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만으로 풀어낸 복수의 복잡과 허무
[리뷰] 영화 '리볼버'…OTT 서비스 개시
개봉 때 미지근한 반응 벗고 재평가 기회
화려한 장면보다 이야기의 쓸모 보여 줘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장가의 모습이 확연히 변화했다. 다중이 집합하기 힘들어진데다 대용량 영상파일 스트리밍과 공유 스토리징 기술의 발전으로 OTT(Over The Top)라는 새로운 매체 소비문화가 확산됐다. OTT는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새로운 사업자를 일컫는다. 이로 인해 극장과 그곳을 일종의 유통망으로 삼았던 영화 제작의 양상에도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극장가의 변화에 대한 적응과 대책 가운데 하나가 영화 콘텐츠의 다중 유통 전략이다. 멀티플렉스 스크린을 이용해 개봉한 뒤, OTT 스트리밍으로 바로 서비스하거나 IPTV나 케이블 방송에 송출하는 방법이다. 순서 전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점유율이 엄청 높은 블록버스터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개봉 영화들이 이 전략을 이용하고 있다.
이 전략에는 반작용도 있지만 순작용도 있다. 극장에 직접 가기 어려운, 즉 스크린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최신 작품들을 너무 늦지 않게 즐길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여러 번 보는 N차 관람을 다양한 환경에서 온디맨드 형식으로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순기능은 여러 요인으로 스크린 극장가에서 저평가 받은 우수작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열린 구조의 복수극, 허무의 미학
오승욱 감독의 영화 <리볼버>도 작년 여름 개봉 당시 평단과 관람객들에게 미지근한 반응을 받았지만, 최근 OTT에 스트리밍 되면서 다른 평가를 기대하고 있다.
영화 <리볼버>의 기본 서사구조는 복수극이다. 전직 경찰 수영(전도연)은 2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를 한다. 범죄조직과의 커넥션이 발각된 윗선을 대신해 혼자 뒤집어 쓰고, 모종의 보상을 조건으로 수감 생활을 견뎠다. 그러나 윗선의 주축이자 내연남이었던 석용(이정재)은 두어 달 전 석연치 않은 죽음을 당하고, 맡겨 두었던 아파트 등기는 낯선 여자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범죄조직 이스턴 프로미스에서 주기로 한 7억 원도 중간에서 앤디(지창욱)가 배달 사고를 내고 탕진해 버렸다.
영화는 수영이 자신의 것을 찾아가는 일종의 단서 찾기식 복수 여정을 그린다. 문제는 이 복수의 여정이 전통적인 하드 보일드의 시원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이 없고 생각보다 밋밋하다는 데에 있다. 여기에서 개봉 당시 호불호가 갈렸다. 수영의 복수를 완성할 열쇠를 쥔 인물이 황정미라는 전직 무당인데, 그 존재의 그림자만 가득한 채 정작 그녀는 이미 죽은 처지라는 설정이 일종의 허무를 부른다. 이 허무라는 것이 사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일 텐데 화끈한 영상과 요란한 스토리텔링에 익숙한 요즘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복수는 궁극적으로 허무한 일이다. 복수는 야생의 정의라는 말이 있듯이 무언가 얻기보다는 그저 제자리로 돌려 지켜내는 일이다. 이런 이유에서 수영의 복수는 연인이었던 석용의 죽음을 규명하는 헛심쓰기를 일찍이 포기했다. 짧은 플래시백으로 석용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사실만 적시했다. 범인이 이스턴 프로미스의 누구인지, 수영과 석용의 애증하는 선배였던 기현(정재영)인지, 아니면 제삼자인지 열어 놓은 채 이야기는 흐른다.
복수라는 것이 잘해야 제로섬이라는 것을 아는지 수영도 이 진실 규명에 매달리지 않는다. 극 중 윤선(임지연)과 수영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윤선이 "좀 복잡해요"라고 말하자, 수영은 "그래. 복잡하네"라고 화답한다. 복잡하지만 허무한 것이 복수라는 이야기다.
서늘한 색감의 화면처럼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요즘 영화, 드라마처럼 친절한 전후사정 설명도, 혹여 놓칠까 걱정되어 삽입하는 회상의 힌트도 없다. 그저 씬마다 둘이나 세 사람을 화면 가득 채우고, 이야기로 정황과 서사,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영화 <존윅>처럼 단계별 과제를 해결해 다음 단계로 가는 일종의 복수 사다리를 만든다. 다만 그 해결의 과정을 대부분 주요 인물 간의 대화로 커버한다. 영화란 모름지기 이야기의 예술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야기의 쓸모를 보여주는 작품
이야기꾼이란 서사를 풍성하게 하고 깊이 이해하게 한다. 기억과 꿈, 드라마와 상징으로 가득한 장치를 동원하여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이야기꾼은 듣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의 본문을 다시 쓰는 것처럼 또 다른 창작활동에 참여하게 해 주어야 한다. 화면에 대한 집착이 증가하면 세상은 피상적인 수동형 사고가 고착되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가짜에 쏠리게 된다. 이에 대항하는 이야기의 쓸모, 문학의 쓸모는 일종의 문화 해독제로 작용한다.
<리볼버>를 연출한 오승욱 감독은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 각본으로 영화계에 강한 인상을 주며 등장했다. 그러나 정작 연출작은 <킬리만자로(2000)> <무뢰한(2015)>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다. 그렇다고 영화 일은 멈춘 적 없이 각색, 제작지원, 시나리오 컨설턴트 등을 수행했다. 끊임없이 이야기에 고민을 쏟은 감독은 전작보다 더 덜어 내고 덜 만드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유혈 낭자한 극단의 아수라 판을 그린 <킬리만자로>나 쫓고 쫓기는 하드 보일드의 긴장이 있는 <무뢰한>보다 좀 더 듬성듬성한 여백이 느껴지는 작품이 <리볼버>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회색지대에 놓인 처지를 강조하기 위해 주변을 선명한 자극으로 두기보다는 오히려 심심한 열린 구조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이야기의 길을 만들어 준다.
<리볼버>의 수영은 경찰의 신분으로 범죄조직의 하수인이었고, 출소 후 배신당하고는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자신이 처한 회색의 운명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복수의 이유다. 일종의 상호 텍스트가 다양하게 발견된다.
<킬리만자로>는 쌍둥이 형제 해식과 해철(박신양)이 닮은 얼굴이지만 경찰과 건달이라는 다른 인생이 만든 회색지대를 그렸다. <무뢰한>에서 언더커버를 하는 재곤(김남길)도 거죽과 다른 회색이다. 작품의 열린 틈으로 감독 전작의 회색지대 인물들이 중첩되어 떠오른다. 수영이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려는 '이스턴 프로미스'라는 이름도 <폭력의 역사(2005)>로 잘 알려진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2007년 작 <이스턴 프라미스>를 떠오르게 한다. <이스턴 프라미스>의 주인공 니콜라이(비고 모텐슨)도 마피아 조직에서 언더커버하는 비밀 요원이라는 점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영화학자 에드 시코브는 저서 '영화학개론'에서 영화는 다른 예술 매체의 특성을 공유한다고 말한다. 소설 문학은 이야기 서사라는 스토리텔링을 뼈대로 하고, 연극은 무대와 관객이라는 주요한 요소의 장치를 두고 있으며, 회화와 사진은 특정 프레임 안에 시각적 표상으로 객체를 묘사한다. 여기서 진화한 영화라는 매체는 독특한 자신만의 특성을 갖게 되는데 이는 카메라의 다양한 움직임(Camera work)에서 기인한다. 이 움직임에 의한 미학적 장치를 동적 프레임(mobile framing)이라고 한다.
이 동적 프레임이 미장센이 되고, 상징과 복선의 장치가 된다. 정작 소비자들은 이러한 시각적 장치를 눈여겨보기는커녕 빨리 감기로 보는 실정이다. 이런 세태는 이야기와 서사를 이해하는 독해능력 저하를 부를 뿐 아니라 만연하는 가짜에 속아 넘어가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에 집중하고 그 암시, 복선과 상징이 오롯이 인물의 대사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작품 <리볼버>의 평점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