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인구’ 정책? 촌을 유령마을로 만들 작정인가
‘체류인구’ 카드 결제에 집중한 정부 보도자료
통계 밖의 진실은 등록인구 소비력이 8배 높아
마을을 돈벌이 장소로 여기는 체류인구 육성 정책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늦가을 접어들면서 여기저기 몸집을 키우며 익어가는 호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녀석들 날씨 따뜻할 때 뭐하다 추워지니까 이제야 호들갑을 떠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알고 보니 이것은 호박의 생존전략이다. 일단 힘차게 줄기를 여기저기 뻗고 넓은 잎으로 다른 풀을 못 자라게 한다. 자신의 세력을 넓히는 거다. 그리고 추위가 느껴지면 본격적으로 박을 맺고 박에 온 에너지를 보낸다. 옆집에서 덩굴째 넘어온 호박을 보는 것도 이때쯤이다. 그런데 이 굴러온 호박이 좋다고 내 밭농사를 안 해버린다면 그 밭은 어떻게 되겠는가? 지난 10월 30일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4년 2/4분기 ‘생활인구’ 산정 결과」 보도자료와 그 자료를 앵무새처럼 받아 쓴 보도들을 보며 옆집에서 굴러 넘어온 호박이 있으니 당신 밭의 농사는 그만 지으라고 요란을 떠는 무뢰한들을 보는 것 같았다.
‘체류인구’ 카드 결제에 집중한 정부 보도자료, 춤추는 언론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따른 새로운 인구개념으로 올해부터 89개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생활인구’를 산정하고 있다. 생활인구는 ‘등록인구(주민등록인구, 등록외국인) + 체류인구(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체류)’로 산정된다. 쉽게 말하면 특정 지역에 거주해 살고 있는 인구(등록인구)와 이러저러한 이유로 방문하는 인구(체류인구)를 합한 것이 생활인구다. 체류인구의 유형은 통근, 통학, 관광 유형 등이 있다. 생활인구의 작성 목적은 ‘인구감소지역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지역 맞춤형 정책 발굴을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과연 ‘지역 맞춤형 정책’은 무얼까?
금번 생활인구 보도자료의 제목은 “인구감소지역 찾은 2천 360만 체류인구, 방문 지역에서 실제 거주인구만큼 카드 결제했다”였다. 보도자료는 정주해 살고 있는 등록인구 보다 체류인구의 소비력을 더 부가시키며 체류인구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강원 양양군의 체류인구가 등록인구 대비 17.4배로 가장 높고, 신용카드 사용 비중도 71.6%로 높다는 자료를 제공했다. 이 자료를 받은 언론사들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보도들을 냈다.
‘인구감소지역’ 강원 양양 방문객 수 거주자의 17배 넘어… 지역경제에도 ‘도움’ (조선일보)
축제 없는데 '주민 17배' 관광객 몰렸다…'서핑 성지' 어땠길래 (중앙일보)
‘MZ 핫플’ 강원 양양, 체류인구가 등록인구의 17.4배 (동아일보)
89개 인구감소지역, 생활인구 350만 명 늘었다 (경향신문)
서핑 명소 ‘이곳’ 체류인구, 인구감소지역 중 1위…거주인구의 17배 (한겨레)
강원 체류인구, 비중 가장 크고 카드 사용도 많아 (춘천MBC)
양양 17.4배, 고성·평창·정선·홍천도 등록인구 대비 체류인구 많아 (MBC강원영동)
'인구감소' 양양 방문객이 거주자 17배 넘었다 (강원도민일보)
이른바 진보, 보수 막론하고, 중앙, 지방 언론 모두,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에 따라 ‘체류인구’의 경제력에 기대서 ‘생활인구’를 늘리는 것이 인구감소지역을 살리는 돌파구인 양 보도했다. 그러더니 이틀 뒤인 11월 1일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지단체에 배분하는 보통교부세 산정 기준에 ‘생활인구’를 반영한 ‘지방교부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12월 11일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인구감소 지자체들은 이제 ‘생활인구’를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정말 이게 인구감소지역을 살리는 ‘지역 맞춤형 정책’이 될 수 있을까?
위 표에서 보듯 전국 모든 시도에서 등록인구의 3.6배~7.9배 가량 체류인구가 많음을 볼 수 있다. 강원도는 7.9배로 가장 높다.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체류인구의 카드 사용액의 비중은 아래와 같다.
통계 밖의 진실은 등록인구 소비력이 8배 높아
체류인구 비율이 7.9배로 가장 높은 강원도의 경우, 체류인구와 등록인구의 카드사용액은 각각 55.8%와 44.2% 다. 이 통계를 놓고 정부는 체류인구 수가 등록인구 수보다 8배 가량 많다는 사실은 쏙 빼놓은 채, 체류인구와 등록인구의 카드사용액이 엇비슷하다는 내용만 부각시켰다. 더군다나 전국적으로 보면 등록인구의 카드사용액 비중(56.8%)이 체류인구의 비중(43.2%)보다도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통계 장난을 쳤고, 여기에 언론들도 맞장구를 친 것이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한 강원도의 상황은 “체류인구의 규모가 크고 소비력도 크다”라는 방향의 제목보다는, “체류인구:등록인구 소비력 1:8로 등록인구가 8배 높아”라는 방식의 제목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체류인구’를 늘려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더 나아가 인구감소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부의 ‘지역 맞춤형 정책’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할 수 있을까? 독자는 어느 쪽의 인구를 늘리는 것이 지역 경제 회생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는가? 동일한 예산으로 체류인구 8명을 늘릴 노력을 할 것인가? 아니면 등록인구 1명을 늘릴 노력을 할 것인가? 이런 희망 섞인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체류인구’가 늘면 그 ‘체류인구’와 관련된 산업으로 인해 ‘등록인구’가 늘지 않겠는가? 하는. 어쩌면 정부가 바라는 것도 이런 긍정적 연쇄효과일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위 지도는 생활인구 중 등록인구 대비 체류인구 비율이 높은 시군을 표시한 지도다. 강원 양양군(17.4배)에 이어 내가 살고 있는 가평군은 15.6배로 체류인구 배수가 높은 군이다. 과연 두 군은 지난 몇 년간 등록인구가 늘었을까?
위 그래프에서 보듯 등록인구는 지난 5년간 늘지 않고 오히려 줄었다. 체류인구가 17.4배니 15.6배니 요란을 떨지만 등록인구의 증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지방교부세 기준에 생활인구의 증가 수치를 반영한다면 인구감소 지자체는 등록인구를 늘리는 노력을 할까, 체류인구를 늘리는 노력을 할까. 답은 뻔하다. 체류인구를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순환보직 근무를 하고 매년 책정된 예산을 집행하면서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하는 공무원들은 ‘생활인구’라고 쓰고 ‘체류인구’라고 읽게 될 것이다. 교육, 의료, 일자리는 물론 각종 사회문화 인프라가 갖춰져야 늘어날 거주인구 즉 등록인구보다 일시적인(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체류인구를 늘리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인구’로 검색을 해보시라. 이미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체류인구를 늘리기 위해 애쓰는 인구감소 지자체들의 기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외지 기업들 배 불리고 공동체 망가뜨리는 체류인구 증가 정책
이런 상황은 기존의 귀촌 정책과도 충돌하게 된다. 생활인구에서 체류인구로 상정하는 일시적 통근, 통학, 관광 인구는 귀촌인으로 산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을 해서 전입을 해야 귀촌인이 되고, 그런 귀촌인을 늘리고자 하는 것이 귀촌정책인데, 체류인구를 늘리는 것에 예산과 정책이 쏠린다면 당연히 귀촌정책은 뒷전으로 물러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바람직할까? 체류인구 배수가 2위인 가평군에서 마을활동가로 사는 나의 경험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정부가 기대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조차도 그렇지 않다.
가평군의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는 경기도 31개 시·군 중 17위로 중위권이다. 그러나 가구당 소득액 중 400만 원 이상 가구 비율은 31개 시·군 중 27위로 뚝 떨어진다. 즉 가평군 안에서 생기는 부가가치가 가평군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비율이 크다는 것이다. 서울의 기업(체류인구)이 가평군에 와서 축제를 열면 가평군의 1인당 GRDP는 올라가겠지만 그 축제의 수익금이 군민(등록인구)들의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식의 체류인구 증가는 지방세(취득세, 주민세, 재산세, 자동차세 등)는 늘지 않는데 국세(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해 결국 지방의 중앙 예속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세수는 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체류인구만 늘어난다면 각종 공공 서비스와 인프라 비용의 증가로 지방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체류인구만의 증가는 그나마 남아있는 촌의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거의 태어나지 않는 가평군의 작은 학교들에는 마을에서 다니는 학생들보다 인근 도시 또는 다른 지역에서 차량으로 통학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 학교가 마을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학생들에게 학교가 있는 마을은 내가 사는 마을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도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동기부여를 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교사에게 학교는 칼퇴근해야 하는 근무지가 되기 쉽다. 이미 그렇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학교 주변에 학생이나 교사를 전입시키는 노력을 하기보다 인근 도시에서 등하교나 출퇴근을 원활하게 하는 쪽으로 행·재정적 지원을 한다면 학교와 마을의 관계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마을을 돈벌이 장소로 여기는 체류인구 육성 정책
또한 촌민들이 고령화되면서 기존에 자신들이 해오던 생업을 외지인(체류인구)에게 맡겨서 운영하는 경우들도 늘어나고 있다. 가평군의 경우 펜션 운영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 일정 기간 펜션을 임차해 운영하는 사업자(체류인구)는 최대한 수익을 내는 데 전념하느라 주변을 살펴볼 겨를이 없다. 주변의 생태환경이나 마을주민들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행위들도 종종 서슴지 않게 된다. 그 일시 체류민에게 사업장은 극한적인 돈벌이 장소고, 사업장이 있는 마을의 지속가능성은 안중에 없기 십상이다. 당신은 이런 곳의 마을주민으로 살고 싶은가? 더구나 행정이 체류인구 위주의 정책을 편다면 살다가도 정나미가 떨어져서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겠는가?
나는 체류인구가 등록인구보다 월등히 많은 가평군을 경기장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평상시 텅 비어있다가 경기 있을 때만 관중들이 몰리는 경기장 말이다. 관광철, 축제가 있을 때 수백 만이 붐비지만 지방재정은 열악하고 주민은 가난하고 인구는 소멸되고 있는 지자체. 시즌이 끝나면 사람들 즉 체류인구가 싹 빠져나가고, 돈도 도시로 빠져나가고…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마을에 주민정책은 필요 없고 행사 계획만 있으면 된다. 이런 곳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까? 이렇게 도시민의, 도시민을 위한, 도시민에 의한 정책을 펼치면 인구감소지역이 부활할까?
도시 중심의 가치관에 포섭된 사람은 도시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촌에 살면서도 호시탐탐 도시에 진입하기를 꿈꾸는 사람들도 촌에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도시민(체류인구)의 경제력은 동경의 대상이고, 촌의 청년들을 도시로 향하게 만드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체류인구가 몇 배가 늘어도 등록인구가 늘지 않는 이유다. 촌에서 돈 벌어 서울에 집을 마련하고 싶은 욕망의 불씨에 체류인구 중심의 정책은 기름을 부을 것이다.
생활인구 증가 정책은 남의 밭 호박 눈독 들이는 정책
지난 8월 29일 나의 글 <촌에서 먼저 겪는 우울한 미래>에서 얘기했듯 고령화, 저소득 촌에서 행정의 힘은 점점 더 세질 수밖에 없다. 관 중심의 지역문화는 풀뿌리 자치의 토양을 메마르게 한다. 그러나 기후재앙 시대, 식량위기 시대, 에너지위기 시대에 생명을 지속시킬 힘을 간직한 촌에 풀뿌리 자치의 역량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지속가능하고 순환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종 마을공동체 활동과 사회적경제 사업들은 단시간에 성과를 내기 힘들고, 지역 주민 주도의 참여와 노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풀뿌리 자치 역량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태와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과 실천 역량을 갖춘 공정귀촌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촌민을 전입시킬 노력보다 일회성 관광객, 일시적 장사꾼, 9 to 6 직장인들로 허장성세의 지표를 만들려 한다면, 그런 마을이나 지역이 ‘살고 싶은 곳’이 될 수 있을까? 정부의 바람대로 ‘생활인구 증가로 매력있는 지역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내 밭 일구고, 거름 주고, 씨앗 뿌리고, 김매고, 물주고 하는 것이 힘들다고 내 밭 농사는 팽개치고 남의 밭에서 덩굴째 굴러들어 온 호박이나 딸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 밭은 어찌 되겠는가?
지방에 등록인구(정주인구)를 늘리는 노력을 하는 대신 생활인구로 포장한 체류인구를 늘리겠다는 정책은, 내게는 지방분권을 포기하겠다는 정책처럼 읽힌다. 마치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처럼 대세로 등장한 주주자본주의가 초국적 주주들의 이익에 집착하며 국가 경제나 공공적 가치에 균열을 냈던 것처럼, 중앙권력과 도시민 중심의 생활인구 정책은 인구감소위기 지자체의 자립과 공동체성을 허물어뜨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촌스러운 삶으로의 대전환으로 생명력의 보고 지켜야 할 때
중앙에서 돈과 권력을 쥐고 지방을 줄 세우려는 정책, 마치 촌을 식민지 대하듯 하는 도시적 발상으로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다. 더구나 지금은 근대 이후 인류가 발전시켜 온 도시 중심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생명력의 보고인 촌을 중심으로 한 촌스러운 삶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다. 기후재앙으로 인한 재난의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식량, 에너지, 통신 등의 지역별 자립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더욱 필요해진 시대이기도 하다. 체류인구 지표로 교부금 지급 기준을 삼겠다는 정부의 방침, 거기에 편승해 도시적 가치관을 확대재생산 하는 언론, 학계는 그런 대전환은커녕 그나마 남아있던 촌의 건강한 풀뿌리마저 고사시키고 말 것이다. 촌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커온 도시가 생명력의 보고로 지켜내야 할 촌을 유령마을로 만들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