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정치집회…베를린서 외친 윤석열 처벌 촉구
4일 열린 베를린 윤석열 체포 및 처벌 촉구 집회 후기
오랫동안 집회 참가 꺼렸지만 체포 무산 소식에 용기
동시대인들과 떼창하며 느낀 전율… 자유발언까지
집회 참가해 꽉 막혔던 가슴이 치유되는 경험하시길
저는 한국 나이로 올해 서른여덟입니다. 한국에서 행정공무원으로 일하다 6년 만에 퇴직하고 베를린에 와서 철학과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뜻깊은 첫 경험을 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정치 집회에 참여한 일입니다.
저는 한국에서는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경북 출신이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세상이 시끄러웠을 때 박근혜 탄핵을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염원만 하고 광장으로 뛰쳐나간 적은 없습니다. 이 시국에 공무원들은 정치적 행위, 즉 집회에 참가하지 말고 중립을 지켜달라는 공문이 내려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공문 때문에 집회에 나선 적 없다는 말은 변명일 뿐입니다.
이제야 집회에 처음 가봤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그것도 고국에서 8000킬로미터 떨어진 독일 베를린에서요. 저는 한국 정치 뉴스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한국, 그것도 서울에 살던 당시에도, 독일에 사는 지금도, 제 주변에는 정치 이야기를 나눌 만한, 또 저에게 집회 가자고 옆구리 찌르는 중요한 역할을 해줄 한국인 친구나 동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옆구리를 스스로 찔러야 했지요. 집회에 나가는 별거 아닌 실천을 위한 용기를 내는 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윤석열 체포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는 뉴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재독 한인커뮤니티에서 집회 일정을 확인했습니다. 제가 사는 베를린에서 2주마다 집회가 열린다는 사실에 참 감사하며 토요일인 4일 오후 3시로 저 스스로와의 약속을 잡았습니다. 전날엔 설레는 마음으로 혼자서 피켓도 만들었습니다. 앞면은 한국어, 뒷면은 독일어로요.
다녀와 보니 정말 잘 한 결정이라는 생각만 들 뿐입니다. 첫째로 놀란 것은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의 열정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부터 생기 넘치는 유학생들, 중년의 카리스마와 노년의 멋을 가지신 인생 선배님들까지, 나이에 상관없이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날씨가 매우 추웠지만 먼 땅에서 발견한 우리 교민들의 연대정신을 느끼게 되어 마음이 따뜻하게 녹는 듯했습니다.
둘째로는 ‘윤석열을 체포하라, 체포하라, 체포하라!’고 외칠 때 느끼는 그 짜릿함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물론 집회 시작 부분에 처음으로 구호를 외칠 땐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 목소리에 그런 구호에 맞는 톤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구호가 계속되자 윤석열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와 공포감, 좌절감이 조금은 치유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구호를 외치는 제 목소리도 점차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어느 순간부터 저는 신이 났습니다.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자유 발언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윤석열을 즉시 체포해야 하고, 경호처는 내란 수괴 경호를 즉시 중단하고 체포에 협조해야 하며, 윤석열을 옹호하는 국힘당은 해산돼야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한 건 아니고, 즉흥적으로 나간 거라 조금 버벅거렸습니다. 사실 제 발언은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아는 내용일 테고, 제 목소리를 윤석열이 듣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제 생각을 전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투표 외에는 세상에 어떤 정치적 입장도 밝혀본 적 없는 저에게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무언가 쑥스러워 망설이면서 참여하게 된 집회였지만,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간 저는 유튜브를 통해서만 내란 수괴 윤석열의 만행을 전해 듣고, 참담한 사태에 대해 논평하는 사람들에 공감했습니다. 어제처럼 체포 영장 집행이 막히는 등의 일이 생기면 속으로만 괴로워했습니다. 독일 친구들에게 이 행태를 속속들이 전달하면서 공감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개인이 나라를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함이 저를 꽤 아프게 했던 모양입니다. 집회에서 처음 본 옆사람들과 한마음이 되어 구호를 외치면서 비로소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느낀 어떤 쾌감이 제게 오랫동안 부재했던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동시대사람들과 떼창하는 그 순간의 전율,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헌법 유린을 저지른 내란 수괴 윤석열이 체포 및 구속되고 본격적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내란은 진정한 의미에서 끝나지 않은 진행형입니다. 그때까지 권력의 원천이자 주인인 국민이 국내외에서 힘을 합쳐 윤석열 파면과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한 분이라도 더 집회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를 얻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의 부끄러운 소회를 공유합니다. 여러분, 집회에 나갑시다. 꽉 막혔던 마음은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고, 한 목소리 더해진 그 외침이 역사를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