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옥 같은 비루한 삶에서 벗어나려면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제시하는 해법은

녹록찮은 세상에 중요한 건 오로지 인간관계

모든 배우들 몰입 연기에 연출 솜씨도 돋보여

2024-11-24     오동진 영화이야기
오동진 영화 평론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잃은 것, 이미 상실(당)한 것에 대해 대신 누군가로부터 그것을 마음으로 대체받고 싶어 한다.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 물질적인 것이거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으로 보상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없는 사람들은 그게 쉽지 않다. 오로지 인간관계, 사람 그 자체가 중요해진다.

누군가에게서 마음으로라도 보상받고 싶은 '없는 자들'의 상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에서 어촌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노인 영국(윤주상)은 무슨 사연에서인지 딸과 아주 사이가 안 좋고, 그 딸 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또 다른 누군가가 죽었고, 그것이 노인 영국에게 끝까지 트라우마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그 사연은 극 거의 끝에 가서야 드러난다) 그래서 이 노인은 그 대체재이자 혹은 대체하는 인물로 이 어촌에 들어와 살고 있는 베트남 여성(이라고 하기에도 아직 어린 여자)에게 마음을 다한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포스터

한국 이름이 영란이라 불리는 이 여자(카작)는 얼마 전에 유산을 했음에도 이제 곧 한국에서 추방될 위기이다. 노인은 이 여자의 손목을 끌고 가, 2년을 같이 산 남편 용수(박종환)의 사망신고를 직접 하도록 종용한다.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면 보험금이 나올 것이다. 노인은 영란에게 이제 다 잊고, 다 버리고, 돌아가서 잘 살라고, 떵떵거리며 잘 살라고 윽박지르지만 잔뜩 인상을 쓴 표정 안에서는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린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일종의 대(對) 어촌 사기극이다. 영란의 착한 남편 용수는 이 지옥 같은 어촌의 빈한한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매일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장을 치는 노인 영국을 들쳐 업고 그의 집에 누이면서 용수는 맞받아친다. "그러면 이게 과연 사람이 제대로 사는 거에요?!" 노인 영국은 작은 배를 한 척 가지고 있는 선주이고 용수는 거기서 일하는 고용 선원이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어리숙한 사기극이 통할 만큼 이 세상이 어리숙할까?

둘은 어리숙한 음모를 꾸민다. 둘이 새벽에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 영국은 용수를 바다 건너 뭍 어딘 가에 내려준다. 그리곤 혼자 다시 돌아와서는 용수가 조업 중에 바다에 빠졌다고 신고를 한다. 용수는 몸을 감추고 적당한 시기에 베트남으로 가려고 한다. 그 사이 보험금이 나오면 자신의 베트남 아내인 영란이 그 돈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거기서 살아 보겠다는 심산이다.

어리숙하고 좀 말이 안 되는 '작전'이지만 여기는 그렇게 얼기설기 살아가거나, 그렇게 살 수 있는 시골 어촌이다. 모두가 다 한 건너 아는 집들, 오랫동안 같이 살아왔던 사람들이라 아픈 사연, 골치 아픈 이야기, 비밀스런 과거를 다 묻고, 잊고 살아갈 수 있는 인연들이다. 용수의 죽음도 잊혀질 것이고 용수란 존재 자체가 아예 잊혀질 것이며 그렇게 용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의 음모가 아무리 그럴 듯하다 해도 인간의 사회적 삶은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그 그물망을 뚫고 가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보험 사정 프로세스에서 어려움이 생기고, 바다 수색작업을 포기하고 아들의 사망을 스스로 인정하도록 해야 하는 용수 엄마, 판례(양희경)를 설득하는 문제도 가장 큰 관건 중의 하나이다. 이 사이 어촌 마을에서는 베트남 아이 영란이 막대한 보험금을 타게 됐다며 질시와 부러움의 시선이 생기고 이 과정에서 한때 마을의 새로운 지도자였던 형락(박원상)과 심각한 몸싸움도 빚어진다. 형락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들도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했다가 혼자서 서울로 줄행랑 쳤던 배신의 아이콘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간신히 받아줬다고 생각하지만 형락은 여기는 진즉에 끝난 곳이라고 힐난조로 말한다. 노인 영국은 그런 형락에게 그럼 왜 다시 돌아왔느냐고 묻고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우리 모두의 보편적 삶과 맞닿아 있는 변방의 녹록치않은 삶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그리는 삶의 풍경이란, 한 철없는 관광객이 어촌 아침 바다를 보면서 그 서정성과 평화로움이 좋다는 식으로 한가하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런 걸 흔히들 사회적 리얼리즘 계보의 영화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 주되 거기에 어떠한 해석이나 각주를 붙이지 않으려 한다. 보는 사람들 스스로가 지금 세상의 본모습을 알아서 유추하게 한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세상살이가 결코 녹록치 않음을, 어촌 시골에서 벌어지는 변방의 일이 도시 중앙의 중심부에서 살아가는 어려움과 일맥상통하고 있고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을 주변의 삶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기이하고 역설적이게도 우리 모두의 보편적 삶과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노인 영국이나 용수의 모습이나 형락이나, 엄마 판례나 베트남 아내 영란이의 모습 모두가 우리들 삶 깊숙한 곳 여기저기에 같이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지옥같은 삶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온 힘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인 영국은 용수 엄마 판례에게 소리친다. "이게 어디 사는 거야? 매일 박스나 주워 가면서 사는 게?" 판례는 그래도 그렇게 떳떳하게 사는 게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 같은 삶은 어떻게 살아도 쉽지가 않다는 것, 결코 쉽고 편리한 길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에서는 두 가지의 모순이 중층적으로 드러난다. 우리 사회 내부의 계급 모순, 죽(은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하층 계급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치욕의 절망감을 배태하는 구조 하나와, 이민자들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억압하는 다소 부끄러운 자화상이 보여주는 또 다른 사회구조가 겹쳐서 나타난다. 극중 혁수란 인물(유순웅)은 수협 경매에서 자신의 조업 상품을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칼부림까지 벌이지만, 용수가 죽고 추방 위기에 몰린 영란에게 성추행을 시도하기도 한다. 자신이 차별받지 않으려면 타인을 차별하면 안 되고 그 역도 성립한다는 인문학의 정신을 대중들, 민중들은 쉽게 깨닫지 못한다. 어쩌면 한때의 마을 지도자 형락은 '진즉에' 민중=어촌 마을 사람들의 그 이중성을 깨닫고 스스로 사회운동을 청산한, 비루한 지식인일 수 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배우 감독 연출부 간 완벽하게 공유된 사회인식이 빚어낸 작품

영화가 극 2/3 쯤에 이르면 영화 속 인물들, 주연급이든 조연급이든 단역급이든,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폭주한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몰아치기 시작한다. 실로 대단한 연출 솜씨를 발동하며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노인 영국 역의 윤주상은 시종일관 찌푸린 얼굴로, 삶의 찌푸린 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베트남 여자 영란 역의 카작은 그렇게도 눈물을 줄줄 흘려댄다. 억척스럽고 무식하기 짝이 없으며 오로지 자식 이기주의만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판례 역의 양희경도 이마를 찧어가며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박원상이 연기하는 비겁한 청산주의자의 모습도 지나치게 리얼하다 할 만큼 사실적이다.

강릉과 동해안 일대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영화가 만들어진 작법이나 공법(거의 자연광으로 찍었다는 것 등)에 앞서 출연하는 배우들 모두와 감독 및 연출부들 간에 극중 상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공유와 합의가 완벽하게 이루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작품이다. 배우들과 감독은 끊임없이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 토론의 제작 과정이 눈에 보인다. 그 노력이 놀랍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그 순혈의 정신노동이 돋보이는 진정한 노동의 영화이다. 찬사를 보낸다. 27일에 정식 개봉한다. 올해 부산영화제에 여러 상을 타고 주목받았다. 상을 받았다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만…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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