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일상에서 찾는 완벽의 의미

없을 게 없고, 있을 게 있으면 됐지 뭐!

평범한 일상을 사는 보통사람을 위한 위로

2025-02-06     박철웅 시민기자

산다는 것은 소동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의 채움임을 알 수 있다.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일은 어쩌면 똑같은 일상을 날짜와 날씨만 바꾸어 매일 반복해 적는 일일지도 모른다. 일상이란 인생만큼 복잡하지 않지만, 그 총합은 결코 인생보다 가볍지 않다. 그 일상이 완벽한 날들의 연속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인생이 되니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친절하지 않은 이야기다. 소동이랄 것도 소란도 없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그런 날들의 스케치다. 과거를 알 수 없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반복되는 일상이 이야기의 핵심이자 전부다.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공중 화장실 청소부다. 그의 하루는 어제와 오늘이 다름없는데, 완벽한 날들이라 부를 수 있을까 / 사진=티캐스트

완벽이라는 말의 정의

독신인 히라야마는 새벽 옆집 할머니의 골목 쓸기로 하루를 연다. 주저함 없이 이부자리를 개어 방구석에 밀어 넣고 계단을 내려가 양치를 하고 콧수염을 정돈한다. 청소부 유니폼을 입고 현관문 밖으로 나서기 전 작은 선반에서 차키, 지갑, 열쇠, 동전들을 챙긴다. 문을 열어 하늘을 올려다보곤 씽긋 미소를 보낸다.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작은 승합차에 올라 일터로 출발한다. 그리고 오래되었을 수밖에 없는 카세프 테이프를 튼다. 루 리드의 'Just a Perfect day~'가 퍼지는 새벽길은 정체도 없고 이유 없이 기분 좋다. 완벽한 날 중 하루다.

특별할 것도 없고 어쩌면 보잘것없는 하루가 완벽한 날이라니… 역설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가 이야기하는 완벽한 날은 역설이나 아이러니도, 은유나 직유도 아닌 그야말로 직설의 표현이다. 완벽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는 나름의 몫이겠지만, 쉽게 풀어내자면 '있을 게 있고 없을 게 없는 상태'를 말한다. 무언가 억지로 만들어야 하는 숙제라기보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없어야 하는 시간에 없는 게 완벽이다. 이런 의미에서 완벽은 자연스럽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히라야마의 대사는 극히 절제돼 있다. 유일한 사건인 조카 니코의 가출로 오랜만에 만난 누이에게도 지난날에 대해 말을 아낀다. 가출해 외삼촌을 찾아온 니코에게 사람은 저마다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되도록 겹쳐지지 말아야 한다는 제법 긴 설명에서 역설적으로 그의 말 아낌을 이해하게 된다.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상이 완벽한 날들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영화에서 유일한 소동은 조카 니코가 가출해 찾아 온 일이다. 이 마저도 싱겁게 끝나 버린다. (사진=티캐스트)

사라 벤 브레스낙은 <혼자 사는 즐거움>에서 세상이 만든 완벽이라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고, 자신만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실수는 있는 법이다. 카펫과 벽지에 얼룩이 생기고 곱게 만든 화단에 발자국이 생기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이 무의미하다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운명은 나 혼자 있을 때 만들어지는 시간의 흐름이다. 내 일상의 중요한 순간이 오더라도 알람이 크게 울리지는 않는 일이다. 그게 삶이다.

화장실 홍보 영상이 칸영화제 초대작으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나이 쉰 즘 되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로 나이듦에 대한 관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간의 형벌이자, 생명의 시간을 거의 소진해 가는 것을 느끼는 가혹이다. 텅 빈 철거터를 보고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묻는 백발노인에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을 때. 그림자밟기를 하면서 숨이 차오르는 서로를 볼 때. 젊은 날의 호기를 생각해 오래간만에 삼켜 마신 담배 연기를 주체 못 하고 기침을 뱉을 때. 늙어가는 자신을 마주한다. 이 나이 들어 늙어 가는 자신에게 가장 완벽한 날들이란 어제와 다름없는, 큰 사고도 소동도 없는, 수많은 열쇠를 주렁주렁 달고도 그 쓰임을 잊지 않는 날들이다.

애초 빔 벤더슨 감독에게 들어온 프로젝트는 예술적 영화가 아니었다.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도쿄시는 17개 공중 화장실을 다채롭게 리모델링하여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선보였다. 이 화장실 프로젝트 'The Tokyo Toilet'의 홍보영상 의뢰가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수상까지 한 문학적 영화로 완성되었다. 빔 벤더슨이 존경하는 <도쿄 이야기>의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오마주이자 자신이 추구하는 일상성의 발현이 일종의 우문현답이 되었다.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2021년 도쿄에서 취재진을 만나 일본의 고급 공중화장실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AP 제공

영화 주인공의 대사가 극히 제한적이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애니멀즈, 벨벳 언더그라운드, 니나 시몬, 리 루드, 팻 스미스, 벤 모리슨의 음악들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아울러 각양각색의 화장실의 모습도 꼼꼼히 나온다. 화장실이 주는 의미는 제법 중의적이다. 특히 화장실을 깨끗이 관리하는 사람과 그 화장실을 더럽히는 사용자들 중 누가 더 더러운 사람들일까 하는 물음이 든다. 듬성듬성 여백 가득한 전개에 생각을 더듬고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답을 받는 일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일어난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말이나 글의 한 단어, 한 글자에 큰 의미를 두며 사는 세상이다. 완벽에 대한 강박이 사로잡을 때가 있다. 무언가 이룰 것이 남았다고 생각되는 그런 날들일수록 깊어진다. 그 완벽이라는 판단은 늘 남들이 그어 놓은 기준선에 따라 울고 웃기 마련이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한 지옥길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등을 서로 맞댄 것들이 가득이다. 비통과 기쁨, 평온함과 요란함, 냉정과 열정, 좌절과 성취가 모두 담겨 있다. 스스로의 일상과 삶을 판단하는 데도 특이한 양가의 감정이 들기 마련이다. 자기의 인생은 완전히 망해 버렸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루어 놓은 하찮은 트로피에 우쭐대기도 한다. 일상이란 대부분 고만고만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름나름의 변화가 가득하다.

 

누가 보든 안보든 구석 구석을 닦고 광을 낸다. 히라야마에게 일상은 소중한 시간의 채움이고 그 소중함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사진=티캐스트)

다이애나 애실은 <어떻게 늙을까>에서 삶이란 양 극단에서의 널뛰기가 아닌 부침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커다란 사건이라 느끼는 것들도 지나고 나면 그저 부침이라 생각들 때가 있다. 때가 아님을 이해하면 그날의 기분을 망치지 않고 견디어 낼 수 있다. 영화에서 조카 니코가 바다에 가자고 하지만 히라야마는 “다음에”라고 답한다. 그러는 그에게 니코는 채근하지만 다시 니코에게 말한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행복은 돌려말하면 불운한 일이 부재한 상태를 말한다. 불행한 소란도 불운한 소동도 없는 그런 날들이 역설적으로 행복한 날이 된다. 그러나 이런 평온이 지속되기는 참 힘들다. 외부의 일이 없더라도 내 마음속이 시끌 시끌하니 말이다. 이럴 때면 나의 세계와 내가 어쩔 수 없는 세계를 분리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것이 흐트러짐 없는 일상의 수행이다. 시간에 맞추어 기상하고 취침하며 밥을 먹고 열심히 일하다 독서에 빠지고 밀린 영화를 보는 일. 하찮아 보이지만 일상을 채우는 일이고 인생의 대부분을 쌓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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