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와 일자리 창출까지, 그린 리모델링 주목해야
기후위기가 사회경제 각 부문에 미치는 충격이 동일하지 않듯이 거기에 대응하는 기후운동의 관심도 편차를 보인다.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갈등이나 신공항 건설과 같은 토목개발의 반대, 기후정치 등의 이슈가 중심축을 이루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지점도 존재한다. 그린 리모델링도 그 가운데 하나다.
실직 노동자에게 ‘녹색 일자리’ 만들어 줄 그린 리모델링
건물은 전환(발전), 산업, 수송부문에 이어 4번째로 탄소배출이 많은 부문이다. 가령 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NDC)의 기준연도인 2018년의 경우 건물부문은 521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건물 내에서 도시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 배출되는 양(직접배출)을 가리킬 뿐 건물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전기가 배출하는 양(간접배출)은 포함하지 않는다. 간접배출을 포함한 건물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기준, 1억 8천만 톤으로 국가 전체 배출량의 24.7%에 이른다(국토교통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이 건물부문의 탈탄소화에 매달리는 이유다.
우리나라 정부가 채택한 대표적인 정책은 그린 리모델링과 제로에너지빌딩(ZEB)의 신축.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건물부문의 탄소배출량을 3500만 톤(32.8%↓)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린 리모델링은 친환경적인 건설자재의 사용과 시공, 건물의 유지 및 운영에서 에너지 효율의 증대 등을 통해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줄인다. 또한 그것은 저소득계층의 노후주택과 공공 임대주택의 에너지 성능을 높여 취약계층의 주거 질을 개선하고 주거비를 줄인다.
그린 리모델링에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일자리의 창출이 그것이다. 가령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거나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꾸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그린 리모델링이나 제로에너지빌딩의 신축과 같은 건물부문의 탈탄소화는 일자리를 늘린다. 사회생태적 전환에 기여하는 괜찮은 일자리, 즉 녹색 일자리(green jobs)가 그것이다. 호주에서 2017년 헤이즐우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했을 때 호주 정부는 그린 리모델링 정책을 동원해 지역경제를 되살리고 실직한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린 리모델링은 기후정의와 사회정의가 만나는 교집합에 해당한다.
칸막이 행정으로 껍데기만 남은 그린 리모델링 정책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그것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을까. 국가운영에서 뭣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면 그린 리모델링인들 대수일까. 결론부터 당겨 말하면 내세울 만한 실적도 없이 목표만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덩그러니 남아있는 게 그린 리모델링 사업의 현주소다. 세부 추진정책도 없지만 앞으로의 비전도, 책임 주체도 없는 껍데기 정책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업을 추진하는 행정체계부터가 뒤죽박죽이다. 그린 리모델링은 대표적으로 ‘노후공공임대주택 그린 리모델링’, ‘공공건축물 그린 리모델링’, 그리고 ‘민간이자지원사업’으로 구성된다. ‘노후임대주택 그린 리모델링’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관하고 ‘공공건축물 그린 리모델링’과 ‘민간이자지원사업’은 국토안전관리원 그린 리모델링 창조센터가 관장한다. 그리고 건물부문 탄소중립정책의 또 다른 축인 제로에너지빌딩 승인사업은 한국에너지공단이 담당한다. 토지주택공사와 국토안전관리원은 국토부 산하기관이고 한국에너지공단의 주무기관은 산자부다. 게다가 ‘공공건축물 그린 리모델링’의 예산은 기재부의 기후대응기금으로 편성되고 그린 리모델링 활성화 사업은 국토부 예산으로 잡힌다.
고질적인 칸막이 행정의 폐해는 그린 리모델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160만 호를 그린 리모델링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연도별 사업계획과 구체적인 사업 물량의 배분조차 제시하지 않는다. 사업실적이 통합적으로 집계되는 것도 아니다. 주무부처가 나뉘어져 있고 연도별 사업목표조차 설정되지 않은 가운데 산하기관은 주어진 예산으로 자기 사업을 진행할 뿐이다. 사업의 진행을 평가하고 대안을 수립하는 등 사업계획을 총괄하는 건 국토부가 할 일이겠지만, 국토부는 소가 닭 보듯 관심이 없어 보인다(국토부 홈페이지의 정책자료에서 ‘그린 리모델링’을 검색하자 “게시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게시만 뜬다).
각 부문 턱없는 목표 미달 속 예산삭감, 사업포기, 유예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먼저 ‘노후공공임대주택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2025년도까지 영구임대주택 시설개선 28만 1000가구, 그리고 국민임대주택 시설개선 4만 6700가구를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2024년까지의 실적에 2025년의 계획을 더해도 목표의 17.8%인 5만 8603가구에 그친다(LH 내부자료). ‘공공건축물 그린 리모델링’은 사용승인 이후 15년이 지난 국공립 어린이집, 보건소, 의료시설 등에 대한 리모델링 사업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의 목표는 2020년~2025년 기간 동안 5500건을 실행하는 것. 하지만 2020년~2024년 11월 사이에 공공건축물 그린 리모델링 실적은 3437건에 그치고 있다. 2024년 실적이 529건에 그치고 있는 데서 보듯이 이 역시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25년 공공건축물 리모델링 예산은 2024년에 비해 10.2%, 130억 원이나 줄었다(1,275억 원 → 1,145억 원).
그렇다면 민간주택의 그린 리모델링에 이자를 지원하는 사업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정부가 밝힌 그린 리모델링 목표 160만 호는 사실 대부분을 ‘민간이자사업’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동안 시행된 민간이자 지원사업은 고작 7만 9000건. 목표의 5% 수준이다. 그나마 지원대상을 살펴보면 공동주택(아파트, 다세대 주택)이 95% 이상을 차지해 현금조달능력이 없는 단독세대의 취약계층은 배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2024년에는 ‘민간이자지원사업’을 폐지했다. 금리가 높아지면서 건축주의 부담이 커져 참여가 저조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제로에너지빌딩사업’도 죽을 쑤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정부가 밝힌 ‘제로에너지빌딩사업’의 목표는 2030년까지 4만 7000건을 짓는 것이다. 한국에너지공단이 밝힌 2017년부터 2024년 11월말까지 누적승인 건수는 6709건(14.3%). 그 가운데 예비인증이 76.7%인 5143건을 차지해 공사비 내역서를 요구하는 본인증을 통과한 건물은 1566건에 그친다. 에너지 등급별 승인현황을 보면 5등급(에너지 자립률 20% 이상 40% 미만)이 59%(3956건), 4등급(에너지 자립률 40% 이상 60% 미만)이 24.5%(1643건)로 낮은 등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24년부터 30세대 이상의 신축 민간 공동주택은 5등급 수준 이상으로 지을 것을 의무화했지만 이를 2025년으로 유예했다. 제로에너지 빌딩을 강제하면 건축단가가 높아진다는 건설업계의 불만이 있다는 이유였다.
흥미롭게도 건물부문에서 2년 연속 증가하던 탄소배출량이 2023년에는 목표치 이하로 줄었다. 환경부가 내세운 감소요인은 “겨울철 평균기온의 상승과 도시가스 요금인상(42.6%)에 따른 도시가스의 사용감소”. 널뛰기하는 기후변화에 의존해 기후변화 대응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하는 모습이 역설적이다. 여름이 더 더워지고 겨울이 더 추워지면 어떡할 건가. 에너지 요금을 왕창 올려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참인가.
지역 취약계층 등에게 연평균 30만~50만 일자리 제공할 시장
건설업은 현재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24년 3/4분기 건설업 취업자는 203만 7000명, 지난 동기대비 8만 8000명이 줄었다(통계청).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정부가 주도하는 그린 리모델링의 필요성을 더 높이는 것이다. 탈탄소화와 서민 주거 질의 개선, 그리고 경기침체에 대비한 일자리 창출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연구원(2023)은 정부가 탄소중립 시나리오대로 그린 리모델링을 실시하면 2023년~2050년 사이에 1706조~2781조의 그린 리모델링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연간 63조~103조 규모다. 이는 정부가 그린 리모델링만 제대로 실행해도 연평균 30만~50만의 신규 고용이 창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2020년 건설업 고용계수 5.1(명/10억원), 한국은행).
더욱이 그린 리모델링은 지역 차원에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조직을 동원할 수 있는 사업이다. 사회적 경제주체가 지역의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제공하는 공공 임대주택, 즉 사회주택이 대표적이다. 특히 사회주택이나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서민주거 개선사업(도시재생사업)은 소규모 인력을 단기간에 투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고용하거나 지역의 영세자영업자에게 일감을 맡길 수 있다. 그린 리모델링을 사회적 경제 주체에게 맡겨 지역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말한다.
정부의 방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무관심 더해진 현실
향후 주거정책이 신규주택 공급을 최상위 목표로 할 일이 아니라 기존주택의 개량을 중심에 두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면 그 중심에 그린 리모델링이 자리한다. 그리고 이 사업은 민간에 맡길 일이 아니라 정부주도로 진행하는 일이 중요하다. 공공건축물의 에너지 성능을 높이고 저소득계층의 주거 및 에너지 복지를 증진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방치를 넘어 정책의 실종, 나아가 정치의 부재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그린 리모델링을 방치했다고 하지만 노동조합과 기후시민단체, 그리고 주거권 단체가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조직하고 대안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 사업이지만 정부는 예산을 깎고 야당은 감세 협치로 화답했다. 탈탄소화와 서민 주거환경의 개선, 그리고 일자리의 창출을 지향하는 그린 리모델링의 처지는 이래저래 눈에 파묻힌 가을낙엽만큼이나 스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