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법조팀, 김경록에 조민 표창장 제작 과정 '예언'

총장 직인 파일 ‘블러핑’ 시작은 SBS 보도 이틀 전

김경록 ‘KBS, 9월 10일 표창장 제작 방법 알려줘’

강사휴게실PC 파일은 9월 11일 이후에야 발견돼

미래에 발견될 파일들, 제작 방법까지 미리 예언

“한동훈이 너의 죄를 엄격하게 보고 있다” 회유

특종 정보 보도 안 한 KBS? 고도화된 검찰 언플

2024-11-28     박지훈 IT 전문가

[조국 사태의 재구성] 65. '한동훈' 거론 KBS법조, 김경록에 '표창장 제작과정' 예언 귀띔

지난 회에서 살펴본 대로, 검찰은 2019년 9월 7일 SBS 보도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발견됐다는 거짓의 예언을 한 것 외에도, 바로 다음 날인 9월 8일엔 조선일보 기자에게 ‘표창장 파일들’이 발견됐다며 그 세부적인 개수와 각각의 형식과 내용의 차이, 추가 상장 파일의 내용까지 정확히 설명했다.

하지만 이 ‘표창장 파일들’ 역시 총장 직인 파일과 마찬가지로 당시 검찰이 확보하고 있었던 연구실PC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당시엔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강사휴게실PC’에서 9월 11일 이후에야 발견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검찰의 ‘예언’ 사례는 SBS와 조선일보만의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와 직결되는 사례는 9월 7일과 8일보다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있었다. 심지어, 이 새로운 사례에서는 표창장 파일의 존재 사실과 내용을 넘어서 구체적인 제작 방법도 예언하기까지 했다. 이 역시 강사휴게실PC에서 해당 파일들이 실제 발견되기 이전이다.

총장 직인 ‘블러핑’의 시작은 SBS 보도 이틀 전

먼저, 가장 많이 알려진 SBS의 ‘총장 직인 파일 발견’ 보도에 대해 검찰이 스스로 허위였다고 밝혔던 2020년 4월 시점으로 돌아가 살펴보자.

SBS 보도 이후 7개월이 지난 2020년 4월, 검찰은 정 교수 1심 재판의 공판에서 뜬금없이 그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밝혔다. 증인석의 증인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이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중대 사실을 최초로, 그리고 스스로 밝혔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검사/ 언론에서 갑자기 정경심 측이 압수수색을 하기 전에 동양대에서 가져간 업무용 PC를 임의제출했는데, 거기에 동양대 총장 직인파일 발견됐다는 기사 본 적 있습니까?
증인/ 본 적 있습니다.
검사/ 사실은 이 보도 내용과는 다르게 이 PC에서 총장 직인이 발견된 건 아니었는데, 증인은 이 보도 내용 진위는 알 수 없었지요?

증인/ 네.

그런데 검사가 이 뜬금없는 실토를 내놓은 이 증인 신문 발언의 대상은 엉뚱하게도 문제의 SBS 보도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동양대 교원인사팀장 박준ㅇ 씨였다. 재판 중에 검찰 스스로 실토를 한 것도 황당하지만 그 신문 대상이 더 의아한 것이다.

‘증인은 알 수 없었지요?’라는 질문 내용만 봐도 검사가 해당 증인과 전혀 무관한 사실관계를 증인 신문에 억지로 끼워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검사는 왜 이렇게 전혀 엉뚱한 질문을 증인에게 던졌을까?

그 내막은, 같은 증인에 대한 변호인의 반대신문 내용을 들어보면 짐작 가능하다. 당시 증인 박준ㅇ은 SBS 보도와는 전혀 무관하지만 문제의 ‘총장 직인 파일’ 문제에 일부 관련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변호인: ‘검찰이 압수수색한 교수실 컴퓨터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나왔다'고 보도됐는데, '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데 이런 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라고 정경심 교수가 전화로 묻지 않았나요?
증인/ 그렇습니다.

즉 변호인이 이 박 팀장에 대한 반대신문에서 ‘총장 직인 파일’ 건을 거론할 것을 검찰이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변호인 입에서 터져나올 대형 이슈를 먼저 터뜨림으로써 미리 김을 빼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검사가 재판 중에 공식적으로 오보였음을 먼저 인정한 9월 7일의 SBS 보도보다도 이전에 정확히 동일한 내용의 검찰발 예언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이 연재에서 앞서 살펴본 바 있는데, 요약하자면 검찰은 SBS ‘총장 직인 파일’ 보도보다도 이틀 전인 9월 5일 오후 늦게 정 교수 측 변호사에게 ‘연구실PC 포렌식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나왔다’는 거짓 정보를 먼저 흘렸다. ☞ SBS 오보 이틀 전 "총장 직인 파일"…신내림 받은 검찰?

이 사실은 동양대 장경욱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처음 알려진 것으로, 필자도 다른 경로를 통해 사실 여부를 재확인했던 바 있다. 정 교수가 ‘연구실PC에서 총장님 직인 파일이 나왔다’는 말을 처음 들었던 시점은 ‘9월 5일 늦은 오후’였던 것이 정확하고, 그 내용을 알렸던 사람은 당시 정 교수의 변호인이었던 이인걸 변호사였다.

 

정경심 교수는 2019년 9월 5일 늦은 오후 연구실PC에서 ‘총장님 직인 파일’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경욱 교수 페이스북.

이 9월 5일은 검찰이 변호인 입회 하에 연구실PC의 포렌식 분석을 실제 시작했던 날로서, 이 포렌식 분석 절차에 법규에 따라 정 교수의 변호인이 입회했다. 입회한 변호인은 당시 정 교수의 변호인이었던 이인걸 변호사의 후임 황인형 변호사였다. 즉 황 변호사가 검찰로부터 ‘연구실PC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나왔다’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이 변호사에게 전하고, 다시 이 변호사가 정 교수에게 전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 스스로도 재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이후 같은 연구실PC를 수십 차례 탈탈 털어 뒤졌던 필자도 확인했다시피, 연구실PC에는 ‘총장 직인 파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검찰, 황인형 변호사, 이인걸 변호사 셋 중의 하나가 정 교수에게 거짓 정보를 흘린 것이다.

(이인걸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서 정 교수의 11월 11일 2차 기소 직후 변호인을 사임하고 그 직후부터 입장을 뒤집어 조국 전 장관에 불리한 주장들을 늘어놓았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 거짓 정보 전달에 변호사들이 참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그 공모 여부와 별개로 이 ‘총장 직인 파일 발견’ 거짓말의 최초 출처가 검찰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그 최초 시점이 검찰이 오보라고 먼저 인정한 9월 7일 SBS 보도보다 앞선 9월 5일이었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이 9월 5일 ‘예언’의 의도는, 구체적인 방식까지는 알 수 없지만 바로 다음날인 6일에 열린 조국 인사청문회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조국 사태’의 발발 시점부터 조국 장관이 실제 임명된 9월 9일까지, 검찰의 모든 행보는 어떤 방식으로든 장관 임명 저지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김경록 녹취, ‘9월 10일 KBS, 표창장 제작 방법 알려줬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또 한가지 검찰의 ‘예언’ 사례는 지금까지 살펴봤던 모든 다른 사례들보다도 더 심각하다.

이는 검찰의 여러 예언들 중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으로, 검찰의 언플에 의해 ‘정경심 자산관리인’으로 둔갑당했던 김경록 당시 한국투자증권 차장의 인터뷰 녹취의 일부 내용이다.

문제의 녹취록은 김 차장이 2019년 10월 8일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가졌던 인터뷰의 전문으로, 이보다 앞선 9월 10일에 김 차장이 KBS 법조팀과 가졌던 장시간 인터뷰가 극히 일부만 발췌되어 왜곡 보도됐던 것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이 유시민-김경록 인터뷰에서, 김 차장은 한 달 전 KBS 인터뷰 당시에 자신을 섭외했던 KBS 법조팀장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꽤 자세히 언급했다.

김경록/ 그때 이미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ㅇㅇ(아들)랑 민이랑 상장 교체해서 바꿨다, 이미 그것까지 다 알고 있더라고요. 그 시기에 이미.

유시민/ 그거는 이미 검찰이 언론플레이를 다 했을 때예요. 그게 9월 SBS 그 보도가 나온 게 그 직후예요, 공소 제기한 직후에. 며칠 안 가서 바로 SBS에서 나왔거든.

김경록/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게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까지도 다 얘기가 되지는 않았었잖아요.

유시민/ 그래도 뭐 한글파일로 잘라서 얹고, 그 얘기는 다 나왔을 때에요. (각주: 유 이사장이 시점을 잘못 기억한 것)

김경록/ 그때 그 기자가 정확하게 그 내용을 알고 있더라고요. ㅇㅇ(아들)는 상 받았고, 거기서 오려가지고 민이 걸로 해서 제출했다. (후략)

 

김경록-유시민 인터뷰 전문의 일부. 김경록 차장은 9월 10일 KBS 법조팀장으로부터 ‘아들 상장에서 오려서 표창장 만들었다’는 발언을 들었다.

보다시피 김 차장은 9월 10일 KBS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을 당시 KBS 법조팀장으로부터 ‘아들과 딸 상장을 교체해서 바꿨다’, ‘아들이 받은 상에서 오려서 딸 것으로 해서 제출했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내용상 따져볼 것도 없이 검찰에서 직접 알려준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KBS 법조팀장의 이 발언은, 이후 검찰이 표창장 위조의 구체적 과정으로서 주장하게 되는 가장 핵심적 논리다. 하지만 이 인터뷰가 있었던 2019년 9월 10일은, 또다시 강사휴게실PC에서 관련 파일들이 발견되기 이전 시점이다. 김 차장의 KBS 인터뷰는 9월 10일 한 번 뿐이었으니 김 차장이 시점을 잘못 기억했을 가능성도 없다.

11일 이후 발견되는 파일들, 10일에 구체적 방법까지 예언?

동양대 교양학부 강사휴게실에서 소위 ‘강사휴게실PC’들이 처음 발견된 시점은 9월 10일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검찰이 강압, 회유, 기망 수법들을 총 동원해서 이 PC들을 압수 완료한 시점은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또 압수 즉시 서울 대검으로 보내진 이 PC들을 대검 포렌식분석관 이승무가 복제 및 해시 등 포렌식 절차에 착수한 것은 다음날인 11일 오전 9시 30분이었고, 2대의 PC들 각각 대한 복제 및 해시 작업이 완료된 것은 오후 4시56분50초, 오후 5시57분이었다.

 

검찰 포렌식보고서에 첨부된 복제 및 해시 결과 화면 캡처. 복제 완료 시점이 기록되어 있다.

검찰, 경찰을 포함한 어느 수사기관이든, PC 등의 저장매체에 대한 포렌식 분석은 가장 먼저 복제 및 해시 작업부터 완료한 후 그 결과인 복제 파일(‘이미지 파일’)을 대상으로 그 안의 파일 등의 정보에 대한 탐색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검찰의 분석관이 강사휴게실PC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나 표창장 파일 등을 발견한 시점은 아무리 빨라도 9월 11일 저녁 이후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서, 검찰이 ‘아들 상장을 오려서 딸 표창장이 만들어졌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공식 시점은 이 첫 포렌식 분석의 결과인 분석보고서(‘2019지원12467’)가 나온 9월 17일이었다. 같은 9월 17일, 검찰을 인용한 언론들 다수가 일제히 ‘기생충처럼 위조’ 보도를 쏟아냈는데, 이 ‘기생충 수법’이 바로 9월 10일에 KBS 법조팀장이 김 차장에게 예언했던 ‘오려내어 붙여넣었다’ 시나리오였다. 여기서, 검찰이 KBS 법조팀장을 제외한 다른 모든 언론사들에게는 ‘기생충 수법’ 결론이 17일에야 나온 것처럼 행세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김경록 차장의 알릴레오 녹취에 따르면, 검찰은 강사휴게실PC에서 문제의 핵심 증거 파일들이 발견되기 전인 9월 10일 시점에 이미 그 파일들의 존재 사실과 상세한 내용들은 물론이고, 제작 과정의 핵심적인 방식까지 알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이런 사실관계들을 다시 정리하면, 검찰은 해당 파일들이 발견되기도 전인데도 어느어느 파일을 어떻게 잘라내고 붙여넣어 표창장 파일을 만들었다는 시나리오까지 만들어놓았던 것이고, 한 술 더 떠서 그걸 언론사에 알려주기까지 했는데, 며칠 뒤 해당 파일들이 발견되고 일주일 뒤엔 정확히 그 시나리오대로 공식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를 비유하자면, 청년이 아기를 출산하는커녕 결혼 생각조차 없는데 지나가던 검사가 당신이 미래에 가질 아기가 어떤 공직에 오를 것이라고 예언해줬고, 놀랍게도 훗날 고스란히 그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당시에는 유시민 이사장을 포함한 누구도 이 부분 발언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최초 공개된 편집본 방송에는 이 발언 부분은 누락되어 있었다. (인터뷰 내용에서 보다시피 그 심각성을 어렴풋이 짐작이라도 했던 사람은 김 차장 뿐이었다.) 따라서 KBS 법조팀장의 이 같은 발언은 며칠 후 추가 공개된 인터뷰 녹취록 전문을 들여다봐야만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당시 KBS 법조팀은 알릴레오 최초 방송 이후 궤변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거세게 반발했는데, 그러면서도 녹취록 전문에 등장한 법조팀장의 표창장 파일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반박도 설명도 없이 못 들은 체 했다. (KBS가 반박 취지로 자신들의 녹취 전문을 공개한 것은 10월 10일 오후였는데, 유시민 녹취록 전문은 같은 날 오전에 먼저 공개됐다.) 당시 KBS 법조팀 측의 외견상 반발 정도를 감안하면 먼저 공개된 유시민 녹취록 전문도 확인했을 것인데도, KBS는 이 법조팀장 발언에 대해서는 전혀 대응하지 않았다.

특종 정보 보도 않은 KBS? 고도화된 검찰의 언론플레이

문제의 발언을 했던 당시 KBS 법조팀장 김귀수 기자는 이 인터뷰를 ‘주관’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고, 실제 인터뷰는 하누리, 정새배 기자 2명이 진행했다.

그러면, 인터뷰에 직접 참여하지도 않았던 법조팀장이, 표창장 관련에 대해선 전혀 알 리도 없는 엉뚱한 취재원 김경록 차장에게, 당시 인터뷰 목적과도 무관한 이런 발언을 뜬금 없이 했던 이유는 뭘까?

 

김경록 KBS 법조팀 인터뷰 당시 모습.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김경록 차장, 좌측은 KBS 하누리 기자, 우측은 정새배 기자. (KBS 홈페이지 기사 캡처)

그것은 김 차장에게 자신이 검찰 수사팀과 매우 가깝다고 과시하는 것을 넘어, 김 차장에게 정 교수에 대한 유죄 심증을 심어주려 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경심은 나쁜 사람’, 혹은 ‘어차피 유죄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김 차장의 방어 심리를 해제하고 정 교수에게 불리한 발언을 이끌어내려 한 것이다.

참고로 당시 KBS 법조팀장 김귀수 기자는 김경록 차장의 대학 동문으로, 김 차장은 법정 증언에서 김 기자가 KBS 인터뷰를 성사시키려던 과정에서 “한동훈이 너의 죄를 엄격하게 보고 있다”(당시 대검 반부패부장), “송경호 3차장 검사와 매우 친하니 인터뷰를 하면 선처해줄 수 있다”며 자신을 회유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 “한동훈이 내 죄 엄히 본다고 했다”는 정경심 자산관리인…왜?

이는 언론사 기자가 아니라 특수부 검사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소환조사 대상 참고인에게 거짓이거나 과장된 정보를 미리 흘려줌으로써 참고인의 사건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키고 원하는 방향대로 진술을 이끌어내는 수법이다. 실제 ‘조국 사태’ 재판에서 증인석에 선 여러 증인들이 참고인 조사 당시 이런 일들을 겪었음을 증언한 바 있다. 즉 특수부 고위검사들과 가깝다고 과시한 김귀수 기자는 취재 방법에서도 정상적인 언론사 기자가 아닌 특수부 검사들의 참고인 조사 수법을 이용한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더욱 주목해야 할 중요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KBS 법조팀장이 검찰로부터 ‘결정적 유죄 정황’ 정보를 듣고도, 정작 그에 대한 기사화를 하지 않고 대신 김 차장에게만 귀띔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선 SBS나 조선일보의 경우와도 상반될 뿐더러 기자로서의 기본 직무와 본능을 배신한 희한한 일이다.

기자로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이런 행태는, 검찰이 이 정보를 흘려준 의도가 애초부터 언론 기사화가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의 정보를 SBS와 조선일보에 흘려줬던 목적이 언론사를 통해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검찰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었던 반면, KBS 정보 유출의 목적은 일반 국민들이 아닌 김경록 차장 1인을 회유하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인터뷰에 앞서 김 차장을 흔들고 회유함으로써 인터뷰에서 정 교수에게 불리한 발언들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다시 그것들을 보도로 내보내는 것이 검찰과 KBS 법조팀의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검찰은 급한 대로 표창장 위조 혐의로 정 교수를 일단 기소하기는 했지만, 당시 수사팀의 ‘메인 타깃’은 어디까지나 ‘사모펀드 의혹’이었다. 이런 상황의 당시 검찰에게 사모펀드 의혹 관련 언플에서 ‘메인 메뉴’가 바로 김경록 차장이었다. ‘정경심 자산관리인 왈’ 식의 출처 불명 언론 보도들이 이런 식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서 김경록 본인이 등장하는 방송 인터뷰에서 사모펀드 관련의 불리한 ‘폭로’를 이끌어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검찰이 흔히 써오던 기존의 언플 방식인 ‘검찰-언론-국민’의 방식을 넘어, ‘검찰-언론-취재원’, ‘취재원-언론-국민’의 2단계를 거치는 더 고도화된 언론플레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흔한 검찰의 언플 방식에서는 기사에서 ‘화자’를 숨겨도 기사 내용상 뒤에 숨은 검찰의 존재를 완전히 숨길 수 없는 반면, 일견 검찰과 무관해보이는 폭로자를 앞세워 화자로 삼음으로써 여론 설득력을 더 높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찰의 예상보다 김 차장이 의외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데다 왜곡 보도된 일부 내용도 김 차장이 유시민 인터뷰를 통해 적극적으로 바로잡으려 노력했고, 이 사안이 당시 큰 이슈가 됐기 때문에 이런 언론플레이 수법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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