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에 맞서는 저항, 시대와 신분 넘어선 연대
영화 ‘아가씨’와 그림 속 ‘유디트’가 그리는 여성 해방
조용하고 치밀하되 주저하지 않고 단칼에 복수하기
연하늘색과 붉은색, 대조적이지만 같은 결단의 색채
복수의 키워드가 전혀 다른 작품에서 마주하는 정치
개인에서 공동체 연대로, 해방의 새로운 서사 찾아야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는 진행 전반에 고요함이 흐른다. 고요하지만 차갑고 날카로운 긴장감으로, 이후 맞닥뜨리는 반전의 효과를 높힌다. 어둑한 진청색으로 가득한 화면은 등장인물들의 억눌린 감정과 숨겨진 갈등을 시사하고, 조명의 강렬한 대비는 관객을 긴박한 분위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색감은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며, 뒤얽힌 욕망과 복수의 긴장감을 섬세하게 전달한다.
'아가씨'의 중심 인물인 서로 다른 계급의 두 여성은 자신들을 억압하던 남성 권력의 굴레에 함께 맞서며 은밀한 교감을 나눈다. 숙희(김태리)는 백작에게 고용되어 히데코(김민희)의 재산을 뺏으려는 목적으로 그녀의 하녀로 수발을 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숙희와 히데코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는 유대감이 싹튼다. 히데코는 숙희에게 점차 의존하게 되면서도 자기 내면에 숨겨져 있던 욕망을 알게 되고, 숙희 역시 히데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새롭게 깨닫는다. 이렇게 두 여인은 서로를 비추며 서사를 만들어 간다.
두 여인의 유대와 사랑은 조용히 점차 깊어간다. 너그럽고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으며, 격정을 넘어 이해와 지지를 나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순간에 두 여인은 서로를 억압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깨기로 결심한다. 살얼음이 우지직 깨지는 위태로운 순간에도,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결연히 앞으로 나아간다. 고요했던 화면은 긴장이 한층 깊어지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마침내 관객조차 모르게 다져진 반전이 폭발하며, 화면 구석구석에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아가씨’는 행위자들이 품격을 갖춘 복수극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괴괴한 분위기도 이를 보충한다. 사뭇 다르지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3)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떠오른다. 그림은 강렬한 힘과 복수의 의미를 한눈에 보여준다. 단순한 살해 행위가 아니라 이에 이르기까지 내적 고통이 얼마나 깊이 쌓였을 지에 대한 공감의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젠틸레스키는 자신이 겪은 폭행과 억압, 억울한 누명에서 비롯된 상처를 유디트의 칼에 담았다. 작품 속 칼은 억눌렸던 자아의 표출이며, 자존을 되찾으려는 강인한 의지를 상징한다. 그리하여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넘어 침해받은 삶을 극복하고 자신을 찾아 새롭게 태어나는 의식을 보여준다.
영화 '아가씨'에서 히데코와 숙희는 자신들을 억압하는 남성 중심을 상징하는 '홀로페르네스'를 향해 은밀히 칼을 겨눈다. 이 칼날의 폭력은 관객에게 드러나지 않게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실행된다. 즉 이들의 복수는 한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분노를 감춘 채 서서히 이루어진다. 결국 함께 계획한 복수는 절정에 이르러 그들만의 장막 안에서 완벽하게 완성된다.
상반된 색채로 구현된 복수의 미학
영화에서는 연하늘색의 부드럽고 은은한 분위기도 연출되며, 이는 차분함을 전달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이 색감은 억눌린 자아와 내면의 저항을 세밀하게 담아내며, 인물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과 고립된 감정을 비추어준다. 연한 하늘빛은 인물들의 억눌린 심리를 부드럽게 드러내지만, 결단의 순간에 내재한 힘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침묵 속에서 싹트는 저항의 씨앗이며, 영화의 내적 역동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깊고 짙은 붉은색과 어두운 배경이 특징이다. 이는 차분함 속에서도 강렬함을 돋보이도록 하며, 칼날에서 튀는 피와 함께 화면을 지배한다. 어두운 음영은 폭발하는 힘과 분노를 더욱 강조한다. 이 붉은빛은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결단과 복수의 상징으로, 유디트가 자신에게 드리운 무게를 단호히 베어내는 순간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생생하게 담아낸다.
이처럼 영화 ‘아가씨’의 연하늘색과 유디트의 붉은색은 상반되지만, 서로를 비추며 인물들의 결단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한다. 연하늘색은 억눌린 감정을 차분히 드러내며 관객을 긴장 속으로 이끌고, 붉은색은 감정이 한순간 폭발하는 강렬한 외침으로 마감된다. 이렇게 두 작품은 각기 다른 색채를 통해 억압을 돌파하는 여성들의 행위를 그리며, 내면에 잠들어 있던 저항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출한다.
영화와 그림은 서로 다른 시대와 매체, 그리고 신분 구조에서도 유대를 통해 남성 권위와 지배적 질서에 도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영화에서는 내밀한 신뢰를 쌓으며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그림에서는 그 복수가 실현되는 순간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담아낸다. 두 작품은 신분과 시대를 넘어, 지배에 대한 저항과 응징이라는 보편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서사는 폭력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의 부조리를 넘어 정의를 숙고하게 하며, 연대의 중요성을 관객에게 깊이 새기게 한다.
그러나 진정한 해방이 과연 그들만의 힘으로만 가능한지, 혹은 억압의 근본인 남성성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러한 질문을 넘어 진정한 해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의 폭력과 혼란을 심판하는 데에서 나아가,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고 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제기된다. 이제는 억압과 지배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지속 가능한 해방의 길을 열어갈 새로운 정치성을 제안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