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전 총경 "경찰, 위법·위헌 지시 거부해야"
비상계엄 때 경찰이 국회 통제해 계엄 해제 막아
"내란죄·직권남용죄 해당…명령이라도 면책 안돼"
"혼란한 시대에 경찰이 헌법과 민주주의 지켜주길"
윤석열 정권의 경찰 통제에 항의하다 좌천된 뒤 그만 둔 이지은 전 총경이 경찰에 “위법한 상관의 지시를 단호히 거부하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경찰이 국회에서 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것이 내란죄와 직권남용죄에 해당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전 총경은 5일 자신의 SNS에 “혼란의 시대에 선 경찰에게 드리는 글” 제목의 포스팅에서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위헌·위법적인 계엄이었는데 슬프게도 그날 밤 경찰은 이런 위헌적 계엄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을 해제하려면 국회의원들이 표결을 해야 하는데, 경찰이 국회를 통제하는 바람에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면서 “출입을 통제하라는 무전 지시에 충실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경찰은 계엄령 해제를 막은 것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켰던 경찰의 전면통제 조치는 내란죄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고 이는 상사의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면책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경은 “여러분께 부탁드린다”면서 “앞으로 시민들의 촛불은 더욱 무섭게 타오를 것이다. 여러분도 계속해서 집회 관리 업무에 동원될 것인데 모든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위법한 지시는 단호히 거부하시라”고 밝혔다. 또 “부조리한 시대에 그저 순종적이기만 한 공무원은 역사에 큰 죄를 지을 수 있다, 경찰의 정의감과 시민의 양심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 이 혼란한 시기에 마지막까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국민의 경찰이 되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지은 전 총경은 경찰대를 차석으로 졸업한 뒤 24년 간 경찰로 근무했으며 서울대 사회학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범죄학 석사를 마치고 2017년 제6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등 경찰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이 행안부의 경찰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경찰국 설립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해 류삼영 당시 울산중부경찰서장이 주최한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기획하고 참석했다가 좌천됐다. 이후 경찰을 그만 둔 뒤 올해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0.6% 득표차로 아쉽게 낙선하고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이지은 전 총경이 올린 SNS글 전문.
<혼란의 시대에 선 경찰에게 드리는 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전직’ 경찰 이지은입니다.
비상계엄 선포에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불안에 떤 시민들만큼이나, 여러분들도 갑작스러운 계엄과 비상근무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국회 앞에서 근무했던 동료들은 계속해서 바뀌는 지시 명령과 혼잡한 현장상황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갈등과 혼란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호했던 것들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먼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계엄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설령 적법한 계엄이라 할지라도 국회의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되는데, 국회의 정치, 정당활동을 전면 금지했고 이를 위반시 영장없는 체포, 구속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계엄시 국회에 통고하여야 하나 이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위헌,위법적인 계엄이었습니다.
슬프게도, 그날 밤 경찰은 이런 위헌적 계엄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계엄을 해제하려면 국회의원들이 표결을 해야 하는데, 경찰이 국회를 통제하는 바람에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출입 통제하라’라는 무전지시에 충실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경찰은 계엄령 해제를 막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경찰청장은 오늘 행안위에서 ‘계엄 사령관의 요청을 받았고, 당시에는 그 내용이 헌법 위반이라 생각하지 않아 통제를 지시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켰던 경찰의 전면통제 조치는 내란죄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고, 이는 상사의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면책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시민들의 촛불은 더욱 무섭게 타오를 것입니다. 여러분도 계속해서 집회 관리 업무에 동원되시겠지요. 모든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시고, 위법한 지시는 단호하게 거부하십시오. 부조리한 시대에 그저 순종적이기만 한 공무원은 역사에 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경찰의 정의감과 시민의 양심으로 끊임없이 고민하십시오.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여 이 혼란한 시기에 마지막까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국민의 경찰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립고 보고싶은 경찰 동료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