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총수, 후진 지배구조…삼성전자 날개 없는 추락
경영진 무책임·이사회 IT 비전문가 점령
AI 투자 실기·기술 초격차 흔들리는 것도
비대한 경영조직·비효율적 의사결정 탓
지배구조 개혁 방치하면 몰락 시간문제
이재용 회장 포함 경영진 인적 쇄신 필요
“영업이익은 시장 기대치를 밑돌고 주가는 맥을 추지 못하고…. 회장은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수년째 법정을 드나들고, 비대해진 경영조직은 혁신은커녕 기존 경쟁력 유지도 힘든 상황…. 실적이 좋지 않으니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직원들의 불만은 쌓이기만 하고….”
오는 27일 회장 취임 2주년을 맞는 이재용의 삼성전자 현주소다. 이 회장이 경영을 맡은 뒤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업체에 밀리며 삼성전자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처했다. 기술 초격차로 수십 년간 우위를 점했던 메모리 시장에서조차 위상이 흔들릴 정도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기술은 SK하이닉스에 밀렸고 D램은 중국 기업이 약진하며 초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몇 년 안에 삼성전자를 따라잡을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 모두 경쟁력 떨어져
메모리 쏠림에서 벗어나고자 집중적으로 투자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에서도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 추격에 실패한 모양새다. 파운드리 사업의 핵심은 안정성과 수율에 있는데 TSMC에 비해 모두 떨어진다. 그 결과 파운드리 수주 경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TSMC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62.3%로 압도적 1위다. 삼성전자(11.5%)와 5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작년만 해도 TSMC 점유율은 60%를 넘지 않았다.
글로벌 1등을 자랑했던 메모리 반도체의 아성은 흔들리고 신사업은 지지부진하다 보니 삼성전자의 기업 가치도 추락 중이다. 한때 500조 원이 넘었던 시가총액은 300조 원대로 떨어졌다. 삼성전자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본 외국 투자자들은 연일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다. 국내외 증권사들도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낮추는 추세다. ‘국민주’ 삼성전자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에 투자한 개인들도 막대한 손실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실적도 기대 이하다. 삼성전자는 3분기 영업이익은 9조 1000억 원으로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이재용 회장 취임 이후 총주주수익률·실적 내리막
삼성전자 위기의 원인을 한 가지 이유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이다. 단순히 투자 시기를 놓치거나 신사업 전략을 잘못 짰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 문제는 올바른 의사결정이 어려운 기업지배구조에 있다. 총수의 무능과 전문경영인의 무책임, 이사회의 비전문성이 어우러져 삼성전자를 위기로 몰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15일 의미심장한 논평을 내놨다. 기업지배구조 관점에서 삼성전자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포럼은 위기의 진원지로 삼성그룹 3세 경영자인 이재용 회장을 지목했다. 이 회장에 대한 평가로 주가 변화율과 연평균 배당수익률 등으로 산정한 총주주수익률(TSR)의 급락을 꼽은 대목이 눈길을 끈다.
포럼에 따르면 삼성전자 보통주 TSR은 연 기준 지난 1년 -11%, 3년 -3%, 5년 +6%, 10년은 +10%다. 1, 3년 수익률이 낮은 건 이 회장 취임 이후 기술 경쟁력 약화와 경영성과 저조, 미래 이익 창출 능력에 대한 시장 불신이 반영된 결과다. 포럼은 “파운드리에서 직접 경쟁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항상 비교되는 TSMC는 TSR이 연 기준 1년 +135%, 3년 +22%, 5년 +41%, 10년 +26%에 달했다. 이런 점에서 양사 주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모든 구간에서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책임경영은 실종되고 관리 조직만 비대해져
포럼은 이 회장과 사실상 삼성전자를 이끄는 정현호 사업지원 부회장이 미등기임원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경영자가 권한을 행사하면 그만큼 책임도 있는데 두 사람 모두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법 이슈에 얽혀 있는 이 회장이 위기의 진원지일 수 있다. 이에 대해 포럼은 이렇게 비판했다.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사인 ISS의 2024년 의결권 행사 지침에 따르면 이사와 경영진이 뇌물, 횡령, 내부자거래 등 민형사상 전과기록이 있을 때 해임을 권고한다. 형기 60%가량을 채우고 2021년 가석방된 이 회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거대기업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라기보다는 홍보대사라는 느낌을 준다.”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기술 변화가 매우 빠르다. 이에 세계적 기업들은 기술 관련 업무에 최고경영진을 집중 배치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회장과 부회장, 사장 직급의 25명 중 9명(36%)이 조직 관리와 대관 업무, 홍보 등 후선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글로벌 IT 기업 중 관리 조직이 삼성전자만큼 비대한 기업은 드물다.
이사회의 구성을 봐도 삼성전자의 기술 홀대를 엿볼 수 있다. 이사회는 모두 10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사외이사가 6명이다. 그런데 이 중 4명이 IT 비전문가이며 반도체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금융계와 관료 출신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TSMC가 사외이사의 절반 이상을 반도체 업계에서 근무한 전문가들로 채운 것과 대조된다. 첨단 메모리 반도체 기술로 글로벌 1등 기업에 오른 삼성전자가 기술에 소홀하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배주주 없는 선진국형 거버넌스 모델 전환해야
포럼은 삼성전자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지금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준혁 교수의 칼럼을 인용해 삼성전자도 ‘지배주주 없는 거버넌스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럼에 따르면 고려아연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여러 번의 상속을 거치면서 지배주주 가족 지분율은 계속 쪼개지고 지배주주 중심 경영은 일반투자자와 이해가 충돌되는 사익 추구라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이재용 회장의 경우도 가족이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4.3%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 회장은 지난 2020년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4세 경영 포기를 공식화했다. 그런 만큼 지배주주가 없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선진국형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데 좀더 속도를 내야 한다.
삼성전자가 가족 경영을 포기해도 아무 문제 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TSMC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TSMC는 1987년 대만 정부가 자본의 절반 가까이 투입해 세운 회사다. 그 이후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서 정부 지분율은 10% 미만으로 줄었다.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지배주주가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도 할 수 없다. 주주들이 IT 인재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해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4대까지 내려가면 가족 경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재용 회장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서둘러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회장 자신을 포함해 가족 경영에 익숙한 기존 경영진을 물갈이하고 우수한 기술 인력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외부 인재를 적극 수혈해야 한다. 사외이사도 절반 이상은 반도체와 정보기술 전문가로 채울 필요가 있다.