주의’로 재설정한 이유는 1980년대 한국에서 ‘문화민주주의’가 국가권력의 독재체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격차를 은폐하는 용도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문화-미래주의’도 특정한 문제의식에 따라 제시된 조어다. 1987년 체제 이후 한국에서는 각종 미래예측서를 통해 미래학이 큰 관심을 받았다. 이런 흐름을 좇았던 노태우 정부는 신설된 문화부를 중심으로 문화산업의 미래를 강조하며 문화를 협애한 차원으로 함몰시켰다. 따라서 『김대중의 문화정치』는 ‘문화-미래주의’를 통해 “‘문화’가 ‘전통’보다 미래와 빈번히 결속되는 인식의 변화를 지칭”하고자 했다.
검열 폐지 정책 추진한 김대중 정부 출범이 문화정책 민주화 기점
한국의 ‘문화-민주주의’가 본래의 가치를 되찾기 위한 핵심 과제 중에는 국가권력의 문화 통제 문제 해결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에 실린 박소현의 「문화정책의 ‘지연된 민주화’와 김대중의 ‘검열 폐지’의 정치」를 특히 주목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노태우 정부 시기에 이뤄진 문화부의 독립이 문화정책의 핵심 축인 검열 폐지를 배제하는 위장된 민주화였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는 한국 문화정책의 민주화가 시작된 기점은 검열 폐지를 일관되게 주장했던 김대중이 1997년에 대선에 출마하며 승리한 시점이라고 본다. 즉, 김대중 정부의 출현은 ‘문화-민주주의’의 변곡점이 된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일반적으로 민주화 이후 한국 문화정책의 흐름이 변하는 기점을 노태우 정부 시기 ‘문화부 독립’(1990)에서 찾는 인식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노태우 정부 시기 문화부 독립은 외견 상 문화정책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당시 문화부의 독립은 오히려 국가 검열 폐지를 좌절시키는 지연된 민주화 조치 중 하나였다. 애초에 노태우는 다른 대선 후보들과 달리 문화·예술 검열기구인 공연윤리위원회(1981~1997)의 폐지에 미온적이었다. 그런 탓에 노태우 정부에서 출범한 문화부의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에는 문화·예술 검열 폐지 논의가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문화부의 ‘영화법’ 정부 입법안은 공연윤리위원회를 통한 검열 체제를 명시하기도 했다. 즉, 노태우 정부의 문화부는 과거 독재정부 시기의 문화예술 검열체계를 철폐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묵살한 반문화, 반민주화 기구였던 것이다.
김대중의 문화정치가 완결짓지 못한 것들
박소현은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이 21세기 문화대국 건설이라는 대목표에 따라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폐지와 자율적 문화·예술 환경 조성, 공보처 폐지와 자율적 방송·언론문화 창달이라는 공약을 내세운 것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 검열 폐지를 문화정책에서 배제한 채 문화부 독립만을 공약하고 실행한 ‘절반의/위장된’ 민주화를 거쳐 10년 만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독재 정치의 틈새마다 터져나온 문화예술계의 민주화 숙원이 분열되지 않은 형태로 국가 문화정책의 언어로 표명된 것이다.”
다만 박소현은 지연되었던 ‘문화정책의 민주화’가 김대중 정부의 검열 폐지 등을 통해 정상 궤도를 타기 시작했지만, IMF 외환위기가 겹친 시기였던 만큼 검열의 철폐가 문화의 산업화, 시장화라는 국면과 이어지기도 했음을 지적한다. 박소현이 마지막에 짚은 측면은 제4장에 실린 최영화의 「문화산업정책의 형성과 문화의 국가기간산업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최영화는 김대중 정부 시기 문화정책이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문화를 국가 기간산업으로 간주한 것임을 주목한다. 그리고 이 같은 기조가 문화산업과 문화예술 간의 상생발전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문제를 낳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당시 김대중 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도구주의’로 비판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성과주의 매몰된 현 정부 문화정책, 자의적 검열도 기승
사실 그가 김대중 정부의 문화정책에서 재고해야 할 점이라고 제시한 사안들은 오늘날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현 정부의 문화정책의 중심이 ‘K-컬쳐의 초격차 산업화’라는 낯 뜨거운 국정과제를 내세우며 국가주의, 경쟁주의, 경제주의,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김대중의 ‘문화정책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검열 폐지가 여전히 한국사회에 내재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김대중 정부 이후로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시하는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권력의 맹목적, 자의적 검열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대중의 문화정치』는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정치가 한국의 미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다각적으로 살필 수 있는 연구서이면서도 오늘날에도 해소하지 못한 ‘문화-민주주의’를 어떻게 ‘문화민주주의’로 정련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