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귀환에 '주기도문'을 바치는 언론

영웅의 복귀, '구세주의 강림'인 듯 연일 축포

유죄받은 이들과의 형평성, 국민 손실 따지지 않아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언론의 잃어버린 10년

2025-02-06     이명재 에디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5.2.3 연합뉴스

먹구름이 짙은 한국 경제가 일대경사를 맞이한 듯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언론은 영웅의 귀환인 양 연일 축포를 쏘아대고 있다. 마치 절해고도의 귀양에서 돌아오기라도 한 듯한, 개선장군의 행차라도 되는 듯 그의 앞길에 양탄자를 깔고 있다. 거의 전 언론적으로 혼연일체를 이루는 모습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경영권 불법승계 등의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지난 3일 항소심 판결무죄 이후 언론의 보도는 환영을 넘어 흥분, 기대를 넘어 염원의 수준이다. 과장하자면 삼성을 구하고 나아가 한국 경제를 위기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의 ‘강림’을 영접하는 듯하다. 이재용에 대한 무죄판결문은 언론에 의해 구세주의 이적을 바라는 복음으로, ‘주기도문’이 돼 만방에 퍼지고 있다.

'삼성의 시간'이 온다는 4일자 어느 경제신문의 1면 머릿기사 제목이 이 같은 축제 분위기를 요약해준다. 지난 몇 년간 법적 분쟁에 휘말리며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아왔으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됨으로써 ‘이재용 회장의 경영정상화에 청신호가 켜졌고’ 삼성그룹의 경영 전략과 투자 계획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 족쇄에서 풀린 뒤 첫 공개 일정을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소프트뱅크 회장과 함께한 것을 전격회동으로 소개한 조선일보의 사설은 이 회장의 무죄판결 자체가 마치 '기업의 혁신'인 것처럼 평가한다.

축제의 흥분은 6일자 언론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느 경제신문은 <이재용의 뚝심>이라는 제목으로 “삼성전자가 지난해 업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기업 중 신규 고용을 가장 많이 늘리며 최다 고용 기업 타이틀을 지켰다”면서 이를 “이 회장이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신기술 투자와 인재확보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용과 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의연한 경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듯하다.  

한국일보는 <이재용 무죄 판결문 908쪽 분석>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에 대해 “회계처리 과정과 목적, 동기가 중요하다면서 특정한 결론을 정한 뒤 합리화하는 게 부정회계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법원의 판단을 빌어 검찰이 제시한 근거 자료들을 ‘관계자들의 단편적 인식’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900쪽이 넘는 방대한 판결문, 검찰의 기소 시점으로부터 4년 5개월 만에 나온 2심 판결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은 적잖은 시간과 법률적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면밀한 법률적 검토 이전에 적잖은 이들이 제기하는 상식적인 의문들이 있다. 무엇보다 뇌물을 주고 합병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사건은 유죄 판결이 나서 징역형을 살고 나왔는데, 그렇게 밀어붙인 합병으로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온 모순적인 상황을 제대로 살피려는 언론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기금 본부장 등도 국민연금이 이 사건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은, 납득하기 힘든 상황에 대해 짚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항소심 판결로 이재용 회장 개인은 무죄를 선고받고 경영권 승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지만, 국민들이 입은 큰 피해는 보상받기 힘들게 됐다. 당시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은 수천 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국제투자분쟁(SID, Settlement for International Disputes)에서 승소한 엘리엇과 메이슨에게 한국 정부는 2300억 여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와 정부가 지급해야 할 배상금 모두 결국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돈이 아니냐는 상식적인 물음을 던지는 언론은 거의 없다.   

‘죄인들’을 만들어내고 국민에게 손실을 초래한 원인 제공자가 유죄가 아니라는 결론 앞에 선 국민들의 의문과 당혹감에 대해서는 따져보려는 언론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언론은 마치 전혀 죄가 없는데도 억울하게 고초를 겪은 기업인으로, ‘피해자’로 동정을 보내고 있다.

법정에서 재판부의 유죄 판단에 이르지 못한 사정과 이유들이 있었다. 예컨대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하면서 공장 바닥에 숨긴 회계자료를 확보해 증거로 제출했지만 법원이 “정보 선별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피의자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며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검찰의 부실과 능력 부족을 탓할 수는 있다. 게다가 무죄 판결은 유죄의 입증에 실패한 것일 뿐 이 회장에 대해 전혀 죄가 없다고 본 것이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언론은 그를 완전한 면죄부를 받은, 전적으로 결백한 이로 취급한다. 애초에 수사하고 기소를 벌인 검찰을 규탄하기까지 한다. “절차적 문제 때문에 혐의 입증에 실패한 것은 검찰의 뼈아픈 실수다”는 한겨레의 지적은 검찰의 허점을 적절히 문제 삼고 있지만 다른 언론들은 수사와 기소 자체를 무리하고 부당한 것으로까지 단정한다. 한국일보는 “이 정도면 없는 죄를 만들어 기업인을 못살게 군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할 말이 없다”고 쓰고 있다. 동아일보는 “시대착오적 ‘검찰 지상주의’가 기업의 손발을 묶을 때 그 피해는 기업과 기업인뿐 아니라 국가 경제와 국민 다수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한국 언론에서 보기 힘든 검찰 비판을 이재용 재판에 대해서만큼은 강도 높게 펼친다.

이 같은 언론 보도를 하나하나 상세히 나열할 필요가 없다. 어느 언론사의 대표가 자사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페이스북에 적은 글에 이재용 회장에 대한 변론, 변론 이상의 옹호, 옹호 이상의 이재용을 위한 ‘비분강개’가 드러나 있다. “족쇄 풀린 이재용 회장이 법원을 나오며 기자들에게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쇠사슬에서 풀려난 이 회장의 첫 행보는 샘 올트먼과 만남이었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AI 분야 협력을 논의했습니다. 악랄하게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악랄한 수사와 기소’로 이 회장을 괴롭혔다는 맹렬한 성토다.

이재용 판결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삼성전자가 큰 위기를 겪고 있다는 진단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삼성의 위기의 진짜 원인은 한국 언론에 거의 보이지 않는 것과 동전의 양면이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던 2024년 11월 말 삼성전자 주식이 5만 원대로 내려앉았을 때 “그 원인에 대한 기사가 1000개는 나온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 1000개 중에 이재용 회장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배구조를 다룬 글은 단 하나도 못본 것 같다”고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삼성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 이재용에게 있는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위기의 원인의 주요한 하나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미국, 일본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주가가 크게 올랐지만, 한국은 정반대였다. 그 같은 한국의 특수한 사정의 한 이유가 흔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비유되는 대기업의 지배구조라는 것은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일치하는 진단이지만 한국 언론에서는 오히려 재벌 일가의 승계와 황제경영이 위기 극복의 비결인 것처럼 얘기된다.

법원의 무죄 판결은 이재용 회장 앞에서는 법치주의가 멈춰버리는 현실을 드러낸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성명을 통해 규탄한 것처럼 “법치의 근간이 흔들리고 위협받는 내란 정국에서 재벌 대기업과 총수에 대해 법치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는” 현실이 윤석열 내란 상황의 한편에서 펼쳐지고 있다. 재판부는 "파급 효과가 큰 공소사실을 추측이나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 형사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과 같은 재벌 회장에 대한 사법부의 이같은 판단에 어떤 사정이 작용했는지에 대해 나올 법한 추측이나 시나리오 가정을 제기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사법부에 의한 법치주의의 위협은 이렇게 언론에 의해 승인받고 뒷받침된다. 혹은 그와 반대로의 과정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무죄 판결 다음날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 ‘족쇄에서 풀린 이재용’이라는 말도 다수의 언론들에 의해 마치 표준어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재용의 '법 앞에서의 10년간'이 곧 삼성에 잃어버린 시간이 될 만큼 한국 최고 회사가 허약한 기업인지는 의문이다. 또 그런 기업이 한국 최고가 되는 게 마땅한지 의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회장의 ‘화려한 복귀’에 환호하며 주기도문을 외는 한국 언론은 자신들이 드높인 구세주가 이제 족쇄에서 풀려난 만큼 지금껏 제대로 보여준 적 없었던 경영능력으로 한국 경제에 놀라운 은총을 선물해 줄 것인지를 제대로 지켜보고 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지난 10년간 이재용의 귀환을 일편단심으로 고대해 온 언론 자신이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의 당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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