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는 강자를, 약자는 약자를 대리하는 사회

10년차 '동네 변호사' 눈에 읽힌 한국사회 공식

로펌·전관은 큰 기관, 동네변호사는 약자 대변

전관 변호사가 될 법대 위 판사는 누굴 대변할까

2024-10-31     김태현 리걸프리즘
김태현 변호사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혹시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름부터 어렵고 생소한 이 신탁유형은 간단히 말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서 신탁사가 시공사의 보증인 같은 역할을 해서 PF 대출을 돕는 신탁유형이다. 시공사가 그다지 튼튼한 기업이 아닐 경우 금융기관들이 PF 대출을 거부해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때 신탁사가 건물에 대한 준공책임을 보증(이른바 ‘책임준공’)하여 PF 대출 및 사업 진행을 돕는다.

고위험 고수익의 실험장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

신탁사는 왜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일까? 그만큼 기대수익도 크기 때문이다. 시공사가 공사를 진행하다가 어떤 이유로든 공사가 중단되어 준공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이라면 신탁계약에 의해 그때까지 지어진 건물은 신탁사에 귀속되고, 이후 신탁사는 자신의 자금을 투입해 건물을 완공한 후 직접 분양하여 분양이익을 챙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는 공사 중단 시점까지 지어놓은 건물을 신탁사에 헐값에 넘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분양이익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사업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신탁사가 늘 이득을 챙기는 것은 아니다. 신탁사가 분양이익을 챙기는 것도 어디까지나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어 있는 경우에 한한다. 만약 분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미분양 사태가 발생한다면 신탁사가 고스란히 사업의 위험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즉, 신탁사 입장에서 이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은 고위험 고수익의 공격적 사업이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인 지난 2017년 이후 부동산신탁사들은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했고, 이 상품은 신탁사들의 주요 수익원이 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상품을 통해 부동산신탁사들이 자기자본 대비 과도한 수준의 위험을 인수한 것도 사실이어서 부동산 호황기가 끝나고 나면 그 위험이 현실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공존해 왔다.

결국 2024년 5월경이 되자 7개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현장 중 4분의 1 가량이 책임준공 기한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제 PF대주단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신탁사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는데, 변호사 입장에서 이런 소식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가? 우습게도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아아, 대형 로펌들에 새로운 먹거리가 등장했구나, 하는 것이다.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소송'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차별 구제 소송 쟁점은 국가가 옛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입법자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라 위법한 것인지, 나아가 손해배상 책임까지 성립하는지 여부다. 2024.10.23. 연합뉴스

대형 로펌 밥상머리에 떨어진 부스러기 하나

그런데 이 사태가 의외로 나 같은 동네 변호사에게도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을 최근 깨닫게 되었다. 오랜 지인 한 명이 최근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는데 입주예정일이 2개월 간 지연되었는데도 시행사와 신탁사가 지체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 수분양자들이 시행사를 상대로 지체상금 지급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신탁사는 분양계약서 제29조 제200항을 들이대며 지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항변했다.

무려 제29조 제200항이다! 계약서 제29조 한 조문이 분양계약서 한 장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데 그중 200항까지 가서야 ‘신탁사가 신탁계약에 따라 시공사를 대신하여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게 될 경우 입주예정일은 6개월 이내의 기간에서 자동으로 연장되며 수분양자들은 이에 동의하고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이 기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수분양자들은 자신들이 분양받은 오피스텔이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계약의 대상이었던 사실도 전혀 몰랐고 계약서 제29조 제200항에 이처럼 수분양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크게 제한하는 중요한 내용이 숨어있는 줄은 더욱 몰랐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재판에서는 당연히 위 조항이 약관규제법 상 무효인지 여부와 만약 무효가 아니라면 분양대행사 측에서 수분양자들에게 설명의무를 다했는지 여부가 다투어졌다. 신탁사 측은 신탁사와 시공사 간 체결된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계약’이 결국은 수분양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입주예정일 연기에 따른 지체상금이나 계약해제권을 제한하는 제29조 제200항이 불공정 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입주예정일이 늦어지면서 잔금 지급기일도 함께 늦어졌으니 그만큼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잔금 준비기간이 길어져 이득을 봤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사실 이 글을 쓴 이유는 위 사건에 등장하는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계약’이나 그러한 신탁계약에서 신탁사가 떠안는 리스크를 고객(수분양자)에게 떠넘기는 불공정한 약관계약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 사건의 판결은 오는 12월 5일로 예정되어 있다. 이 판결은 비록 13명의 원고들이 구하는 지체상금의 액수(청구취지)는 1억 3000만 원에 불과하지만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큰 판결이 될 것이다. 그래서 12월 5일 판결문을 받아본 후 다시 이 사건에 관해 길고 자세한 설명을 담은 글을 써보려고 한다.

같은 듯 완전히 다른 대형 로펌+전관 변호사와 동네 변호사

필자가 위와 같이 장황하게 현재진행 중인 사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내가 느낀 변호사라는 직업에 관한 소회를 풀어놓기 위함이다. 변호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대형 로펌 변호사, 전관 변호사, 그리고 동네 변호사다(물론 이 분류는 매우 자의적임을 미리 고한다). 요즘에는 대형 로펌에서 전관 변호사를 많이 흡수해가기 때문에 대형 로펌 변호사와 전관 변호사는 그 역할이나 수입 구조 측면에서 별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들(대형로펌 변호사와 전관 변호사)의 삶과 동네 변호사의 삶은 완전히 다른 직업군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확연히 다르다.

어떤 기사를 보니 대한민국 고소득 전문직 1위는 변호사(연봉 30억)라는데, 또 어떤 기사를 보면 변호사들 평균 월수입이 대기업 직원들보다 못하다고 한다. 이 무슨 괴리인가. 이유인즉슨 변호사 숫자가 대거 확대된 이후 그들(대형 로펌 변호사들과 전관 변호사들)의 리그와 동네 변호사의 리그가 완전히 달라져 소득불균형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버는 전문직도 변호사지만 가장 못 버는 전문직도 변호사인 것이다. 이 두 변호사가 과연 같은 직군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필자는 동네 변호사로서 지난 10년 동안 법정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나 전관 변호사들을 여러 번 상대해 보았다. 국내 대형 건설사로부터 소송을 당한 농부 세 명을 대리했었고,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을 대리했었고, 국내 유명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의료피해자를 대리했으며, 이번에는 신탁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수분양자들을 대리하고 있다. 그동안 내 상대가 된 대형 로펌 변호사들과 전관 변호사들은 대형 건설사를 대리하고, 기업을 대리하고, 병원을 대리하고, 신탁사를 대리했다. 그들이 1건 착수금으로 받는 금액만 따져보아도 아마 나의 1년 치 연봉과 맞먹을 것이다. 이러니 그들의 수입과 나의 수입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저 판사는 법복 벗고 동네 변호사 될까, 로펌 변호사 될까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강자를 대리하기 때문에 고소득이 되고, 약자를 대리하기 때문에 저소득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고소득 변호사들이라 강자를 대리하고, 저소득 변호사들이라 약자를 대리하는 것일까. 여튼 중요한 점은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약자들을 대변하는 자들은 결국 같은 약자인 동네 변호사라는 현실이다. 대형 로펌들은 금융기관이나 병원, 또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려는 개인 사건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비용 문제는 차치하고, 대형 로펌이 자신의 주된 클라이언트인 금융기관이나 병원, 또는 기업을 상대로 싸우면 향후 그들로부터 수임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사건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우리 사회의 강자들은 강자의 대리를 받고 약자들은 약자의 대리를 받는 현상이 공식처럼 굳어가고 있다. 물론 동네 변호사를 약자 취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는 있다. 법정에서 법리를 다투는 일은 변호사 개인의 경제적 능력과는 별개이고, 동네 변호사들 중에는 방송이나 교육, 또는 정치 활동을 위해 일부러 동네 변호사를 선택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막 개업 변호사로 첫발을 디딘 생계형 동네 변호사들을 떠올려보라. 그들은 분명 변호사 사회 내에서 약자의 범주에 들어간다. 당장 사건수임이 간절하다 보니 낮은 가격에 이 사건 저 사건을 마구 수임하고, 그 결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경우가 허다하다. 재판 수행으로 바쁜 것이 아니라 사무실 운영으로 바쁜 것이다.

동네 변호사로 10년을 살아보니,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 늘 약자의 편을 대리하다 보니 문득 강자가 강자를 대리하고 약자가 약자를 대리하는 사회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법정에 설 때마다 멀리 법대 위에 앉아있는 법복 입은 판사의 면면을 꼼꼼히 살피면서 의심을 반복하게 된다. 저 사람도 퇴직한 이후에는 대형 로펌에 입사해야 할 텐데, 그럼 그 후에는 병원, 신탁사, 건설사들로부터 수임을 받아야 할 텐데, 과연 이 법정은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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