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몇 가지 논리적 문제들
"제가 정치인인가요?"…"한국인 자격 없어"
개인적으로 임영웅은 트로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임영웅 가수가 부르는 노래나 음악적 정체성을 트로트 장르로 분류하는 데 반대한다는 뜻이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를 통해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다들 트로트로 보는 듯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트로트가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발라드의 색채가 강하다고 느껴지는데, 음악의 경계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아무튼, 임영웅은 트로트가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제가 정치인인가요?" 임영웅 저격…김갑수 "한국인 자격 없어">(머니투데이 2024.12.9.) 이런 류의 기사를 봤을 때 또 언론이 ‘어그로’를 끄는구나, 생각했다. 제목만 보지 않고 넘기지 않은 이유는 김갑수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사회과학도인 나도 알 정도로 문화평론 쪽에서는 저명한 분이고 개인적으로도 칼럼 같은 글을 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분이 이렇게 일반 유튜버처럼 과하게 할 분이 아닌데, 하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아쉽게도 보도를 종합해보면 김갑수의 발언은 특정 맥락에서 임영웅의 태도를 시민적 책임의 결여로 해석하며 비판하는 것이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논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계엄에 대한 태도 유보에 집단 학살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도 될까?
김갑수의 비유는 자칫 집단 학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겠다. 그렇지만, 계엄령 상황을 모든 시민이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즉각 행동해야 한다고 전제하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방식에는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 계엄을 집단 학살에 비유하며 도덕적 결단을 요구했지만, 모든 시민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건을 인식하거나 행동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임영웅은 가수로서 자신의 역할과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분리하며, 자신이 반드시 공적 입장을 표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계엄과 집단 학살은 성격과 맥락이 다른 사안이다. 이번 계엄 난동에 대해 집단 학살로 이어질 뻔했다며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놓아서는 곤란하다. 계엄령 발동은 정치적·법적 문제이며, 이에 대한 태도 유보를 집단 학살처럼 명백한 도덕적 악에 대한 침묵과 동일선상에 두는 것은 사건의 본질적 차이를 무시한 논리의 비약이다.
시민 소양 부족과 발언의 강요
"제가 정치인인가요?"라는 임영웅의 답변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시민의 기초 소양 부족으로 평가할 여지도 있다. 그저 “좀 아쉽네요!” 정도의 발언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연예인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으니 함께 해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정도로 권유하는 정도로 왜 하지 못했을까?
시민의 책임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적극적으로 발언하거나 행동하는 것만이 시민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은 아니다. 침묵하거나 중립을 지키는 것 또한 하나의 선택이며, 이는 시민적 소양과 무관하게 개인의 자유로 보장되어야 한다. 침묵이나 중립이 과연 시민적 소양의 부족인지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살펴야 하며, 단정을 내리기 전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침묵이나 정치적 발언 회피가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단정 지을 근거도 사실 없다. 아마, 임영웅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적 인물이므로, 정치적 발언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간주하는지도 모르겠다. 공적 인물의 정치적 발언은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이다. 임영웅은 가수로서 문화적 역할에 집중하기로 선택했으며,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심각하게 따져본다면, 모든 공적 인물이 정치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암묵적 강요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헌법적으로 시민은 정치적 입장을 취하지 않을 권리 또한 보장받는다. 임영웅에게 특정 정치적 의사표시를 강요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시민으로서 침묵하거나 중립을 유지할 권리 또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침묵 또한 선택이지만, 대중적 영향력이 큰 인물이기 때문에 사회적 기대가 존재한다는 점은 이해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기대가 특정한 정치적 행동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방관자적 태도가 곧 '한국인 자격 없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현재까지 한국의 역사를 만들어 온 한국인 자격이 없다는 주장 또한 과하다. 한국인 자격을 역사적 투쟁과 적극적 참여를 통해 정의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특정 역사적 맥락이나 정치적 행동 하나로 정의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임영웅이 현 시국에서 정치적 의사 표명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격이 없다고 한다면 한국인에 대한 매우 협소한 정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명박산성’에 대해 최근에야 알았다. 힘겹게 싸운 분들이 많았고 가슴 아픈 일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어디까지 고백해야 할까? 박근혜 탄핵 때 전혀 광장에 나서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학자로서 그저 본분에 충실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 날 훌륭한 대통령으로 바뀌어 있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아니었다면, 인명을 경시하는 우파 정권 하에서 코로나 사태를 맞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마 지금 임영웅에게 가해진 한국인이 아니라는 비난은 당시 내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리라.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역사적 사건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모든 시민이 동일한 방식으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가 아닐까? 한국의 민주화를 비롯한 역사는 단지 적극적으로 행동한 이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간 시민들의 복합적 기여로 형성되었다. 침묵하거나 방관자로 보이는 이들도 사회적 균형을 유지하며, 간접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악의 편에 가담한 것이 명백하지 않은 이상 한국인이 아니라는 비난은 곤란하다.
만약 김갑수가 아니었다면
"한국인 자격이 없다"는 발언이 만약 김갑수에게서 나온 게 아니었다면, 민족 정체성의 강요와 차별의 위험이라는 비판까지 나아갔을지도 모르겠다. ‘특정한 기준에 따라 개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배타적 민족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떻고저떻고. ‘미국이나 유럽 사회에서처럼 사회적 이방인으로 타자화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다양성을 포용해야 하는 민주 사회의 원칙과 배치된다’, 이러쿵저러쿵.
그렇지만 내가 아는 문화평론가 김갑수는 그럴 분이 아니라고 믿는다. 민족적 정체성을 강요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맥락상 시민적 책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저 임영웅은 예술가의 역할과 정치적 중립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자. 연예인들의 시민적 소양 증진에 관심이 있다면 해당 연예인을 비난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육 같은 다른 형태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문제다. 모든 예술가가 정치적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무언가 의견을 피력했다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임영웅이 정치적 입장을 취하지 않겠다는 점은 개인적 자유이며, 예술가로서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려는 선택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특정 태도를 강요하는 것은, 그 사안이 아무리 중대할지라도, 민주 사회의 기본 원칙인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 공적 인물의 정치적 입장 유무가 궁금할 수는 있다. 궁금증의 표현도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는 균형 잡힌 태도를 통해서 표출되어야 할 것이다.
임영웅은 트로트가 아니야
트로트가 아니다,와 한국인이 아니다, 두 표현은 언어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의미와 논리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차이를 가진다. 전자는 특정 기준에서 트로트를 정의하고, 임영웅의 음악이 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이다. 음악 장르에 대한 논의로 국한되며, 임영웅의 정체성(사람으로서의 본질)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후자는 한 사람의 국적이나 민족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개인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문제 삼는 발언으로, 스스로 한국인으로서 자신을 정의하고 있더라도 타인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기준을 설정하고,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주관적 또는 객관적 근거가 전제되어야 성립할 수 있는 표현이다.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발언으로 봐야 한다. 나는 여전히, 임영웅은 트로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임영웅은 당연히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탄핵 국면에서 우리와 함께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