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시대 우크라, 한반도 운명 닮아간다
바이든은 왜 ATACMS 미사일 사용 허락했나?
젤렌스키에게 트럼프 당선은 되레 기회일수도
한국전쟁 휴전방식 빼닮은 우크라 종전구상
약소국 국민은 나몰라라, 강대국 침략자의 논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제까지 금지해 왔던 우크라이나군의 미국 제공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 육군 전술 미사일 시스템) 사용을 허가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이든은 왜 ATACMS 미사일 사용 허락했나?
17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제공 무기들의 러시아 본토 내 사용 제한을 완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 뒤부터다. 그때 바이든은 우크라이나군이 사정거리 약 50마일(약 80km)인 하이마스(HIMARS 고기동성 포병 로켓 시스템)를 러시아 영토 내로 쏘아 공격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사정거리가 좀 더 긴 190마일(약 300km)의 에이태큼스 사용은 허락하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군에게 러시아 영토를 겨냥한 에이태큼스 사용을 허가한 것은 중요한 정책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에이태큼스 사용을 허가하면,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했지만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대한 직접 공격용으로는 사용하지 못하게 해 온 사정거리 155마일(약 250km)의 미사일 스톰 셰도와 SCALP 사용도 허용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 진영 일각에서 주장하듯 내년 1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전쟁을 확대하기 위한 의도된 도발이라고 단정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들이 있다. 에이태큼스가 하이마스보다 상대적으로 사정거리가 긴 ‘장거리’(장사정)이긴 하나 사정거리 수천km 이상의 중장거리 전략미사일은 아니다. 따라서 에이태큼스 사용 허가가 종국적으로 핵전쟁으로 이어지는 확전으로 치달을 정도로 전쟁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정책변화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관리들의 말을 빌려 이번 조치의 노림수 중의 하나가 쿠르스크로 파병됐다는 북한군에 타격을 가하고 더 이상의 추가파병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또한 북한군이 쿠르스크에 정말 파병됐는지, 파병됐다면 어느 전선에 어떻게 배치됐는지, 정말 전투에 투입됐는지조차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문은 지난 8월 6일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 주로의 진군 및 일정지역 장악이 트럼프의 집권 2기(트럼프 2.0) 출범을 전후해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 정전협상에서,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돈바스)과 남부의 자포리자, 헤르손 및 크림반도와의 교환 거래(딜) 용으로 중요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봤다.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진격과 일부 지역 점령은 러시아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남동부 점령지역 배치 러시아군을 쿠르스크 쪽으로 분산시켜 러시아군의 공세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젤렌스키에게 트럼프 당선은 오히려 기회
거액의 군사지원비를 미국이 감당해야 하는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정책을 비판해 온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에 다시 당선될 경우 자신의 대통령 취임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 9월 선거유세 때 그는 “선거에서 이기면 차기 대통령으로서 먼저 젤렌스키와 푸틴에게 전화를 걸겠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겠다. ‘거래를 끝내자. 이건 미친 짓이다.’” 당선이 확정된 뒤 그는 실제로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당선되면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도록 만들겠다던 그는 아직도 자신의 종전 구상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바이든은 푸틴과 대화 자체를 피해 왔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빼 놓고 러시아와 직접 교섭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앞세워 왔다. 바이든 정권은 법의 지배와 국제질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604억 달러에 달하는 군사지원을 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가능한 한 돕되 전쟁을 끝내는 방식이나 시기는 우크라이나에게 맡긴다는 자세를 취해 왔다. 그러면서 러시아에 대한 에이태큼스 사용을 불허할 정도로 확전 가능성을 차단하면서도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한 어떤 적극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장기적인 소모전 속에 우크라이나는 사회와 군, 정치 리더십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막대한 병력 손실을 보충할 징병은 목표의 3분의 2를 겨우 채울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졌다. 우크라이나의 한 장성은 우크라이나군의 20% 정도가 탈영상태라고 말했다.
러시아도 사정이 좋지 않다. 올해 한 해에만 5만 7000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돈을 주고 부족한 병력을 채우고 있으나 심한 인플레로 내년에 사정이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6개월 쯤 뒤에 찾아 올 가능성이 큰 위기에 먼저 짓눌릴 가능성이 큰 쪽은 우크라이나다.
이런 죽도 밥도 아닌 상황에서 기껏해야 피투성이의 정체상태, 아니면 최악의 경우 패배라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남지 않은 듯 보이는 우크라이나에게 전쟁 조기 종결을 공언해 온 트럼프의 당선은 출구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젤렌스키가 트럼프의 당선을 반긴 것은 진심일 가능성이 있다.(이코노미스트 11월 7일)
J. D. 밴스 부통령 내정자 종전 방안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2.0의 부통령에 취임할 J. D. 밴스 상원의원은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영토를 사실상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정전협상을 구상하고 있다. 국무장관에 내정된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미국이 교착상태의 전쟁에 계속 돈을 대고 있는 것을 비판하면서 전쟁을 끝내야 된다고 했고,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기용된 마이클 월츠도 에이태큼스 사용을 허가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전쟁 당사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도 지난 7일 밴스가 현재의 전황을 그대로 동결하고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하는 대신 러시아에 대해서도 안전보장 약속도 제약도 하지 않는 형태로 전쟁을 종결짓는 방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이와 비슷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것은 지난 7일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다. 이에 따르면 밴스는 지금의 전선을 기준으로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인정하지 않는 중립상태를 유지하는 안을 제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그대로 인정하고(‘자치지역’ 형태로 러시아에 떼어 주고) 우크라이나로부터 적어도 20년간은 나토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800마일(약 1200km)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해서 유엔군과 같은 미국이 지원하는 국제군이 아닌 유럽의 각국 평화유지군이 이를 지키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마이크 폼페이오 종전 방안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공화당 내에는 이런 방안과 다른 또 하나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것은 트럼프 1.0 때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가 주장한 것인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재정 지원을 강화해서 푸틴의 공세를 막아내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폼페이오 안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폼페이오를 트럼프 2.0 요직 인사에세 배제함으로써 밴스 등 트럼프 2.0 정권 인수팀의 방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의 에이태큼스 사용 허가는 뒤늦었지만, 공화당의 이런 더 적극적인 종전 방안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임기 종료 2개월도 남겨 놓지 않은 바이든이 왜 그런 조치를 취했는지, 아직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 휴전 방식과 닮은 트럼프의 우크라 종전구상
밴스 등의 종전 구상은 70년 전 한국전쟁(6.25전쟁)을 멈추게 한 휴전협상을 떠올리게 한다. 구(舊)냉전(동서냉전)의 본격적인 전개를 알린 한국전쟁의 휴전방식처럼 신(新)냉전의 본격적인 전개를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를 우크라이나전쟁이 비슷한 형태로 휴전상태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갖는 함의를 다시 행각하게 된다.
패권을 놓고 다투는 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전쟁 전개방식과 종결 방식이 70여 년의 세월 차에도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패권 경쟁 라이벌들은 전쟁(대개 대리전쟁) 승패를 쉽게 가리기 어려울 경우 자신들은 어느쪽도 결정적인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하고 전쟁을 일단 종결시킨다. 그럴 때 대리전쟁터가 된 나라의 이익이나 그 국민들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는다. 오로지 그들 자신들만의 이해에 따라 이익과 손실을 적당히 나눠가질 뿐이다. 그런 일방통행식 결정으로 한반도는 한민족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국토가 양단되고 전쟁을 치른 뒤 다시 분단돼 70년이 넘도록 갈라져 싸우고 있고 패권 경쟁국들은 여전히 종주국 노릇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도 그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짙다.
정당화될 수 없는 침략자의 논리
어느쪽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뿐만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할 때 내세운 명분은, 러시아 차르제국의 확장과 남하정책 때문에 일본열도를 겨눈 비수(칼)와 같은 한반도가 러시아 제국에 복속당하면 일본이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기에 조선(한반도)을 먼저 차지해야 한다며, 그것을 정당방위라고 우겼다. 일본 우익들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에도 일본제국이 위기에 빠지자 탈출구로 중국대륙을 침략하기로 하고 경쟁자이자 방해세력인 미국을 선제공격하면서 일본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침략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미국과 서방의 계획적인 도발 또는 동진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행한 정당방위였다며 옹호하는 것은, 조선을 침략한 일제를 러시아와 미국의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옹호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조선과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자들의 무자비한 파괴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잔혹한 죽임과 상처를 그런 논리로 정당화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