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필요하다며 당론은 폐지…민주당의 자가당착
이재명 대표 “주식시장 어렵다” 이유 궁색
시민단체 “주가와 세금 연관성 증명 안 돼”
민주당 폐지 당론에 주가 상승…반짝 효과
세수 기반·조세 원칙 파괴 부작용 더 클 것
“자본시장 선진화 ‘공든 탑’ 무너뜨린 퇴행”
정책 일관성·신뢰도 떨어뜨린 것도 큰 손실
더불어민주당이 당내 찬반이 엇갈리며 논란이 많았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이재명 대표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020년 제정돼 한 차례 유예됐다가 내년 1월 시행하기로 했던 금투세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금투세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상황에서 민주당 안에서는 주가 하락 등을 이유로 금투세를 유예 혹은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찬반이 극명하게 나뉘면서 금투세 시행을 놓고 당내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결론이 나지 않자 민주당은 이 문제를 지도부에 일임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대표는 고심 끝에 금투세 폐지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좌고우면 끝에 금투세 폐지 결정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금투세 도입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자본시장 선진화와 조세 형평성, 금융소득에 대한 합리적 과세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 등 자본시장 선진국에서는 주식 양도소득세를 당연한 세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금투세 폐지를 고집했다. 금투세를 시행하면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공포 마케팅도 펼쳤다. 이에 이재명 대표도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며 금투세 폐지를 수용했다.
하지만 금투세에 대한 사실을 따져보면 이런 주장의 근거가 얼마나 빈약한지 알 수 있다. 이재명 대표도 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금투세를 강행하는 게 옳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기본원리는 당연하다. 근로소득도 열심히 땀 흘려 번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데 자본소득에 과세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금투세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거나 줄이는 대신에 대체해서 도입한 제도다. 금투세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는 게 아니다. 주가 하락의 주원인은 정부 정책에 있다.”
앞뒤 맞지 않은 이재명 대표의 해명
금투세는 자본시장 선진화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이 대표는 현재 한국 증시의 위기를 초래한 몇 가지 원인을 언급했다. 그 중에서도 주가조작을 1순위로 꼽았다. “한국 증시에서는 주가조작이 만연하다. 시세 조정과 통정매매, 허위 공시, 작전 이런 게 너무 횡행한다. 대통령 부인이 되기 전 일이긴 하지만 대통령 부인께서 주가조작으로 수십억 원을 벌었다고 하는데 처벌하지 않고 죄가 안 된다고 했다. 전 국민에게, 전 세계에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는 힘만 세면 처벌도 안 받는다. 매우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시장이라는 것을 광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시장에 누가 투자하겠나.”
금투세는 주가조작과 불법 거래를 막는 효과가 있다. 정확한 과세를 위해서는 금융상품 거래가 투명해야 한다. 금투세를 ‘자본시장 실명제’라고 하는 것도 이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에 만연한 주가조작과 각종 불법 거래를 차단하려면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하면 된다. 금투세가 시행되면 한국 증시 수준은 몇 단계 올라갈 것이다.
금투세와 주가 흐름의 연관성 없어
이재명 대표는 정부와 여당의 금투세 폐지에 동의한 이유로 국내 주식시장 침체 우려를 꼽았다. 이 대표는 “주식시장에 기대고 있는 1500만 명의 주식투자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금투세를 시행하면 주가가 하락하고 투자자들이 피해 볼 수 있다는 점을 기정사실로 가정하고 한 발언이다.
그러나 금투세와 주가는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게 진짜 사실이다. 주가의 반짝 상승이 있을지 몰라도 기업 실적과 경기 흐름, 지정학적 위기 등 다른 중대 요인과 비교하면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금투세가 제정된 2020년 12월 2일, 시행을 유예하기로 한 2022년 12월 22일을 기준으로 코스피 종가 평균을 비교 분석한 결과 두 변수 간 유의미한 영향을 발견할 수 없었다. 주식양도세가 부과되는 대주주 기준이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완화되었을 때도 증시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1989년 주식 양도차익 전면과세에 따른 증시 충격은 없었다.
합리적인 금융소득 과세 물 건너가
금투세 시행은 조세의 형평성뿐 아니라 복잡하고 일관성이 없는 금융소득 세제를 개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모와 공모 펀드, 채권과 주식,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별 과세 기준이 중구난방인 현행 제도는 형평성과 중립성에 맞춰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자소득세와 배당소득세, 양도소득세, 비과세 등 상품마다 과세 방식이 달라 헷갈리는 데다 오랜 기간 손실을 보았는데도 한 번 소득이 발행하면 세금을 내야 하는 불합리한 점도 있다. 금투세를 도입하려고 했던 것도 투자 손익과 상관없는 통행세 성격의 증권거래세를 없애고 복잡하고 불합리한 금융소득 세제를 개편하기 위해서였다. 금투세의 세부 법 조항에 문제가 있으면 시행 후 개정하면 된다.
여야가 오랜 논의를 거쳐 합의해 만든 법을 손바닥 뒤집듯 없애버린 행태는 오랜 기간 후유증으로 남을 것이다. 증권거래세까지 폐지 쪽으로 가고 있어 금융시장의 세수 기반도 무너질 게 뻔하다. 이번에 금투세가 폐지되면 합리적이고 투명한 금융소득 과세는 상당 기간 힘들어진다. 오랜 기간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린 셈이다.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깨진 것도 국가적, 국민적 손실이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그리고 이들의 공세에 무릎을 꿇은 민주당은 ‘투자자 이탈’ ‘주가 폭락’ ‘개인 투자자 피해’ 등 실증되지 않은 온갖 가짜뉴스에 현혹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시행해야 할 법을 없었던 일로 돌려놓았다. 이에 대한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