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야, 농촌은 자급자족의 실험장 아니다

시골사람은 푸성귀만 먹고 사는 줄 아는 사람들

농가소득이 한해 5000만원이라니 잘 사는 줄

부업, 노령연금, 자녀들이 보낸 용돈 합쳐 그 정도

그런데 1인가구는 빼고 계산한 통계인 건 몰라

2024-11-01     김혜형 농부작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혜형 전업농부·작가

“시골사람들은 쌀밥과 푸성귀 반찬만 먹고 산다”

시골 사는 이들에게 “자급자족하니 좋겠다”는 덕담을 건네는 분들이 가끔 있다. “시골에 살면 돈 쓸 일이 없지”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그런가? 곰곰 생각한다.

보통 시골 텃밭에서 ‘자급’하는 것은 약간의 ‘식물성 식재료’다. 상추와 배추, 무, 고추, 가지, 호박 같은 기본 채소는 텃밭에서 길러 먹는다. 그러나 채소 몇 가지로 식생활이 해결될 리 없다. 우리 밭에 없는 우엉과 연근과 토란도 필요하고, 복숭아‧사과‧배‧감귤 같은 과일도 필요하고, 들깨와 참깨, 커피와 견과류, 식용유와 각종 소스류도 필요하다. 우리는 벼농사를 지으니 쌀을 자급하지만 밭농사만 짓는 이웃들은 쌀도 사 먹는다. 수없이 다양한 식물성 식재료 중 우리가 자급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동물성 식재료’는 아예 자급하지 못한다. 양계나 축산 농가라면 모르되 우리처럼 논밭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집에서 기른 동물을 잡아 식탁에 올릴 일은 거의 없다. 바닷가에 살지 않으니 어류나 패류 같은 해산물도 자급하지 못한다. 시골 사람들도 고기와 계란, 생선과 조개류, 유제품과 가공식품, 면류와 밀가루, 각종 양념류를 대부분 마트에서 구입한다. 도시와 다르지 않다. ‘자급자족’이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의존하지 않고 내 손으로 필요한 물건을 충당하며, 가난할지언정 충만한 삶’이라는 이미지는 일부만 진실이고 대체로 허상이다.

약간의 텃밭 채소로 절약한 식재료비는 전체 가계 지출의 몇 퍼센트를 차지할까? 엥겔지수가 아무리 높다 한들 식재료비로만 생활비를 채우는 집은 없다. 통신비, 전기요금, 난방비, 생활용품비, 경조사비, 유류비, 자동차 보험료, 공과금의 지출 비중이 식재료비보다 훨씬 높다. 최대한 아껴볼 수 있는 항목은 생활용품비, 난방비, 문화비, 외식비 정도이고, 경조사비나 통신비, 자동차 관련 비용은 거의 줄일 수 없다. 띄엄띄엄 다니는 군내버스는 마을로 들어오지 않고 벼 포대나 농산물 박스처럼 무거운 짐을 나를 일은 많으니 자동차야말로 시골의 필수품이다. 농기계, 건조기, 정미기, 저장고 등 농사 관련 기계의 구입, 수리비 역시 농가의 큰 지출 항목이다.

 

8일 전남 보성군 득량면 들녘에서 농민들이 벼를 수확하고 있다. 2024.10.8. 연합뉴스

농가부채 4000만원 깔고 앉은 농가소득 연 5000만 원의 처참한 현실

통계청은 지난 5월, <2023 농가경제조사>에서 평균 ‘2인 이상 농가소득’이 5082만 8000원이라고 발표했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는 즉시 “농가소득 5000만 원 첫 돌파”라는 치적 홍보용 보도자료를 냈고, 언론사들은 이를 받아 일제히 “연소득 5000만 원, 나도 농사나?” “도시생활 지겹다, 귀농해 볼까?” “농가소득 평균 5000만 원 시대”라는 식의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냈다. 포털의 낚시성 제목만 스쳐보는 사람들은 ‘농사지어 먹고살 만하겠네’ 했을 것이다. 연소득 5000만이라니. 그 숫자가 너무 허황하여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나와 주변 이웃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이 어마어마한 숫자는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한걸음 들어가면 실상이 보인다. 통계청에서 말하는 ‘농가소득’이란 ① 농업소득 ② 농업외소득 ③ 이전소득 등을 합친 숫자다. 여기서 ① ‘농업소득’(21.9%)이 바로 ‘농사로 벌어들인 소득’이다. ‘농가소득’이 아닌 ‘농업소득’을 보면 연간 1114만 원이다.(2인 이상 농가) 두 사람이 한 달에 92만 8,000원을 버는 것이다. 이제야 현실감이 온다. 영농 형태별로 보면 축산‧과수 농가소득은 평균보다 높고 논벼‧채소 농가소득은 평균보다 낮다. (20년 전인 2004년의 ‘농업소득’은 연간 1205만 원으로 지금보다 높았다.)

그럼 ‘농가소득’을 구성하는 ‘농업외소득’과 ‘이전소득’은 뭘까? ② ‘농업외소득’(39.3%)은 식당이나 도소매업, 일용노동 등 농사 외에 다른 벌이로 벌어들인 소득이다. 농민들이 농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드니 다른 부업을 겸하는 것이다. 자녀가 가구원으로 남아 있다면 자녀의 소득도 농업외소득에 합산된다. ③ ‘이전소득’(33.8%)은 노령연금, 직불금, 농민수당, 친환경 지원금(친환경 농사일 경우) 등 공적 보조금과 자녀들이 주는 용돈 등이 포함된다. 농민들이 고령화하면서 연금 소득과 자녀 용돈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허울 좋은 ‘5000만 원 시대’임이 이것만으로도 간파되는데, 이 통계 수치엔 또 다른 허점이 있다. 전체 농가의 22.6%에 달하는 1인 농가를 통계에서 누락시킨 것이다. 2023년 1인 농가의 농업소득은 연간 484만 원이었다. 부부 중 한 분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 된 고령의 1인 농가 농업소득을 통계에 반영했다면 “평균 농가소득 5000만 원 시대”라는 농식품부의 자화자찬식 홍보는 결코 나올 수 없다. 과다계상 의도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감춰진 문제는 또 있다. 2023년 농가부채는 4158만 원으로 사상 최초로 4000만 원을 넘어섰다. 농가소득 5000만 원이라는 환호 아래 농가부채 4000만 원의 신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통계의 함정이 감춘 진실은 생각보다 처참하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한농연) 전북도연합회가 8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신속히 쌀을 매입하라"고 촉구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2024.10.8. 연합뉴스

정치 부재 속 25년째 동결 혹은 삭감 상태인 쌀값

지난 10월 초, 농해수위 국감에서 쌀값 20만 원 보장 약속을 지키라고 여야가 한목소리로 농식품부 장관을 질타했다는 기사를 보며 헛웃음이 났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불통’과 ‘거부’뿐인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걷어찰 때 쌍수 들어 옹호했던 국힘당 의원들이 이제 와서 농민을 위하는 시늉을 하며 혀를 놀린다. 참으로 가관이다. 정부가 ‘달성’하겠다고 했던 (그러나 지키지 않은) 쌀값 20만 원이 그토록 대단한 시혜이고 축복인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9년 쌀값이 80kg(한 가마)에 19만 원이었다. 올해 9~10월 쌀값은 17~18만 원이다. 직장인 월급이 25년째 동결 혹은 삭감 상태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농민들은 밥 한 공기(쌀 100g)에 최소한 300원은 받아야 한다고 수십 년째 외치고 있다. 쌀 100g에 300원이면 80kg에 24만 원이다.

과자, 라면, 커피 등 온갖 상품들이 해마다 거침없이 오르고, 외식 가격도 무섭게 오르고, 농기계 대여료도 오르고, 투입되는 인건비도 해마다 오르지만, 쌀값만은 수십 년째 제자리다. 기업은 제품 가격을 직접 정하지만 농민들의 쌀값은 엉뚱한 자들이 결정한다. 그들은 쌀이 과잉 생산되어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과잉’을 일으키는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WTO 협약으로 매년 의무 수입되는 쌀이 40만 8700톤이다. 쌀의 구조적 과잉은 이 수입쌀로부터 비롯된다. 수입쌀의 94%가 저가로 식당이나 식품 가공업체에 들어가 밥쌀이나 즉석밥‧막걸리‧소주‧쌀과자 등 식용으로 사용된다. 국내 쌀의 소비처를 수입쌀이 잠식한 것이다. 국제협약에 따른 의무 수입이니 방법이 없다고? 일본의 경우, 수입 쌀의 26%만 식용으로 사용하고 74%는 해외원조나 사료용으로 쓰도록 법으로 강제한다. 자국의 쌀 생산기반을 지키기 위해 수입쌀에 ‘용도 제한’을 걸어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윤석열 정부는 ‘쌀값 하락’이라는 고통을 손쉽게 농민에게 떠넘긴다. 윤석열 정부가 최근 쌀값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건 “햅쌀 10만 톤을 격리해 사료용으로 쓰겠다. 우리 쌀 재배면적을 줄이겠다. 지역별 재배면적 조정에 응하지 않는 농가에겐 페널티를 부과하겠다”는 식의 강압 대책이었다. 검사 출신 대통령답다. 그래놓고 내년 농림축산식품부의 R&D 예산은 대폭 축소하거나 전액 삭감시켰다.(농업재해와 병해충 관련 R&D 예산은 0원이다) 이 나라엔 정부도 없고 정치도 없다.

바닥에 떨어진 농민의 삶, 진정성 있는 새 정치 절실하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농사는 갈수록 예측이 어렵고 농민들의 삶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재해는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피해가 생겼을 때 이것이 재해냐 아니냐, 보상과 지원 범위를 어떻게 하느냐에 모든 이슈가 빨려 들어간다. 재해 보험, 재해 보상, 무슨무슨 인증 제도를 만들어서, 이 돈을 받으려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얼마나 철저하게 규칙을 지켰는지 증명하라고 한다. 그러나 사안별로 혜택처럼 내려오는 보조금보다 중요한 건 농산물 가격의 현실화다.

정부가 대단한 선심인 양 남발해놓고 뒷수습도 하지 않는 ‘쌀값 20만 원’, 부부가 함께 농사지어 간신히 손에 쥐는 일 년 ‘농업소득 1114만 원’, 이 두 숫자야말로 자급자족의 낭만적 이미지에 가려진 농촌의 빈곤한 실상이다. 이 실상을 직시하고 해결하려는 진정성 어린 마음에서 농정, 즉 정치가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용산의 권력자에게 이를 기대하는 건 삶은 밤에서 싹 트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무능한 권력자의 독선이 농민의 삶을 짓밟고 농업의 미래를 파괴하고 급기야 나라 전체를 결딴내는 것을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들을 귀도 해결할 뇌도 없는 정부를 선택한 후과는 이렇게 참담하게 돌아왔다. 대체 이 부메랑을 누가 던졌는가.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