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야구방망이 준비" "부정선거 자수 글 올려" 지시

"노태악이는 내가 확인…위협하면 다 불 것"

각종 고문 도구, 홈페이지 자수 글…상상 초월

'부정선거 음모론' 현실화에 목맸던 계엄 수뇌부

노상원 연관성 부인한 김용현, 연관 증거 줄줄이

2024-12-31     박지훈 IT 전문가

민간인인 전직 정보사령관 노상원이 정보사령부 병력을 동원해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직원들을 납치한 후 고문 위협으로 부정선거 자백을 받아낼 계획이었음이 밝혀졌다. 

31일 공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인용한 여러 언론 보도들을 종합하면, 노상원은 정보사 사령관과 두 대령들에게 야구방망이, 니퍼, 케이블타이 등의 도구를 준비하라고 지시했으며, 또 야구방망이는 자신이 사용해 선관위원장을 위협하겠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부정선거 자수 글을 올리라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지시들을 쏟아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지시를 받은 현직 군 장성인 정보사령관 등이 이런 노상원의 기막힌 지시들을 실제 이행하려 여러 도구들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4.12.24 연합뉴스.

고문 도구, 홈페이지 자수 글…상상초월 선관위 계획

노상원은 11월 17일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김봉규 대령, 정성욱 대령 등을 자신의 점집에서 가까운 안산의 롯데리아로 불렀다. 기존에 알려진 12월 1일, 3일 회동보다 앞선 ‘0차 롯데리아 회동’인 셈이다.

이 자리에서 노상원은 이미 11월 9일에 전달한 준비지시 문건을 거론하며 준비 상황을 챙긴 후, “부정선거와 관련된 놈들은 다 잡아서 족치면 부정선거 했던 거 다 나올 것”이라며 야구방망이와 니퍼, 케이블타이 등을 준비하라고 추가로 지시했다.

이 지시 얼마 후 문 사령관이 정 대령에게 물품들을 구입했느냐고 전화로 물었고, 정 대령은 몇몇 물품을 구매했다.

이어 12월 1일의 ‘1차 롯데리아 회동’에서 노상원은 이미 알려준 선관위 직원 30명을 데리고 오라며 저항하면 케이블타이로 묶으라고 지시했다.

또 앞서 준비하라고 했던 물품들 중 야구방망이와 관련해서는 “노태악이는 내가 확인하면 된다. 야구방망이는 내 사무실에 가져다 둬라. 제대로 이야기 안 하는 놈은 위협하면 다 불 것”이라고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27일 김용현에 대한 기소 당시 검찰이 공개한 참고자료에는 검찰이 정보사 출장조사 당시 확인한 여러 위협적인 도구들의 사진들이 첨부됐는데, 여기에는 니퍼, 송곳, 드라이버, 안대, 포승줄, 케이블타이, 야구방망이, 망치 등이 있었다.

 

‘정보사 체포조’가 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준비했던 송곳, 안대, 포승줄, 케이블타이, 야구방망이, 망치 등.

게다가 “선관위 홈페이지 관리자를 찾아서 홈페이지에 부정 선거를 자수하는 글을 올려라”라는 지시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19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이 관련 계획의 상당부분을 제보 받아 먼저 폭로하기도 했다. 계엄 당시 5명의 HID 요원들 포함 별도의 정보사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새벽 5시40분에 중앙선관위에 도착, 선관위 직원들 30명을 케이블타이로 손발을 묶고 두건을 씌워 납치할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바로 다음날 정보사 정성욱 대령이 김경욱 변호사를 통해 사실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정보사령관 문상호는 노상원의 이런 얼토당토 않은 불법 투성이의 지시들에도 부하 대령들에게 매번 “장관님의 지시, 명령이 있으면 군인이니까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지시 이행을 종용했다. 노상원의 지시가 곧 김용현 장관의 명령이라는 식이다.

이 같은 사실은 공수처 조사에서 정보사 정성욱 대령의 진술에 따른 것이라고 알려졌다. 다만 정 대령은 출동 대기 중인 부하들에게 ‘방망이로 때리면 안된다’, ‘케이블타이는 사용하지 말라’ 등의 지시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 현실화에 목 맸던 계엄 수뇌부

앞서 노상원의 점집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노상원 수첩에서는 ‘수거 대상’, ‘사살’ 등의 내용이 기재된 사실이 알려져 큰 파장이 일었다.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등이 ‘수거 대상’으로 거론됐고, 사살 대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또 ‘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메모도 발견됐는데, 이는 상당 부분의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상원이 정보사령부 사령관과 고위급 장교들에게 고문 도구 등을 준비하고 선관위원장을 위협하는 등의 기가 막히는 계획을 꾸몄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법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초법적인 계획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현실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선관위의 ‘부정선거’ 수사를 위해 수사2단을 꾸린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강제로 납치해 지하 벙커 등에 감금한 후 신체적 고문이나 고문 위협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내려 한 것이다.

더욱이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직해온 관례에 따라 현직 대법관이다. 현직 대법관조차도 납치해 자신의 사무실에 가둔 후 야구방망이로 위협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제정신인지 의심할 정도이지만, 이런 노상원을 국방장관 김용현과 대통령인 윤석열이 믿고 선관위 작전 총괄을 맡겼다는 점에서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이다. 계엄 수뇌부가 비상계엄 선포를 마치 ‘만능 사기템’ 정도로 여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노상원은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야구방망이로 위협해 부정선거라는 자백을 받아낼 생각이었다지만, 현직 대법관이 단순 위협을 받았다고 해서 부정선거라고 시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눈앞에 선관위원장을 붙잡아놓고 손에 방망이를 치켜든 노상원은, 선관위원장이 부정선거 주장을 부인하면 어떻게 했을까. 과연 방망이를 실제 휘두를 생각까지는 전혀 없었을 것인가.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2주 앞둔 27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4.3.27 연합뉴스.

더욱이 선관위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부정선거 자수 글을 올리라는 지시는 안 그래도 기가 막힌 상황에 정신까지 혼미하게 할 정도다. 고문을 전제로 한 엉터리 수사조차도 그 결과를 기다리지 않은 채로 일단 부정선거라는 자백부터 선관위 홈페이지에 올리려 했다는 것이다.

노상원을 비롯한 계엄 수뇌부가 ‘4월 총선은 부정선거였다’라는 공표를 내놓는 데에 절박할 정도로 목을 매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노상원 연관 부인 나선 김용현, 연관 증거 줄줄이

물론 이런 상상초월의 노상원 행태에 대해 윤석열과 김용현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것이 분명하다. 실제 김용현 측은 기소 당일인 지난 27일에 “비상계엄 선포나 계엄 사무 수행에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이라며 “대통령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며, 대통령을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 또 노상원의 수첩은 사적 메모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일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 직후 김용현은 합참전투통제실 내 결심실에서 노상원과 여러 차례 통화하는 모습이 목격된 바 있다. 이 통화들에서 김용현이 노상원에게 “응, 상원아”, “이제 뭘 더 어떻게 하겠냐…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됐다” 등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한편 앞서 최상목 부총리가 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에게서 받은 문건에서 국회 운영비 예산을 끊고 ‘비상계엄 입법부’에 예비비를 준비하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음이 밝혀져 큰 파장이 일었던 바 있다. 내란죄의 필수 요소인 ‘국헌문란 목적’임이 여지 없이 증명된 것이다.

 

30일 SBS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상원 수첩에서 '비상입법기구' 메모가 발견됐다. SBS 보도 영상 캡처.

그런데 지난 30일 SBS 보도에 따르면, 노상원의 점집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노상원 수첩’에도 ‘비상입법기구’ 메모가 발견됐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 역시 윤석열-김용현과 노상원이 계엄 선포 이후 ‘큰 그림’의 계획에 있어서도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또다른 증거가 될 수 있다. 노상원이 추진한 선관위 장악 및 서버 침탈 계획이 국회를 무력화시킨 후 국회 대신 계엄입법부를 창설하려 한 큰 계획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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