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이후 한국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올까?

문화기반을 무너뜨릴 독서관련 예산 전액삭감

K-문화 전도사 김건희가 국정 파트너인 게 무색

온국민이 기호의 카오스에 익사해도 괜찮은가

2024-10-24     정현주 문화연구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정현주 문화연구가

올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다. 여름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숨을 들이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고통을 더했다. 한낮 햇볕은 속살을 파고드는 뜨거운 무기처럼 느껴졌었다. 가뭄에 바싹 타들어가는 들풀처럼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만 갔다. 난폭한 더위가 두려웠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올 여름을 겨우겨우 살아냈다고 안도하고 있는 지금. 이 기후위기의 전 지구적 현상을 공포로 기억하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더위가 채 끝나지 않았던 9월 초 윤석열 정부는 총 677조원에 달하는 ‘2025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후 출판 및 독서지원 예산 전액 삭감, 문화예술 교육지원 예산 전액 삭감…전액 삭감이라는 뉴스가 파편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문화기반을 무너뜨릴 예산 전액삭감

문체부는 2024년 편성했던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13억원’, ‘중소출판사 출판 콘텐츠 창작 지원 7억원’, ‘국민독서문화 확산 예산’ 등을 2025년에는 전액 삭감한 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렇게 출판콘텐츠 및 독서와 관련된 예산 전액 삭감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부가 아예 문화말살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될 정도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이전의 정부에서 해왔던 출판콘텐츠 생산은 물론 책 소비와 관련된 지원 정책을 모두 폐기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지난해 문체부는 출판 생태계를 "이권 카르텔"이라고 규정했다. 콘텐츠 제작에 “이권 카르텔”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윤석열 정부의 인식에서 드러나듯이 결국은 출판 생태계를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보통 국가 지원을 받는 대상이 대형 출판사가 아닌 중소규모의 영세 출판사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들 기업을 향해 “이권 카르텔”이라는 단어로 적대시한 것은 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2024년 600조가 넘는 예산 규모 중, 겨우 2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면서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문화의 기반을 짓밟아 싹을 도려내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봐야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사진은 2023년 11월 14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한강 작가 모습. 2024.10.10 [연합뉴스 자료사진]

위와 같은 시선이 너무 과격한 것은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출판콘텐츠 생산 지원예산 전액 삭감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낮은 단계에서 지식에 대한 창조 세계를 파괴하는 분서갱유를 의미한다. 또한 국민 독서지원 예산 전액 삭감은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을 양산하기 위한 우민화 정책의 고착화를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문체부는 2024년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 예산을 전년(2023년) 대비 50% 삭감했다. 이어서 2025년에는 72%를 삭감한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년 사이에 예산을 기존의 총 547억원에서 80억원으로 편성해 86%나 삭감한 것이다. 특히 예술강사의 3개 사회보험료와 사업운영비만 예산으로 편성하고, 강사료는 전액을 삭감했다.

그렇다면 이 예술교육의 지속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재능기부를 하는 것뿐이다. 이를 전제하고 문체부가 예산을 편성했다면 사악한 예산편성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분야를 막론하고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사회적 현상은 또 다른 착취일 뿐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예술 관계자들에게 재능 기부를 강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더더군다나 재능기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육은 지속성과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도 없다.

위기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올 여름 전 지구적으로 기후위기를 혹독하게 경험했다면, 국지적으로 대한민국은 윤석열 정부 하에서 정치위기와 함께 문화 생태계를 파괴하는 문화위기의 시대로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후퇴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김영삼 정권으로부터 시작된 문화 지원정책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뿌리째 뽑혀나갈 위기에 놓여있다. 지금 전 세계인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K-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가 하루 이틀 공을 들인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성과가 아니다. 문화기반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창작자에 대한 국가의 예산지원과 문화발전에 필요한 절대시간이다.

완벽한 아이러니의 발견

위에서 말한 문체부의 문화예산 전액 삭감을 보며 완벽한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윤석열 후보에 투표했을 문화예술인들이다. 그들은 대통령의 부인이 문화예술 관련 사업을 했던 경험자이기 때문에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문화예술이 꽃피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벽하게 배신당한 꼴이 돼버렸다.

둘째, 과거에 김건희 여사 자신이 학교에서 예술교육을 했던 경험자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예술교육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그녀는 외국을 순방할 때마다 K-문화를 언급했었다. 물론 국내에서도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그녀의 활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는 문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셈이다. 김건희 여사의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인 문화 실천에 필요한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용산의 VIP1이 여사님이라는 말도 자주 들려온다. 2023년 4월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에게 국정 파트너 역할을 적극적으로 당부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문체부의 2025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의 의지가 반영됐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지 않고 문체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2025년 예산을 편성했다고 하더라도 전액 삭감에 대해 더더욱 문제의식이 커지게 된다.

2025년 예산안을 이해하는데 윤석열 정부가 민간인인 김건희 여사를 노골적이며 공개적으로 국정 파트너로 설정한 정치적 상황을 전제해야 한다. 그러니 문체부가 문화실천에 필요한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김건희 여사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무엇인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그녀에게 문화란 돈을 버는 수단 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문화예술에 대해 몰가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석박사 논문이 표절로 얼룩져 있다고 하니, 이 궁금증은 그녀가 썼다는 논문을 찾아 읽는다고 해소될 리도 없을 것 같다. 현재로서는 문화예술에 대해 김건희 여사가 어떠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감격과 감동의 파장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이 소식은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던 우리에게 순식간에 모든 것을 털어내고 일시적으로나마 감격과 감동을 선사해 주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스웨덴 한림원의 말을 이 글에서도 인용해 본다.

한강의 작품세계를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하며 수상 이유를 공식 발표했다. 이어서 "한강은 자기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면서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며 한강의 노벨 문학상 선정 배경에 대해 부연했다.

전액 삭감된 예산, 복원시켜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문체부가 2025년 전액 삭감했던 문화예술과 관련된 예산을 전면 수정해야할 처지가 됐다. 문화예술 지원 예산의 전면삭감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이 이미 공론화됐기 때문이다.

국감이 끝난 후 이 문제를 놓고 각 정당 간에 어떠한 협의 과정을 거칠 것인가. 전액 삭감된 예산을 살릴 수 있을지, 문체부의 원안대로 최종 통과될지,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올해 예산심의가 중요한 이유는 윤석열 정권이 집권 이후 단 한번도 추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2025년에도 추경은 없을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

그렇다면 2025년 1년 동안 출판콘텐츠 생산과 독서, 그리고 문화예술 교육 현장이 올 여름 뜨거운 열기로 바싹 타들어갔던 들판처럼 황폐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 문화위기를 초래할 예산 전액삭감이라는 야만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 출판콘텐츠 생산과 독서에 대한 지원예산 전액 삭감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그러나 현재는 고군분투하며 글을 쓰고 있는 어느 젊은 작가 지망생의 원고가 빛을 보지도 못한 채 폐기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대한민국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이 위상에 걸맞게 국가는 출판콘텐츠 생산과 독서 그리고 문화예술 교육 지원에 힘써야 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가 예산 삭감으로 문화 실천의 장을 몰살 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우리를 어두운 야만의 세계로 몰아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권에서 문화 예술과 관련된 예산을 증액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전액 삭감한 예산을 전 정권이 예산을 지원했던 수준으로 복원해야만 콘텐츠 생산과 문화예술 교육이 현상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야 문화 실천의 장이 현장에서부터 해체되는 파국만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14일 오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대통령궁 대통령궁 '히바'동(문화행사장)에서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배우자인 지로아트 미르지요예바 여사와 전통 도자기 전시 및 도자기 제작 과정 재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24.6.14 [공동취재] 연합뉴스

문화예술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

문화예술은 여가 생활과 연결되며 우리에게 심미안을 갖게 해준다. 그렇지만 심미안이란 우리가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자동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추상과 개념예술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철학적 개념을 빌려 분석해야 할 대상이 됐다. 수용자가 구상성을 통해 작품의 기호를 일차적으로 직관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인 것이다.

이에 대해 삐에르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이 문화적 능력과 문화의 해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작품은 오직 문화적 능력, 즉 해독의 기준이 되는 약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고 오직 그런 사람의 관심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감지할 수 있는 속성을 넘어서 해당 작품의 독특한 양식적 속성을 구별해 줄 수 있는 개념을 소유하지 못하는 한 그는 ‘일상적인 체험에 기반해서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의미의 일차적 층’으로부터 ‘이차적인 의미의 층’, 즉 ‘의미되는 것의 의미의 수준’으로 나아갈 수 없다.…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는 감정적 융합, 감정이입도 인지 행동, 해독 작업을 전제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유산으로 물려받은 인식 방법이나 문화적 약호를 가동해야 한다.

특수한 약호를 결여하고 있는 감상자는 영문도 모른 채 음과 리듬, 온갖 색채와 선의 카오스 속에서 ‘익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예술을 소비·향유하기 위해서는 판독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암호나 약호에 실천적으로 통달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교육과 예술로서 문학을 독해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통해 꾸준하게 장시간 동안 훈련을 받아야 한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의 작품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라며 수상 이유를 밝힌 것 역시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예술작품을 해독하는 데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국가는 국민이 문화 예술이 갖는 ‘이차적인 의미의 층’, 즉 ‘의미되는 것의 의미의 수준’을 해독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 문화생태계를 파괴하기 위해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국민이 온갖 음과 리듬, 현란한 색채와 선, 즉 카오스 안에서 난폭한 기호들에 의해 바싹 말라비틀어지거나, 기호들의 범람으로 익사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그러나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의도대로, 문화적으로 무지한 야만의 시대로 다시 끌려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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