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탄압과 악마화가 12.3내란 전조였다
윤 체포에도 합법 의회-반불법 행정부 공존 여전
국민의힘과 윤 지지 대중의 모습은 유사 파시즘
윤 정권 '노사법치주의' '건폭' 등으로 노조 탄압
노조의 우선적 할 일은 의회권력 정통성 강화
조기 대선국면 이용해 노조 강화·제도화 힘써야
12.3 늦은 밤 비상계엄에서 비롯된 혼란이 여전하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드디어 체포되었지만 준비된 담화문에서 보듯 여전히 이념적 내전을 주도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문항의 편향성과 보수 과표집 논란에도 불구하고 내란 수괴를 배출한 국민의힘 지지율이 계엄 이전 상태로 회복됐다는 여론조사 보도에 고무되고 있는 것이다. 탄핵소추는 이루어졌지만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아직 멀었기에 합법적 의회 권력과 내란 잔당이 포진한 반(半)불법적인 행정부 권력이 공존·쟁투하는 이중권력 상태를 한껏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보수를 넘어 극우적 세계관과 망상적 이념에 사로잡힌 윤석열을 ‘대한민국’과 동일시하면서 지지·엄호하는 정당과 대중을 상식적인 차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 벌어진 대선 패배라는 학습효과를 고려하더라도 윤석열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차라리 헌재 파면 결정을 고려해 벚꽃 대선을 준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박근혜가 부패와 권력사유화로 탄핵됐을 정도였는데 윤석열은 이보다 더한 혐의인 내란 수괴이다. 파면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윤석열 지지 집단에게서 보이는 파시즘의 전조
그런데도 왜 지지할까? 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까? ‘자유대한민국, 중국인이 탄핵 찬성 세력의 근원이다, 탄핵 세력은 이재명 등에 기대 자유대한민국을 중국에 헌납하려 한다’는 극우 인종주의적 이념과 반사실적 주장을 국회의원부터 거리의 극우 유튜버와 시위대가 거리낌 없이 주장하고 있고 윤석열은 이 주장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친위쿠데타로 민주주의 제도·기구를 중단·폐지하려는 물리적 시도는 실패했지만 극우 인종주의적 이념과 자칭 한국의 보수라는 정치세력이 일체화되고 있는 경향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양상이 아닌가? 바로 파시즘, 전체주의의 전조 증상이다. 팩스턴(Robert O. Paxton)은 저서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에서 파시즘을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다.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집단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로 정의하였다. 지금 한국의 윤석열을 지지·엄호하는 국민의힘과 대중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유사하지 않은가?
과거 전두환 시기 군부독재를 군사파쇼로 정의하는 운동권 주장이 있기도 했다. 한국에서 파시즘이 있었는지, 지금의 상황을 파시즘의 전조로 볼 수 있는지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2.3 내란으로 파국에 이른 윤석열의 유사 파시즘 구축 시도는 충분히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사법부라는 헌법 기구를 무력으로 기능부전 상태로 만들고, 반(反)윤석열 언론사를 장악하며, 국회를 대신할 입법기구 구성을 고려했다는 점은 최소한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민주적 제도·기구를 한순간에 폐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극렬 지지 대중의 동원을 통해 반민주적·반헌법적 체제를 유지·지속하려 했다는 점도 확인되고 있다. 바로 극우보수 유튜버와 이를 맹신하는 일부 대중이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가장 먼저 한 일도 노동조합 해산
필자가 보기에 윤석열 내란 시도를 통한 유사 파시즘 체제 구축은 집권 초 노조 때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33년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한 직후에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사회 혼란 방지라는 미명 하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조직적 기반이었던 독일 노동조합총연맹을 포함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노동조합을 모두 해산하고 나치당의 하부 조직인 독일 노동전선(Deutsche Arbeitsfront, DAF)으로 재편한 것이었다. 그리고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는 모토가 새겨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 강제노동을 감독하고, 전 유럽에서 유대인을 수용소로 실어 날랐다.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군국주의로 치달은 일본 군부가 한 일 또한 기존 노조 해산이었다. 총력전 수행을 위한 국가총동원 체제를 구축하면서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시기에 확산된 노동조합을 전부 해체하고 전국 수준에서 개별 기업 단위에 이르기까지 하향식으로 조직된 ‘대일본산업보국회(大日本産業報国會)’를 결성해 노동력 관리를 담당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대본영의 태평양전쟁 수행에 필요한 전쟁 물자를 총력적으로 만들어 ‘황은(皇恩)’에 보답하였다. ‘산업보국회’ ‘산보’라는 단어는 현재도 일본에서는 무기력한 어용 노조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어두운 군국주의 시대의 기억을 환기하는 상징이 되어 있다. 독일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 모두 노동조합을 분란을 조장하는 부패집단화, 사회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기득권 조직으로 악마화해 폐지하면서 이를 대신할 대안적 노동조직을 구축하려 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지난 2년 8개월 동안 윤석열 노동정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도 노동조합을 이기적인 존재이자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악마화하는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두 달 후 벌어진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에 ‘노사 법치주의’를 들먹이는 것이 시작이었다. 필자가 과문한지 몰라도 노사 자치주의는 들어봤어도 노사 법치주의는 처음 듣는 단어였다. 한마디로 법대로 하자는 이야기이지만 법꾸라지답게 신조어를 만들어 사내하청 노동자의 파업을 비난했다.
존재 자체가 파시즘의 최대 장애물인 노동조합
이후 2022년 12월, 화물연대본부의 안전운임제 폐지 반대 파업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은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며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업무 개시명령을 발동했다. 2022년 12월 21일에는 “노조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라며 ILO도 반대한 노조 회계 공시를 강제하였다. 2023년 2월에는 또다시 ‘건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건설노조를 ‘폭력배 집단’으로 악마화했다.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노동조합, 특히 민주노총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들도 퍼부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일 년 만에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을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며,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인권이사회가 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을 비판하고 사법적 괴롭힘을 중단할 것을 발표할 정도였다.
왜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노동조합을 악마화하고 폐지하려 할까? 파시즘도 전체주의도 다양한 유형으로 역사 속에 명멸해 왔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전체의 일사분란함’에 기반해 대중의 인민주의적 요구를 일방적으로 관철하려 기존 민주주의 제도를 폭력적으로 폐지한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서부터 국가 수준에 이르기까지 전체주의를 구현하는 데에 가장 주요한 장애물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이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공산당이나 사민주의 계열 정당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미시적으로는 일하는 작업장과 생활공간에서부터 거시적으로는 전국 단위에 이르기까지 조직·미조직된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결사체이다. 그리고 이해 대변은 전체주의적인 상명하달식이 아닌, 작업장·사업장에서부터 시작해 지역, 업종을 거쳐 전국 단위로 집약된다. 이 과정도 때에 따라서는 치열한 논쟁을 거치면서 보통·비밀·평등·직접 선거를 통해 결정한다. 최소한 노동조합 내에서 노동자는 책임과 권리가 주어진 ‘존중받는 노동자’로 존재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전체주의의 조건으로 언급한 ‘잉여 존재’를 체계적으로 야기하지 않는 자본주의 내 조직이자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개인들의 대중’을 만들어 내는 데 핵심 장애물이 노동조합인 것이다.
노조는 의회권력 정통성 힘 싣고 조기 대선 대비해야
2차 세계대전이 추축국의 패전으로 굳어질 즈음인 1944년, ILO는 유명한 필라델피아 선언을 발표했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를 기초로 함으로써만 확립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세계 평화와 화합이 위협받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대한 사회 불안을 초래하는 불의, 고난 및 궁핍을 가져다주는 근로조건의 개선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바로 노동조합의 역할이다. 노동조합 활동이 기업, 지역, 산업 차원에서 사회정의의 수립과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1990년대 활약한 백골단이 부활해 나치의 돌격대와 유사한 이념적 민병대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 한국의 노동조합은 유사 파시즘을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시급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이중권력 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 정당이 지리멸렬해 아쉽지만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권력의 정통성에 힘을 실어 시급히 윤석열을 사회에서 격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미 민주노총은 전농과 함께 윤석열 체포와 구속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실천하는 대표적인 대중조직이다. 윤석열 구속 이후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후 벌어질 대선이라는 정치적 기회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 필자가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노동조합이 ‘동네방네, 구석구석’ 스며들도록 제도 개혁과 실천을 요구해야 한다. 12.3 내란 사태로 대중의 관심에서 잠시 벗어나 있지만 두 차례 시도했던 노조법 개정이 그 시작이다.
이번 12.3 내란 사태에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남태령으로, 한남동으로 달려간 응원봉 물결은 사회적으로 배제·무시당해 왔던 다양한 소수자 모임의 현시(顯示)이자 이들 간의 연대를 의미한다. 이 연대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작년 12월, 부산 탄핵집회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한다는 여성은 쿠팡 노동자의 과로사, 장애인의 이동권 제약,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 동덕여대에서 드러난 빈곤한 대학 민주주의 문제가 관심 받지 못하고, 해결되지 못한다면 우리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전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라 강조했다.
노조를 민주주의 심화 위한 논의·연대·교육·훈련의 중심으로
필자 또한 온전히 동의한다. 우리가 직면하는 크고 작은 문제는 모두 머리를 맞대고서 논의·협의하고 연대해야 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심화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노동조합은 논의·협의하고 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훈련까지 받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하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대중조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어야 하는 것이 노동조합이기 때문이다. 유사 파시즘을 추구한 윤석열이 자본의 요구를 배경으로 노조법 2, 3조 개정안을 필사적으로 막은 이유이자 민주주의의 심화를 두려워 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